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화에 대한 단상
고속도로에 진입하면 가슴이 뛴다.
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어느새 손바닥에 땀이 제법 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시나브로 심장이 쿵쾅거리며 요동을 치게 되는 것을 느낀다. 더군다나 뒤의 차량이 바짝 다가와 붙어서 간혹 경적이라도 울려댈 적에는 모골이 송연해지고 심박수가 광녀 널뛰듯 주체할 수 없이 빨라진다. 아직도 마음만은 혈기가 방장한 중년이지만 젊었을 때의 운전 스타일하고 너무나 확연히 달라져 가는 나의 모습에 나조차도 흠칫 놀라곤 한다.
나도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것일까? 너무나 심약한 중년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 물론 매사를 철저히 계획하고 도모함에 있어서 안전이 최고의 덕목일 수 있지만, 너무 보수적인 관점에 함몰되어 매사에 안전제일 주의자가 되어 혹시라도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물론 운전 속도와 운전 습관이 딱히 보수화와 상관성이 있는 것이 아닐지언정 나는 극히 개인적인 측면에서 사람의 보수화에 대해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은이들은 나이 든 사람들에 비해 무모하며, 적은 보상에도 위험을 감수하려고 든다. 만 30세를 기준으로 그 이상일 때 자동차 보험료가 감소하는 것 또한 20대 운전자의 사고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보수화의 생리적 요인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롭 러틀리지(Rob Rutledge) 영국 유니버시티 컬리지 런던 박사팀이 ‘도파민 호르몬’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덧붙인 말이다. 이 연구팀은 “고연령층이 저연령층에 비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며, 그 까닭은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쾌감을 느끼도록 하는 ‘도파민 호르몬’의 감소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보수화에 대한 이와 유사한 연구로는 미국, 영국 등의 뇌 과학자와 경제학자 그리고 심리학자로 구성된 국제 공동연구진이 진행한 연구가 유명하다. 뇌 스캔과 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fMRI) 촬영이 활용되어 실험적으로 진행된 이 공동연구에 따르면 고연령이 될수록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사람의 뇌 구조 자체의 변화에 따른 생체적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 연구 결과의 근거로서 우측 후두정엽 회백질의 양은 나이가 들수록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즉, 사람들이 의사 결정을 할 때 오른쪽 후두정엽의 회백질 양이 적은 사람일수록 보수적이 되어 의사결정을 할 때 위험 부담이 적은 쪽으로 결정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2개의 연구는 생리적 신체적 요인으로 보수화를 설명하는 연구였다면 나이로 보수화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이 있는데 이것이 이른바 ‘연령 효과’ 이론이라고 한다. 이 연령 효과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나이가 들면 신체적·정신적 대응 능력이 점점 퇴화되고 기대수명이 줄어들어 방어기제가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규범 지향성과 지배성이 강화되어 자신이 성취한 것을 지키려는 마음과 자신에게 익숙해진 대상을 고수하려는 성향이 점점 강해진다고 한다. 결국 자신의 삶에 최적화된 선에서 만족하려는 경향성을 보이게 되고 이러한 정서적 보수화가 정치적 보수화로 이어진다고 보는 이론이다.
그럼 2022년 대선에 즈음하여 한국 사회의 보수화는 어떤 모습일까, 선거의 승리 전략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한국의 경우에는 앞서 말한 생리 신체적인 요인과 연령 효과 외에 한국 특유의 여러 가지의 복합적 요인으로 인해 보수화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인다.
일반적으로 대표적 민주화 세대인 586세대(1960년대생)와 전후 베이비붐 세대(1955~1959년생)의 보수화가 한국을 급격하게 보수화 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근래에 특히 급격히 강해지는 2030 세대의 보수화는 매우 특이하고 중요한 흐름으로 생각되며 이에 대한 진단과 대책이 절실하다고 본다.
이 두 보수화의 경향은 보수 야당의 <세대포위론>이란 이름으로 대선 정국에서 선거 득표전략으로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세대 갈라치기의 좋지 않은 선례가 되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를 쓴 사회학자 장신기는 진보에서 보수로 정치적 정체성이 넘어간 32명의 시민을 심층 인터뷰했다. 왜 부자들에 비해 ‘지킬 것’이 적은 서민들이 자신들의 위치에 반하는 소위 계급배반 투표로 보수를 택할까? 이들을 이해하는 것이 현재 곤경에 처한 진보 진영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서민들은 말한다. “먹고 살기가 이렇게 힘든데 그놈의 민주주의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다”라고. 이렇듯 그들의 보수화에는 특히 2020년 시작된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해 정치적 민주화가 경제적 민주화로 이어지지 못한 불만과 배신감이 함축되어 있다. 그들은 선의를 가진 무능한 진보 진영보다 특권층에 해당하는 유능한 보수 진영을 지지하는 것이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 그들은 진보의 정치적 역량 부족으로 인해 실제 서민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작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구체적인 정책 평가보다 특정 정치 세력이 실질적인 이익을 주는지의 여부를 먼저 살핀다. 따라서 작년 부동산 가격 급등과 소상공인 몰락 그리고 이대남으로 표현되는 2030 세대의 불만 등으로 더욱 부각된 ‘진보 세력은 무능하다’는 생각을 불식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다.
