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아르바이트
뭐든지 첫 경험이 중요하다.
수학 문제를 풀 때도 4점짜리를 보다가 2점짜리를 보면 반가운 마음을 언젠가 느껴봤을 것이다.
내 첫 아르바이트는 그랬다. 다른 아르바이트가 2~4 점을 오갔다면, 이것은 7점 정도 된 것 같다.
집 근처의 이마트에서 일을 했었다. 때는 2014년. 두 번째 수능을 마친 직후였다.
설 명절을 맞아 대량 구매를 하는 손님에게 (대부분 회사 선물용) '특별히' 직접 배송을 해줬다.
기사 아저씨와 내가 한 조를 이뤄 오전 8시부터 용달차 하나를 가득 채웠다. 하역장에는 비슷한 트럭들이 가득했고, 당일에서야 어떤 배송지를 가는지 알게 되었다.
10kg이 넘는 참기름과 참치세트, 햄세트를 트럭에 올리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내리는 것이 고문이다.
왜 이 아르바이트는 7점짜리 문제인지 방문했던 곳을 토대로 설명해보겠다.
1. 우유 공장
남양주쯤에 위치한 우유 공장에 방문했다.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의 설 선물을 배송했는데, 공장 내부는 상품용기의 소독을 위해 암모니아를 쓰고 있다고 했다. 이게 식품에 직접 들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높은 공장 상단의 통로를 지나며 방독면을 쓴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랬다. 방독면을 써야 버틸 수 있는 환경을 아무것도 주어진 것 없이 배송을 했다. '구르마'라고 부르는 초록색 수레에 짐을 잔뜩 싣고 몇 번을 암모니아가 가득한 공기를 지나면서 현기증을 느꼈다. 전 국민이 아는 그 우유에 암모니아가 사용된다는 것을 몇 명이나 알까?
2. 은행 금고
시중 은행 중 한 곳에 배송 요청이 있었다. 선물세트였는데, 이곳이 힘들었던 이유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내 일이기 때문에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짐을 내려놓을 데가 없으니 은행 금고에 놓자고 하며 금고문을 열고 내가 물건을 들고 금고에 내려놓는 약 30분의 시간 동안 청원경찰과 남자 직원 둘이 나를 감시했다. 서로가 서로의 일을 하고 있지만 굉장히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해 힘들었다. 영화에서 볼법한 금괴와 문서들이 잔뜩 쌓여있던 것이 흥미롭긴 했지만 나는 도덕적인 사람이므로 딱 거기까지만 흥미를 느꼈다.
3. 관 공장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관을 만드는 공장에 배송을 했었다. 관이라는 물건 때문인지 괜히 으스스했다. 죽으면 들어가는 곳이지만 죽어서야 들어가는 곳이니, 괜한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다. 그걸 눈치챈 사장님이 괜찮으면 한 번 들어가 보라 했다. 놀랍게도 배송을 마치고 사장님과 기사님이 보는 아래 관에 들어가 누워봤다. 아직도 그 좁은 틈에 누워 바라봤던 하늘을 잊지 못한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4. 동부 구치소
지금은 신식 건물로 각종 첨단 시설을 탑재한 동부 구치소지만, 내가 방문했던 시기에는 하얗고 낮은 건물들로 이뤄진, 오래된 구치소였다. 참기름을 경비실에 내려주면서 몇 명의 사람들이 포승줄에 묶여 이동하고 있었다. 이곳은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구속된 사람들의 눈빛이 너무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99명의 범죄자를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는데, 경비아저씨가 여기 오는 사람들은 아주 명확한 증거물이 있어서 들어온 것이라고 해줘서 금방 미안한 감정이 없어졌다. 본인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해치지 않을 때만 존재한다. 범죄는 나쁜 것이다.
5. 가정집
사실 위의 방문지는 물건을 내리는 것이 힘들었다기보다 방문했던 특별한 공간에 대한 소개였고, 배송지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던 가정집이 7점짜리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사람마다 가정집이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다르겠지만, 이때의 가정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신식 아파트, 두 번째는 주택이다.
신식 아파트는 보안을 문제로 외부인이 쉽게 내부로 들어갈 수 없다. 공동 현관문이 존재하는데, 문제는 차가 지상으로 다닐 수 없어 지하에서 물건을 날라야 하며, 나와 기사님이 한 번에 나를 수 있는 물건의 양은 정해져 있었다. 공동 현관문을 계속 열 수가 없어 놀랍게도 계속 배송받는 집을 호출해야 했고, 아마도 급하게 엘리베이터를 사용해야 했던 주민들은 우리를 엄청 욕했을 거다. 참기름 10kg짜리 127개와 사과상자 100개를 거실에 내려놨던 그 날을 기억한다. 대체 어떻게 사람들한테 주려고 하냐고 묻자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던 집주인의 말에 세상은 역시 참 다양하구나 하며 지하로 내려왔다.
그래도 신식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주택은 아주 곤욕이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80년대 대중적으로 됐던 특유의 구조의 주택들은 계단도 좁다. 선물세트는 대부분 부피가 크고 아주 무겁기 때문에 옮기기가 힘들었는데, 애초에 이 일이 대량 구매를 해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옮기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물론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이 일은 그래도 배송을 마치고 마트로 다시 복귀하는 시간에는 도로 위에서 잠을 자거나 쉴 수 있었고, 그 또한 시급을 쳐줬다. 오히려 노동량만 놓고 보면 물류 창고에서 물류 상하차 일을 하는 것이 더 힘들겠지만, 수능을 마치고 사회의 단면을 체험하는 파릇파릇한 청년에게는 아주 힘들었던 일이었다.
마트의 문을 닫기까지 배송을 마친 후에는 택배 주문을 받고 배송할 물건들을 포장하는 일을 한다. 한 곳에서 평생을 살았던 터라 지역의 상징인 마트에서 많은 지인들을 만났는데, 재밌는 경험이었다.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 명절 택배 상하차
장점 : 의외로 많은 휴게시간, 마트에서 점심 제공, 또래들과 근무
단점 : 부상의 위험이 있는 물류량과 업무 방식, 몸을 쓰는 그 자체
시급 : 5,210원 (2014년 최저시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