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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l 07. 2023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서운 이유!

더닝 크루거 효과와 메타인지, 그리고 대오각성의 관점에서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 개그맨 이경규님이 TV 방송을 통해 날린 이 멘트는 한동안 세간에 회자가 되었습니다. 이 말은 어떤 분야에 대해 전문가도 아니고 전문 지식도 없으면서 자신의 주장이 마치 전문가인 양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인지 편향을 가진 사람을 비꼬는 말입니다. 요즘에는 사건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도 선동당한 채 일을 벌이거나 남을 설득하는 얕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종종 쓰이죠.

학교를 다닐 때 시험기간이 도래하면 우등생은 매우 불안하고 초조한 반면 열등생은 오히려 그 특유의 여유와 자신감이 넘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시험이 끝난 후에도 우등생은 시험을 망쳤다며 아두운 표정을 짓는 반면 열등생은 나름 시험을 잘 봤다며 밝은 표정을 짓습니다. 하지만 성적을 받을 때 우등생과 열등생, 두 사람의 명암이 서로 엇갈립니다. 시험을 잘 본다는 개념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이죠.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감이 넘칠 이유가 없는데도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 - Krugger Effect)'입니다.


코넬 대학교의 데이비트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는 1999년 진행한 실험에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능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무능한 사람이 자신의 무능함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죠. 반대로 유능한 사람일수록 어떤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까 봐 초조해하고 그런 자신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더닝 크루거 효과가 나타나는 사람은 치료가 가능한 걸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더닝과 크루거는 훈련을 통해 노력하면 자신의 능력 부족을 이해하고 인정하게 된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죠.


정치에서도 이런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곤 합니다. 정치 심리학(Political Psychology) 저널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연구자들은 피설문자들에게 실제 정치 지식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하였고, 본인들 스스로 지식수준을 평가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실험 결과 낮은 성적을 기록한 사람들의 경우 높은 성적을 기록한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정치를 잘 알고 있다고 과신하는 정도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반면 정답을 많이 맞힌 사람들은 오히려 실제 수준보다 자신의 지식수준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적은 정보로도 쉽게 확신하고 단정 짓는 편향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입장을 보이고, 또한 정치적 프레임에 잘 걸려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Pixabay


더닝 크루거 효과는 사회 여러 분야에서도 나타납니다. 어떤 분야에 대해 겨우 책을 한 권 읽고 난 후 자신이 그 분야를 마스터했다고 전문가처럼 떠드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할 말을 다하거나 똑 부러지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유형은 선임사원보다 오히려 신입사원이 많습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한 경우 업무가 더 복잡하고 어려워지며, 어떤 의사결정에 대해서 모든 가용한 측면을 고려하기 때문에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부득불 '예스맨(yes man)'이 되는 게 롱런 포지션에 유리하다는 것을 유경험적으로 직관적으로 잘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팀장급 이상 직책으로 근무하다 보면 가장 힘든 시기가 도래합니다. 바로 고과철이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라는 속담처럼 평소 동고동락을 해왔던 직원들을 대상으로 나례비를 세운 후 비율에 맞춰 업적 고과를 매기고, 그렇게 매긴 이유를 정리해서 면담 절차를 거쳐 피드백을 해야 할 때가 상사들의 가장 큰 고충 중의 하나일 겁니다. 직장인에게 있어 업적 고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연봉 인상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호칭 및 직책 상승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업적 평가를 위한 면담과 피드백을 할 때도 더닝 크루거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죠. 하위 평가 그룹에 속한 일부 직원들의 경우 자신의 업무 성과를 과대 평가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논리를 가지고 설명을 하는데도 자신이 왜 낮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때 상사들은 진땀을 뺄 수밖에 없습니다. 설득하기가 여간 쉽지 않거든요.


그럼 어떻게 하면 더닝 크루거 효과를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요? 바로 메타 인지(metacognition)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인지 능력'을 말합니다. 국내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IQ, 성장 환경, 공부하는 시간 등을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이들의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다름 아닌 메타인지 능력이었다고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그저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 지를 생각하면서 전략적으로 공부를 한다는 것이죠. 열심히 공부하지만 성적이 안 나온다면 자신의 메타인지 능력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일을 할 때도 메타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메타 인지가 높은 직장인의 경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전략적으로 판단함으로써 자신이 가진 유한한 자원인 시간과 노력을 안배할 줄 압니다. 신의성실한 직원이지만 전략적이지 못하다면 메타인지 능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제대로 이해한다면 간단하고 짧게 요약해서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문장이 복잡하고 길어지게 됩니다.