많은 사람이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객관적인 지표를 살펴보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 15년과 이명박근혜 정권 10년을 비교해보면 사람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진보 세력이 더 유능했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처럼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는 인식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정치적 프레임에 의해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정치 세력이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그것이 결국 자신들에게도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사람들에게 이러한 진보는 무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것이다.
한국인들의 부동산 중시 가치관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렬하다. 집을 단순한 재산 가치로만 인식하지 않고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진보 세력은 사회주의적 가치관 때문에 사유재산 등에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다고 국민들은 생각한다.
대신 보수는 개인들의 부의 축적을 북돋우며 매우 존중한다고 사람들에게 여겨진다. 보수진영은 이런 물적 성취에 대한 자부심과 이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강한 욕구를 눈치 빠르게 잘 파고든다. 보수 세력이 국가 주도 경제 성장의 역사를 중요시하고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수 진영은 6070 장·노년층이 경험했을 구가 주도 경제 개발 시기의 역동적인 삶을 정치 동원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국가주의 전략을 행함으로써 사회의 질서 유지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한다.
힘이 부족한 개인은 국가나 재벌 등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심리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기존 질서를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조절하고 관리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판단한다. 결국 기본적으로 항상 현재 상황을 변경하고 개선하려는 성향을 가진 진보와는 달리 정반대의 정치 사회적 관념이 형성되어 보수화가 진행된다.
사람들은 또 진보의 무능함을 ‘유약하다’는 것과 연결시킨다. 이들은 진보 세력이 선의와 진정성은 있지만 권력의 냉혹한 속성을 잘 모르고 따라서 적절한 전략과 전술로서 자신들의 진정성을 현실화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낙심한다. 사람들은 진보 진영을 향해 “사람만 좋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은 엄연히 다르다”라는 등의 말을 자주 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글과도 같아서 약육강식의 논리가 작동하고 각종 부정부패, 탈법, 탈선, 모럴해저드가 생존의 논리로 용인되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경제는 가장 현실주의적인 논리가 작용하는 영역이다. 야당 보수 후보 처가의 수백억 대에 이르는 각종 권력형 비리와 각종 허위 경력 이력 의혹을 보고서도 진보 진영 후보 부인의 몇 십만 원 카드 비용 의혹을 더 크게 피부로 느끼고 비난하는 것이 우리의 보수화된 한국의 현실이다. 진보 세력은 적절한 전략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선의를 가진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타난 결과가 좋지 않다. 이렇게 ‘진보는 민주주의, 보수는 경제’라는 이항대립적 프레임과 연관된다.
한국 사회의 보수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여기서는 아주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제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전혀 새롭게 자리매김을 해야 하고 출발할 수 있어야 한다. 본질을 보아야 한다. 진보 진영은 이제 보수화되는 각 세대의 역사를 각각 개별화해서 살펴보고 그들 안에 있는 진실을 파고들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현재 한국 사회에서 급격히 보수화 되고 있는 사람들의 진심 속에 들어있는 보수의 여러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진보는 보수를 끌어안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보수의 핵심가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여겨진다. 그동안 기존의 보수는 겉으론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그 핵심 가치를 외면하면서 정경유착에 몰두해 왔다. 그리고 그런 왜곡된 사회 경제 구조로부터 사익의 추구를 극대화해오다가 ‘수구 보수’로 낙인찍히고 오해되기에 알맞은 행태를 보여온 것도 사실임을 인정해야 한다.
기존의 보수는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된 자들에게 손을 내밀기를 주저하며 냉혹한 적자생존 상황을 공고히 하면서 자신의 이익 추구에 여념이 없었다. 주류 특권층에 기생하여 오직 나만 살면 된다는 생존 전략과 태도를 견지해왔다. 작금의 한국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부정적인 상황이 거기에서부터 나온 결과라는 사실을 결코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보수층은 새로운 역사를 살아가는 세대들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가르치려고만 하는 꼰대가 되지 말고 다른 세대와 소통하고 괴리감을 줄여 나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보수의 가치는 결코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보수는 나쁜 게 아니며 소중한 가치를 담고 있다.
한국사회는 지금 좋은 보수주의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진보 진영은 새롭게 태동하여 엄연히 존재하는 새로운 보수를 껴안아 담아낼 수 있는 세계관과 그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줄 수 있는 즉각적이고 실용적인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살아날 수 있다. 이를테면 캐나다 및 선진국에서 실행했던 것처럼, 정파와 상관없이 죽어가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위한 50조 보상 즉각 실시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영국에서 보수라고 하는 것은, 가진 사람이 가난한 자에게 더 베풀려는 진실된 노력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의 노여움을 살 테니까요.”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이제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