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그리고 인어 공주-1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 원작: 인어공주

by 신인인

1.


세찬 소용돌이와 넘실거리는 파도에 맞춰 [마녀의 집] 앞의 폴립이 갈색 몸통을 빛내며 끊임없이 흔들렸다. 폴립의 뒤로 ‘※전당포 아님’이라 써진 작은 나무 간판이 보였으나 그것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제발요! 제게 머리가 자라는 영약을 주세요! 그…그…제가 진주는 없어도… 목소리! 그래, 목소리를 드릴게요! 제발요!”

“아 거 안 판다니까! 또 어디서 무슨 헛소리를 듣고 와서 목소리를 맡길 테니 영약을 내놓으라 마라야! 그게 진주 몇 개짜린데!”

“왜요! 그 선대의 선대 왕 막내 공주한테는 목소리만 받고 인간 다리도 파셨다면서요!”

“그거 나 아니야! 돈도 없는 놈이 찾아와선…썩 꺼져!”


쾅!

엘리제는 울며 매달리는 어인(魚人)을 문밖으로 쫓아냈다. 일대에 큰 물 소용돌이가 일며 낡은 [마녀의 집] 간판이 크게 흔들렸다. 이로써 ‘※전당포 아님’이라 써진 작은 나무 간판은 죽은 산호 더미가 자욱한 바닥으로 볼품없이 떨어져 내렸다.


“아 진짜…어떻게 할 거야. 미카엘…네가 그 멍청한 인어공주한테 다리를 팔아서 나까지 고통받잖아.”


엘리제는 문 앞에 선채로 제 붉은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으며 헝클어트렸다. 깊은 바닷속 작은 가게, [마녀의 집]. 그곳의 사장은 대대로 ‘마녀’라고 불렸다. 투철한 주인정신으로 가게를 잘 비우지 않았던 ‘마녀’들은 어느새 바다의 도시괴담 주인공이 되었고, 제법 시간이 흐르자 괴담을 진실로 받아들인 평범한 어인들은 마녀를 두려워하며 잘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달랐다.


이번 주에만 저렇게 제 목소리를 준다는 둥, 머리카락을 다 바친다는 둥, 제 비늘을 다 벗겨가도 좋으니 근육 빵빵한 어인이 되는 약을 달라는 둥 이상한 손님만 863명이 다녀갔다. 이게 다 엘리제의 선대, 제11대 ‘마녀’ 미카엘로 인한 일이었다.


‘마녀’가 되면 마법의 영약을 만들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러나 1년에 단 일주일만 영약을 만들 수 있었고,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영약은 단 한 병뿐이었다. [마녀의 집]에서 파는 영약이 커다란 진주 100개를 넘게 받을 만큼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영약을 고작 인어의 목소리라는 헐값에 팔아버린 머저리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미카엘이었다. 인어의 목소리로 할 수 있는 것? 없다. 초인종 대신 쓰려면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카엘은 ‘인간 다리’라는 고가의 사치품을 팔았다. 돈이 썩어나갈 만큼 많은 왕이나 왕비가 잠깐의 여흥을 즐기러 육지로 나갈 때 사는, 영약 2병 값을 온전히 치러야 하는 사치품을. 이 어처구니없는 일은 어떤 인어들의 입을 타고 온 바다에 전해졌다. 소문을 퍼트린 원흉을 만나면, 그 인어의 목소리야 말로 빼앗아 주리라고 마녀는 다짐했다.


‘오늘의 영업은 여기까지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엘리제는 문을 굳게 잠그고 ‘영업 준비 중’ 푯말을 내 걸었다. 저벅저벅 물건이 어지럽게 쌓인 복도를 지나 2층 침실의 문을 열었다.


부드러운 비단으로 장식된 두 개의 침대가 작은 책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방안은 빛이 거의 들지 않아 우중충했다. 검은색 베개와 검은색 비단이 깔린 커다란 침대 하나는 붉은색 꽃이 곱게 장식되어 있었다. 꽃은 마법으로 영원히 시들지 않았다. 화려한 꽃은 무심한 검은색 비단 덕분에 더욱 빛나 보였다.


엘리제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한참을 노려보았다. 그리곤 하얀 비단으로 장식된 제 침대에 풀썩 드러누워 검은 침대를 바라보았다. 주인을 잃은 침대는 어딘가 서글퍼야 하는데, 저 침대는 붉은 꽃으로 인해 도통 그래 보이지 않았다. 검은 비단은 시간이 갈수록 빛에 바래는데, 마법에 걸린 꽃은 여전히 생기 넘치는 붉은색이었다.


엘리제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그 침대의 모양새마저 멍청한 미카엘을 닮아서. 그러나 이제 그의 흔적이라고는 저 검은 침대가 전부였다. 그래서 차마 치울 수가 없었다. 엘리제는 눈을 감고 엎드려 하얀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엘리제의 눈이 천천히 깜박였다.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아득한 어느 날이 떠올랐다. 침실은 곧 고롱고롱 코 고는 소리로 가득해졌다.


“나 왔어! 미카엘!”


[마녀의 집] 문을 활짝 열어젖힌 엘리제가 들뜬 표정으로 마녀를 불렀다.


“쉿. 손님이라도 있었으면 어쩌려고.”


타박하는 말투와 달리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했다. 마녀는 어두운 망토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로 상점 한가운데 놓인 원탁에 앉아있었다. 반쯤 읽은 책을 덮은 그는 시선을 옮겨 아직도 볼이 발갛게 상기된 엘리제를 바라봤다. 힐끔 문 옆에 달린 시계를 확인하고 일어선 그는 상점 출입문을 잠그고 ‘영업 중’ 푯말을 뒤집었다. 가게에 난 창문의 커튼을 꼼꼼히 닫고 촛불을 밝힌 그가 비로소 망토를 벗었다. 검은 망토 아래 찬란한 금발이 흩날리고 검은 눈동자가 보석처럼 빛났다.


마력이 깃든 마도구와 신비의 영약을 판매하는 곳, 마법 상점 [마녀의 집] 제11대 가게 주인이자, ‘마녀’인 미카엘이 저보다 한 뼘 작은 엘리제를 향해 말했다.


“엘리제. 마녀의 이름은 함부로 부르면 안 돼.”

“어차피 나는 마녀의 제자라 그런 제약 안 받는데요?”

“마녀의 이름은 마력이 없는 평범한 자들이 들으면 안 돼. 이름에 담긴 마력 때문에 미쳐버린다고 스승님도 늘 말했잖아. 그래서 마녀와 마녀의 제자는 조심해야 해야 한다고.”

“알았어. 알았어. 그것보다 내가 뭘 갖고 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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