이렇듯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알고,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 지를 알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 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타인지 능력은 삶 전체를 메타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총체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어도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자신이 가진 메타인지 능력에 따라 다르게 이해하고 해석합니다. 인간관계나 연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상대방에게 어떤 존재감인지 객관적으로 알게 해주는 것 또한 메타 인지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타인지 능력은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죠.


출처 : Pixabay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메타인지 능력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깨달은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평소 똑똑하고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현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무지를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 '문답법', 즉 끊임없이 묻고 답을 하는 대화법을 자주 활용했다고 합니다. 문답법은 상대방의 신념이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모순(아포리아)에 이르게 되어 자신의 믿음이 잘 못되었다고 스스로 인정하게끔 만들어 상대방의 무지를 깨닫게 해 준 방식이었죠.


결과적으로 문답법은 소크라테스가 메타인지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주 활용하던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문답법은 현재 미국의 로스쿨에서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판례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고 학생이 답하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거기에 숨은 법의 원리를 도출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메타인지 능력의 본질은 '자신의 생각을 끄집어내서 다시 생각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Pixabay


"독서실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공부를 한다. 참 웃기는 일이었다. 내가 제일 공부를 잘하는데, 내가 제일 열심히 한다." 서울대 의예과라고 밝힌 한 대학생의 인터넷 커뮤니티 글이 많은 사람들의 웃픈 공감대를 형성한 적이 있습니다. 메타인지는 자신이 처한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메타인지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운동을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자신의 몸에 효과적인지 알고 운동을 시작한다는 것이죠. 시간의 투입량과 성과의 효율성이 비례할 수밖에 없습니다.


메타인지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성취와 연결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성취동기를 갖기 위해서는 강력한 트리거(trigger)가 필요한데 이런 트리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결핍에 대한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부의 추월차선: 언스크립트》의 저자 엠제이 드마코는 '결핍에 대한 고통' '열받고 대오각성(大悟覺醒)하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말 근무로 가족들과 플레이오프를 보러 가지 못한다면, 모기지로 인해 고통을 느낀다면, 은퇴 생활이 위협을 받는다면, 회사의 규정에 얽매여 자유를 구속받는다면 열받고 대오각성을 하라는 것이죠. 결핍에 대한 고통을 절박하게 느끼고 정신 차려 환골탈태해야 그 결핍에 대한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빨간 약을 먹고 현상 유지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찾은 것처럼 말이죠.


엠제이 드마코는 대오각성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 인생을 끝내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 무언가가 변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 무언가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라고 말이죠. 대오각성은 불교 용어로 부처가 도를 깨우친 정도의 큰 깨달음, 즉 깨달음과 통찰을 얻고 마음속에 쌓인 번뇌와 의혹이 사라지는 상황을 일컫습니다. 행동이 수반되는 깨달음이죠. 좋은 자기 계발서를 아무리 많이 읽어도, 도움이 되는 말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스스로 대오각성을 하지 않으면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오각성을 하면 뇌리에 영원히 새겨지고 망각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큰 지렛대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렛대는 우리가 내부에서 느끼는 고통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세운 기준에도 못 미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심한 고통이다. 《내 안의 잠든 거인을 깨워라》


어떤 사람은 별로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단기간 내에 변화를 일궈내고, 또 어떤 사람은 뛰어난 기술을 가졌는데도 단기간에 원하는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데 이는 결핍에 대한 고통을 느끼는 대오각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경험함으로써 지금 내 모습이 비참하고 고통스럽다면 뇌의 신경 시스템은 그 순간 바뀌게 된다고 합니다. 결핍에 대한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을 찾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죠.


결핍에 대한 고통 느끼고(각성, 覺醒) 행동으로 옮겨(각행, 覺行) 원하는 성취를 만드는 것이 대오각성의 여정입니다. 원효는 의상대사와 더불어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나던 도중에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사상을 깨달았습니다. 대오각성을 경험한 것이죠. 그는 당나라로 가던 발걸음을 신라로 다시 되돌려 자신이 느낀 불교의 진리를 포교하는 데 일생을 보냈습니다.


