어쩌다 미술, 어쩌다 화가의 길을 가는 사람
말 그대로다.
나는 사실 미술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만 어쩌다 보니 미술을 하고 있고
여전히 하고 있다.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어렸을 때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글 쓰는 것도 좋아했는데 소설을 쓰거나 시 짓는 걸 좋아했다.
부모님이 시키지 않았고
그냥 정말 내가 혼자 좋아서
매일같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곤 했다.
나의 지난 미술 인생을 적어보겠다.
사실 미술을 배운 역사가 그리 깊지는 않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혼자 그려왔고
초등학교 시절
반에 꼭 한 명씩 있는 그림 잘 그리는 애였다.
미술학원은 다녀본 적 없지만
그림 대회에서
글쓰기 대회에서 항상 상을 받았었다.
그러나 미술을 전공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게 좋고 글 쓰는 게 좋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중학교도 일반 중학교를 갔고
고등학교도 일반 고등학교를 갔다.
엄마는 내가 평범하고 바르고 착한 학생으로
잘 성장하기를 바라신 것 같다.
그렇지만 반은 맞고 반은 그렇지 않다.
평범하다기엔 초등학교 입학한 순간부터
매년 엄마가 학교에 불려 갔다.
중학교 때는 엄마가 학교에 불려 가진 않았지만
3년 내내 심리상담을 받아야 했다.
나는 대형학원을 오래 못 버텨서 거의 1대 1 과외를 했는데
나를 못 가르치겠다며 과외선생님이 나를 끊었다.
약 세 분 정도가 나를 끊으신 것 같다.
물론 나는 일진이나 날라리 그런 학생은 아니었다.
외형은 너무나도 모범생이지만
속은 전혀 알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특히 중학교 시절은 사춘기가 와서
약간 반항적이었던 것 같다.
당시 심리상담받기 엄청 싫어했었는데
엄마 손에 이끌려 다녔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심리상담을 받는다고 하면 살짝 문제아 취급하는 기분이 들었고
나는 문제가 없는데 왜 나를 문제아 취급하는 거야
하는 반항적인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심리상담 선생님이
나에게 조금 민감한 질문을 하거나
나의 내면을 파악하려고 하면
성의 없게 대답을 하거나 쓸데없는 말들로 회피하는 등
그런 반응을 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하필 심리상담소 바로 옆에는
같은 중학교 친구들이 많이 다니는 수학학원이 있어서
수학학원 수업이 끝나는 시간과
심리상담이 끝나는 시간이 겹치면
기다렸다가 나중에 나간 적도 많다.
그 정도로 사춘기 때는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거의 일급비밀이었고
일종의 핸디캡같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당시 중학교 친구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근데 이 때도 그림은 그렸다.
반항적인 와중에도 그림은 좋았었나 보다.
중학교 3학년 때는 한 6개월 정도 잠깐 작은 화실을 다녔었는데
화실 선생님께서 내가 웬만한 성인들보다 잘 그린다면서
내 그림들을 화실 벽면에 메인으로 붙여놓으셨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이때부터 그냥 미대 준비를 했어야 했나 싶지만
당시에는 그냥 별생각 없었고
나는 일반고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와서는 평범하게
다른 학생들처럼 국영수를 열심히 했다.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화실은 관뒀고 미술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미술 시간에 유화를 그려오는 게 과제였다.
그래서 나는 학교 근처 문방구에서 유화 재료를 사고 캔버스를 사서
집에서 혼자 열심히 그렸다.
이때 유화를 처음 접해봤다.
그리고 미술 시간에 완성된 유화 그림을 제출했는데
미술 선생님께서 내 그림을 지목하며
"이 그림 누가 그린 거야?"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저요..." 하고 손 들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반 아이들에게 설명하셨다.
"이 아이는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다. 미술학원 안 다녀봤다.
그게 티가 난다. 근데 잘 그린다."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너는 재능이 있으니 생활기록부에 글을 남겨주겠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그 말이 사실 와닿지 않았다.
미대 준비하는 애들 중 나만큼 그리는 애들 수두룩 할 텐데
나 정도 재능은 다들 있지 않나 싶어서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사건은 또다시 잊혔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나는 미적분을 열심히 풀고 있었다.
