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마주하는 매일의 성실들
7년 만에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가고 싶었던 아담한 식당과 고즈넉한 카페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커피도 마시고, 달콤한 디저트도 배불리 먹었습니다. 교토에 도착한 첫날, 해가 지고 어스름이 내려앉을 무렵 가모강 근처의 동네 사랑방 같은 '가모가와 카페'에 들렀습니다. 창가 쪽에 앉아 수첩에 무언가를 골똘히 끄적이는 외국인 여행객 한 명이 손님의 전부. 저도 나란히 창가를 바라보고서 앉았습니다.
눈에 띄는 메뉴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의 케이크(今日のケーキ)'이었습니다.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어떤 케이크인지 물으니 '바나나 크림치즈 케이크'라고 합니다. 옆을 흘끗 보니 외국인 여행객이 먹고 있는 바로 저 케이크구나 싶었습니다. 왠지 흔쾌히 '오늘의 메뉴'를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따뜻한 카페오레를 같이 주문하고서 피로를 풀었습니다.
사장님의 대답에 '그렇군요' 하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무척 궁금했습니다. 왜 바나나 크림치즈 케이크일까 하고요. 오늘은 왠지 '바나나'의 기분이었던 걸까?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바나나다' 하고 생각했던 걸까?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했습니다. 이윽고 나온 케이크는 무척 아담하고 귀여운 모양새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각으로 단정하게 잘린 노릇노릇한 케이크는 눈송이 같은 흰 가루로 곱게 덮여 있고, 그릇에 흘러내린 부드러운 크림 위에는 허브 잎이 얹혀 있었습니다. 사발 같은 그릇에 담긴 라떼를 들이키며 한 시간 남짓 동안 '오늘의 맛'을 음미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교토에 머무는 동안 발견한 사실은 그곳뿐만 아니라 어딜 가나 '오늘의 메뉴'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찻집에서는 오늘의 차(今日のお茶), 커피숍에서는 오늘의 커피(今日のコーヒ), 식당에서는 오늘의 정식(今日の定食). 다른 메뉴들 사이에 꼭 오늘의 메뉴가 끼어있거나, 팻말이나 종이에 오늘의 커피는 어떤 원두인지, 오늘의 정식은 어떤 음식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손글씨로 적혀 있는 정겨운 풍경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들 오늘이라는 것을 무척 소중한 마음으로 마주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을 대하는 저마다의 마음을 제각기 특별한 형태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찻집은 차라는 형태로, 커피숍은 커피와 케이크로, 식당은 식사라는 형태로. 그것은 가장 나다운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으로 매일 하루하루를 다르게 묘사하고 있는 누군가의 일상의 노력들이었습니다. 교토의 상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소박하게 오늘이란 것을 만지작거리는 장면들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메뉴에 '오늘의 OO'가 있으면 구미가 당기는 다른 메뉴들을 다 제치고 덥석 그것을 고르게 되는 저를 발견합니다. 오늘의 메뉴는, 오늘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일 오면 없습니다. 오늘이란 것은, 그런 것입니다. 내일은 맛볼 수 없는 것. 내일은 고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매일 반복되는 것 같아도 단 하루뿐인 것입니다. 그런 '오늘의 메뉴'에는 오늘이라는 단 하루를 정직하게 마주하려는 그들의 소중한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커피와 차, 케이크로 표현된 그들이 바라보는 오늘의 풍경이 궁금해져 어김없이 언제나 '오늘의 메뉴'를 골랐던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오늘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오늘이 나의 오늘이 된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입니다. 그렇게 일주일 간의 여행이 매번 다른 누군가의 오늘로, 커피로, 식사로 다채롭게 채워졌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메뉴판과 같아서 그 속엔 상시 메뉴가 있고 특별 메뉴가 있습니다. 상시 메뉴는 매일 똑같은 것, 언제나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 메뉴는 여행이나 기념일처럼 특별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한 가지를 더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바로 '오늘의 메뉴'를 말입니다. 오늘의 기분을 담아, 오늘만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나만의 '오늘의 OO'을 골라 봅니다. 오늘의 책, 오늘의 양말, 오늘의 과자, 오늘의 찻잔…. 매일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오늘'이라는 날을 정직하게 마주한다. 소중한 마음으로 대한다. 그런 마음이 '오늘'이라는 것과 마주하는 매일의 성실입니다.
오늘은 일상이지만 언제나 단 한 번뿐입니다. 오늘만 맛볼 수 있는 것과 성실히 만나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