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시코이 Jun 28. 2023

사춘기 1호

생리를 시작하다

올해 초등6학년인 1호. 사실 작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생리에 관한 동화책도 여러 권 빌려주고 나도 읽어 보았다.

화장실에 들어간 후"엄마"라고 평소보다 큰 소리로 부를 땐  올 것이 왔나? 싶어 가슴이 철렁할 때도 있었다.

두 달 전 저녁이었다. 1호는 독감에 걸려 며칠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똥이 나올 것 같은데 안 나오는 느낌 알아?" "지금 기분이 너무 답답해~ 똥을 시원하게 누고 싶은데"

그녀는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더니 똥이 누고 싶은데 똥이 안 나온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평소에 야채를 잘 먹지 않는 1호인지라.."그럼 유산균을 먹어봐" "물도 많이 마시고,,"라고 이야기할 뿐

나는 내 일을 하고 있었다.

첫째의 독감으로 둘째는 아빠와 함께 안방에서 잠을 자고, 난 거실에서 자려고 이불을 깔았다.

자기 방에서  첫째가 잠을 자나 조용하다 싶더니, 갑자기  불이 켜지고. 옷방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첫째의 목소리.. " 엄마, 엄마 빨리 내 방에 들어와"라고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첫째의 방으로 들어갔다.  옷방에서 퍼져 나오는 불빛과 함께 첫째가 나에게 보여주는 건 팬티... 갈색에 가까운 생리혈이  조금 묻어 있었다.

'아 드디어 우리 첫째에게도 피할 수 없는 생리가 찾아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만감이 교차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와 관련된 책도 많이 읽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내가 생리를 할 때마다 첫째에게 생리대를 착용하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그랬다 우리는 모든 걸 오픈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첫 생리를 시작했던 시기도 초등 6학년 초여름경이 었으니 시기도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생리를 만났고, 당황스럽게도 학교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뭔가를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

다행히 6학년 담임 선생님이 여자 선생님이었고, 학교 뒤 사택에 살고 있는 선생님은 나를 데리고

사택으로 데리고 가서 씻을 수 있게 도와주고 뒤처리를 해주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첫 생리는  축복받을 일이었지만 나는 그 시절 너무 부끄러웠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생리 주기를 챙기지 못할 때는 옷에 생리혈이 묻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우리 엄마는 왜 나에게 그런 교육을 해주지 않았을까? 생리가 있다는 걸 이야기해 주지 않았을까?

왜 옷에 생리혈이 묻게 두었을까. 생각이 들더라.

4남매를 키웠던 우리 엄마는 하나하나 챙기기에 여력이 없었다.

나는 아무 준비도 없이 어떤 가르침도 없이

갑작스럽게 생리를 만나서 참 당황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면서

우리 딸에게는 이런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1호는 생애 처음으로 경험한 날

다행히 집에서 시작됐고

그동안의 교육으로 1호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우리 1호가 진정한 여자로 된 날.. 뭔가 마음이 짠하면서도 벌써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아장아장 어릴 때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언제 이렇게 커서 생리를 시작하다니...!!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남편도 참 섭섭하다고 했다.

그리고 퇴근하면서 딸이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들고 와서

첫 생리를 기념했다.

2023년 우리 1호 생일이 지난 한 달 뒤

3월 26일에 생리를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