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X저작권위원회 - 원작:인어공주
2.
엘리제는 성큼성큼 다가가 마녀가 앉은 원탁에 제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수수하게 생겼지만 색이 붉은 꽃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자! 봐! 네가 좋아하는 붉은 꽃!”
엘리제는 뿌듯한 얼굴로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펴고 마녀를 바라봤다. 아직도 흥분으로 콧김이 쌕쌕 나오는 것 같은 엘리제의 머리에 마녀의 커다란 손이 놓였다.
“잘했네.”
엘리제의 머리를 쓰다듬은 손이 바구니에 담긴 꽃을 안아 손질했다. 곧 화병에 예쁘게 담긴 붉은 꽃은 엘리제의 성화에 2층 침실로 자리가 결정됐다. 화병을 품에 안은 마녀가 하얀 침대를 향해 난 아주 작은 창문과 두 개의 침대 사이에 위치한 책상을 한참 바라보며 고민했다. 마침내 그는 책상 위에 화병을 놓았다. 엘리제는 흥분감 어린 표정으로 그런 마녀를 문 앞에 서서 바라봤다. 그러나 흥분감은 곧 실망으로 변했다. 엘리제가 가져온 꽃은 마녀의 침대를 장식한 붉은 꽃보다 작고 초라했다. 마녀가 엘리제가 가져온 꽃에 마법을 걸기 위해 품에서 영약을 꺼내 부수려는 순간이었다.
“됐어.”
문 앞에서 엘리제가 외쳤다.
“마법. 쓸 필요 없어. 더 예쁜 꽃을 따오면 그때 써줘.”
몸을 홱 돌린 엘리제가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두고 봐. 내가 보란 듯이 저 꽃보다 더 예쁜 꽃을 따올 거야. 다음에는… 그때는… 미카엘이 나한테 반하겠지?’ 그런 생각을 떠올린 것만으로 엘리제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때야 비로소 스승님과 함께 왕궁에 들렀다가 받은 꽃다발에 있던, 저 붉은 꽃을 미카엘의 침대에서 아예 치워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들떴다. ‘이번에는 꽃을 따러 남쪽 계곡 너머로 향해볼까? 그곳엔 예쁜 꽃들이 많다고 문어들이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위치가…’ 실망으로 터덜거렸던 발걸음이 다시 경쾌하게 바뀌었다. 어느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엌으로 간 엘리제가 간식 상자를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마녀님…저희, 저희 동생이 그만 죽을병에 걸려서 밥도 못 먹고 으흐흑…”
마녀는 말없이 원탁에 놓인 휴지를 몇 장 뽑아 손님에게 건넸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어려운 고어로 적인 책에 머물러있었다.
‘어떻게 알고 휴지를 주는 거야. 저것도 마법인가?’
마녀가 앉은 원탁 뒤편. 기다란 아일랜드 식탁 스툴에 앉은 엘리제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마녀의 얼굴을 살피다 이내 크게 하품을 했다. ‘저런 지리멸렬한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들어주다니 착해 빠져서는…’ 엘리제는 값을 깎기 위해 제 인생은 물론 남의 인생도 끌어와 뒤죽박죽으로 섞어 말하는 손님을 보다가 이내 혀를 찼다. 제 스승이자, 미카엘의 스승이었던 선대 ‘마녀’의 말이 옳았다. ‘미카엘이 장사에는 영 소질이 없을 거 같네.’
“마녀의 집을 찾아올 용기는 있었으면서 그만한 돈이 들 생각은 못했나 봐?”
비아냥거리는 말이 엘리제의 입을 타고 흩어졌다. 마녀의 앞에서 휴지로 연신 눈물을 찍어내던 손님은 움찔하며 마녀 뒤편에 앉은 붉은 머리의 엘리제를 바라봤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 같은 붉은 눈동자를 마주하자 손님은 밀려오는 무서움에 딸꾹질을 했다.
“희끅”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야?”
“희끅”
“여긴 바로 그 무시무시한 마아아-아녀의 집이라고”
스툴을 폴짝 내려온 엘리제가 양손을 괴물의 발처럼 펼쳐 들고 한 발짝씩 손님을 향해 다가갔다.
“무병장수하는 영약을 달라. 그런데 진주는 고작 10개밖에 없다. 그러니 깎아 달라?”
웃기지도 않지 정말. 낮은 목소리로 읊조린 엘리제가 손님이 앉은 원탁을 쾅! 내리쳤다.
“그럼 모자란 돈은 당신이 내야겠네. 어디 그 혀는 어때? 아니면 그 멋진 비늘을 전부 벗겨볼까?”
“으......으아악! 살려주세요!”
손님은 부리나케 [마녀의 집]을 뒤쳐나갔다. 꽁지가 빠져라 뛰는 그 뒷모습을 보며 엘리제가 배를 붙잡고 끅끅 웃었다.
“장난이 심해. 엘리.”
“아 왜 재밌잖아.”
엘리제가 웃느라 눈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마녀를 바라봤다. 마녀는 엘리제를 타박하면서도 꼬박꼬박 ‘엘리’하며 애칭으로 불렀다.
“그리고 심했으면 말리지 그랬어? ‘사실 혀 같은 건 아무 곳에도 쓸데가 없답니다.’ 하고.”
“그러기엔 나도 피곤했어.”
마녀가 양손으로 눈을 꾹꾹 눌렀다. 바보 같은 마녀. 마녀인 주제에 ‘손님 그 가격엔 안 팝니다.’그 한 마디를 못해서 남의 신세 한탄이나 들어주고, 내쫓는 것도 못하고. 손님이 나가지를 않아서 초조하게 다리나 떨고. 그러니 내가 해줘야지. 착해 빠진 마녀 미카엘.
저녁 식탁은 달그락 거리는 식기 소리로 가득했다. 마녀는 평소보다 빠르게 접시를 비워나갔다. 마치 시간에 쫓기듯. 그 모습이 이상해 엘리제는 움직임을 멈추고 마녀를 바라봤다. 시선을 느낀 마녀가 엘리제와 눈을 맞췄다.
“왜? 할 말 있어?”
“미카엘. 너 오늘 이상해.”
“내,내가? 어디가?”
“너 꼭 무슨 약속 앞둔 것 마냥 좀 들떠서는…”
“아니야. 내가 무슨 약속이 있어.”
“그러니까 말이야. 세계 마녀 회담도 멀었는데. 네가 나 모르는 사이 친구를 만들었을 것 같진 않고.”
엘리제의 말에 사레가 들린 마녀는 가슴을 퍽퍽 두들기다 물을 마셨다. 꼭 켕기는 것이 있어 보였다. 마녀의 검은 눈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마녀가 저렇게 초조해하는 게 뭘까. 뭘 기다리는 걸까. 아니, 뭘 기대하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엘리제는 며칠 전 신문에서 본 기사가 떠올랐다.
“너… 혹시 인어 공주. 걔 보러 나가?”
3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