물론 수학을 잘하지 못했고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하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당시 나는 수학의 정석을 열심히 풀고 있었는데
수학 문제 열심히 고민하는 그 모습이 뭔가 잘하는 애처럼 보였는지
가끔 나에게 수학문제를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 한편으로 좀 무서웠다.
나도 그리 잘하지 않는데 왜 자꾸 물어보는 거지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쉬운 문제들만 물어봐서
알려줄 수 있었다.
또 친절하게 알려주는 건 잘했다.
그렇게 나의 수학실력은 아슬아슬하게 들통나지 않았다.
아무튼 그런 나날들을 보내는데
또다시 어느 여름에 그림 대회가 열렸다.
당시 나는 꽤 오랜 기간 그림을 그리지 않은 상태였고
때문에 그림 실력이 많이 퇴화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내가 잘하는 건 열심히 하는 거라
가지고 있던 검정 펜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그게 또 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역시 그냥 넘겼다.
여전히 미술 전공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반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으셨던 담임 선생님은
나와 1대 1 진로 상담을 하시는 와중에 미대 진학을 제안하셨다.
그때가 벚꽃이 필 무렵
봄이었다.
꽃샘바람에 홀린 것일까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미대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사촌언니를 따라
같은 미술학원에 갔다.
그러다가
여름 즈음부터 입시 미술을 하게 되었다.
입시 미술
참 나와 맞지 않았다.
뭘 그리라는 건지 정말 알 수 없었다.
역시나 청개구리 마인드가 어디 가지 않았다.
입시 미술을 따르지 않았고
제멋대로 그렸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실기 시험을 앞둔 12월 즈음
다들 과열된 분위기였다.
미술학원에서는 미술 선생님이
학생들의 입시 미술 그림들을 벽면에 차례대로 붙여놓고
한 명씩 평가를 했었는데
내 그림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빈 종이.
하얀색 도화지를 이름만 쓴 상태로
벽면에 붙였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
완성된 그림들 사이에 혼자 빈 도화지라니
눈에 확 띄었다.
내 차례가 되니 갑자기 짧은 침묵이 흘렀고
선생님은 약간 화가 나셨는지
"대학 가기 싫어?"라고 하셨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뒤늦은 사춘기 끝자락이었나 보다.
사실 뭘 그리라는 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나.
나도 내가 왜 그랬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완강하게 입시 미술을 거부했다.
전혀 조금도 입시 미술에 물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입시가 싫었다.
후에 나는 디자인과를 진학했다.
사촌언니는 디자인과를 지원했고
나는 사촌언니를 따라 우연히 디자인과 실기 시험을 봤다.
물론 나는 디자인과 실기를 준비한 적이 없다.
사실 나는 다른 입시 미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게는 과가 별다른 의미 없는 게
어차피 나는 입시 미술과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리던 걸 그렸다.
그리고 그게 합격했다.
왜 붙었는지는 나도 의문이다.
오히려 뚱딴지같은 그림이라
교수님 입장에서는 이 아인 뭐지? 같은 느낌이었나.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나는
현재 회화 작업을 하고 있다.
아크릴화를 주로 그리다가
요즘은 유화를 주로 그리고 있다.
나는 미술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미술을 하게 되었고 하고 있다.
이쯤 되면 미술은 내게 운명인가 싶다.
나는 제멋대로 인간이다.
언제 또 틀어져서 미술을 관둘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돌고 돌아서 다시 미술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내게 미술이라는 장르는
멀리 떼어 놓기에는 내게 너무 깊이 스며들어 있고
너무 오랜 기간 내 인생의 일부로 있었다.
이쯤 되면 다시 태어나야 미술을 하지 않을 것 같다.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평범하고 착하고 바르게 자란 사람으로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무난하게 대학생활을 하고
무난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무난하게 인간관계를 맺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왜 나는 무난한 게 하나도 없는 건지
뭐 하나 평범한 게 없는 건지
때문에 원하지 않았지만 지난 인생 동안 엄마를 힘들게 한 것 같다.
다시 산다면
예술은 손도 대지 말아야지.
예술은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 길다.
너무 무너지고 깨지기 쉬운 장르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온전하고 완전한 사람으로
단단하고 무던한 사람으로
적당한 때에 적당한 것들을 이루고
기다리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어느 것도 기약하고 싶지 않다.
다시 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