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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터 Oct 21. 2022

어디에도 없는 커피프린스

학원과 회사는 다르다


   "혹시 커피 못 마시는 분 있어요?"


   바리스타 자격증반을 수강하던 첫날이었다. 강남에 위치한 조그만 바리스타 학원에 들어서니 젊은 남자 선생님과 수강생 열댓 명이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아있었다. 그중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들지 않았다. 오기였다. 나는 가끔 이상한 오기를 부렸다. 밥심 대신 커피도 달고 사는 게 요즘 젊은이들이라는데 카페인에 취약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첫날부터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커피를 배우려고 온 곳에서는 말이다. 어차피 바리스타가 되기로 한 이상은 커피 맛을 계속 봐야 한다. 나는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곧 선생님이 내려주신 커피를 받아 들었다. 조금씩 들이마시자 고소한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맛있었다.

   그제야 나는 선생님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나보다 두어 살 어린 남자아이. 자연스레 친한 학교 후배들이 떠오를 만큼 편안한 첫인상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앳된 얼굴에도 불구하고 호칭 덕분인지 어른 같았다. 특히 다른 일을 하다가 커피 일을 하게 되었다며 자기소개를 하실 때는 나도 모르게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구나. 같은 사례를 만난 것만 같아서 안도감이 들었다. 수업에 등록한 날부터 나는 항상 긴장 상태였다. 엄한 선생님을 만났거나 도무지 이 일을 할 엄두가 안 난다는 판단이 들었다면 초반에 때려치웠을지도 모를 만큼 떨었다. 그런 내게 또래의 선생님이 차근차근 커피의 기본기를 알려주시니 참 좋았다. 게다가 같이 수업을 듣는 어머니들은 항상 내 손에 달걀이나 사탕 같은 것을 쥐어주며 격려밖에 안해주셨다. 젊어서 부럽다는 그 말이 취업시장에서 적지 않게만 느껴지던 나의 나이를 아무래도 좋을 나이로 만들어주었다. 그렇다. 나는 나의 커피의 시작이 다정한 것이라서 정말 기뻤다.  그래서 몸이 못 견뎌줄 걸 알면서도 못 마시는 커피를 수업에 올 때마다 한두 잔씩 마셨다. 뭐든 열심히 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 열심히 배우고 연습했다. 아예 하지 않거나 될 때까지 하는 것이 나의 '쪼'였다. 능숙한 바리스타는 없었지만 손에 얼룩덜룩 우유 거품과 커피 자국이 묻은 나는 있었다. 커피 향기가 손끝에서 계속 올라왔다. 수업이 끝나고도 공부는 계속되었다. 풀기 싫은 자격증 시험 예상 문제지를 밤을 새 가면서 풀었다. 수업 중에도 잘 되지 않는 스팀 연습을 반복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진지한 업인데 잘은 못해도 대충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국내 자격증과 국제자격증을 하나씩 땄을 때는 진짜 커피프린스도 나와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프린스는 아니더라도 커피 칠드런이라도 말이야. 어쩌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커피프린스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얀 셔츠와 검은색 앞치마를 단정하게 둘러맨 이들이 모여서 만드는 의로운 세상도 있을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었었나 보다.





   봄의 시작과 걸음을 맞추어 출근한 카페는 어수선했다. 면접을 본 담당자도 보이지 않았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배정받은 사물함으로 갔다. ‘너 오늘 출근 맞아’라고 확인해주듯이 사물함에는 유니폼이 곱게 접혀 있었다. 당시 카페들은 전 세계적인 질병인 '코로나19'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지점별로 결원이 발생하면서 다른 지점의 지원 인력이 필요했다. 내가 입사한 날도 수시로 다른 지점으로 지원을 나가야만 했기에 근무인원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몇몇의 직원들이 돌아가며 틈이 나는 대로 하나씩 일을 알려주었다. 그저 한 번 들어보라며, 어차피 까먹을 것이라고. 으레 하는 말들이었다.

   나이가 가장 많은 오빠인 홍삼에게도 일을 배웠다. 홍삼은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참을 밝은 톤의 목소리로 일을 알려주다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내가 알려주는 게 조심스러워요. 모두 일하는 방식이 다르니까 내가 알려줘도 누군가는 틀렸다고 할 수도 있어요. 우리는 지금 변동의 시기니까 유동적으로 받아들이세요. 이 방식이 꼭 정답은 아니니까."


   장난기가 많은 말투와 커다란 눈 덕분인지 강렬했던 홍삼이 이토록 조심스럽게 건네는 말이라면 그 속에 뼈가 있는 것이겠지. 어디서 느껴봤더라? 아, 맞아, 면접. 나는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시 한번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광화문 교보문고와 견주어도 될 만큼 결코 만만하지 않은 규모의 매장이었기에 청소 동선부터 익혀야 했다. 청소기를 들고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수북이 쌓인 유리컵을 빠르게 헹궈내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없었다. (퇴근은 생명 아닌가?) 청소는 기본이니까 기본 외까지 신경 쓸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새내기잖아? 물론 바리스타가 서비스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되새겨왔지만 첫날부터 청소에 가장 큰 고민을 품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꾹꾹 눌러 담은 불쾌한 예감은 조금씩 고개를 들이밀었다. 하루, 아니 이틀 만에. 직원들 사이에는 불편한 기류가 느껴졌다. 에이, 설마. 나는 애써 듣지 않기 위해 청소기 소리와 설거지 소리에 집중했다. 내 나이 서른. 이들도 그 무렵이었다. 우리는 질풍노도의 하이틴이 아니잖아. 다 큰 어른들이 회사에서 그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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