출처 : 인터넷 커뮤니티


컴포트 존(comfort zone)에 머무길 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오각성의 순간이 오더라도 현실을 벗어나길 원하지 않습니다. 힘들고 고된 여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결핍에 대한 고통에 이미 면역력이 생긴 탓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저는 항상 결핍에 대한 고통을 느끼며 극복하려 애쓰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결핍 환경에서 자라온 탓이 큰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가난에 대한 결핍의 고통을, 성장하면서는 학업 성취에 대한 결핍의 고통을, 취업 이후에는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결핍의 고통을 느끼며 극복하려 애쓰는 삶을 살아왔죠. 퇴직한 지금은 어쩌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결핍의 고통을 느끼며 이루려 애쓰는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저도 한때 대성각오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취업할 때까지만 해도 저는 나름 주변에서 인정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취업 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본격적으로 피 튀기는 경쟁사회에 내던져진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소위 잘 나간다는 선배와 동료, 후배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했고, 사회에서는 비교 우위적 삶과 경제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악전고투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삶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워라밸은커녕 직장생활이 인생의 가장 큰 우선순위에 있었습니다.


힘들고 고된 육아 문제는 짝꿍에게 완전 맡기다시피 했습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그때는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풍토가 만연하던 시절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미취학 아동인 두 자녀가 잇달아 다치는 일이 벌여졌습니다. 천둥벌거숭이였던 첫째 아들은 집안에서 뛰어다니다 벽면 거울이 바닥에 떨어져 발목을 다치게 되어 깁스를 해야만 했고, 둘째 달은 펄펄 끓는 주전자를 쏟아 전신화상을 입어 병원 입원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저는 안전사고 소홀을 문제 삼아 짝꿍을 심하게 나무랐습니다. 둘째 딸의 입원 치료로 짝꿍이 병원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부득불 첫째 아들은 부모님 집에 맡겨야 했고, 저는 혼자 집에서 출근하고 퇴근 후 병원으로 가서 짝꿍과 돌봄 교대를 하는 상황이 몇 개월 간 이어졌습니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는 속담처럼 장인어른은 후두암 말기 상태였고, 모친은 건강진단에서 위암 초기 진단을 받는 상황이 벌여졌습니다. 그 와중에 후배 집들이를 갔다가 30평대 새 아파트의 규모와 인테리어에 적잖은 충격과 상대적 박탈감을 받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뭐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한 저의 삶과 현재 처한 삶의 환경을 비관하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삶이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솔직한 심정으로는 속세를 벗어나 출가를 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깐요. 그때 저는 제가 느끼는 불행의 원인인 결핍의 고통에서 절박하게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제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행동은 책을 읽는 것뿐이었죠. 저를 괴롭히는 결핍의 고통이 무엇인지, 삶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결핍의 고통을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 등을 책을 통해 알아보고 또 해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불행한 얘기를 주변 지인이나 동료들에게 말하는 것은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도서관에서 인생과 행복에 관한 책 몇 권을 빌려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잠도 아껴가며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 간 수십 권을 책을 읽어나갔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걷히듯 제가 그토록 찾던 삶의 실체들이 하나둘씩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여태껏 사는 게 힘들었던 이유는 삶이란 여정을 경쟁으로 간주해 비교 우위적 삶을 살아야 삶의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제가 잘하고 열심히 해야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삶의 자그마한 실수나 균열도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완벽주의적 성향 탓에 저는 삶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죠. 삶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여정이 계속 이어졌고 마침내 저는 이 세상의 모든 상황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저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란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잘하지 못해도 조금 실수를 하더라도 세상은 그럭저럭 살만한 그런 곳이란 생각이 들자 세상을 보는 프레임과 마인드셋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지지 못한 것보다는 가진 것에 집중하게 되었고, 컨트롤할 수 없는 것보다는 컨트롤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풍요로움과 감사함에 초점을 두고 세상을 바라보니 마음의 조급함이나 초조함이 사라지고 잃어버렸던 여유와 즐거움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 처마 밑에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죠. 이후부터 저는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삶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여전히 진행형의 삶을 살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한층 고양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삶의 기저에는 비전보드라는 심상화(心象化)의 기법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출처 : Pixabay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는 그의 제자 자로(子路)에게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많이 아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음을 겸손히 인정할 때 비로소 진짜 배움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입사원 때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 년이 지나면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떠드는 신입사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운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 년 정도 운전을 하면 근자감이 높아지는데 이때가 사고의 위험이 가장 높아지는 시점이라고 합니다. 오랜 기간 운전을 한 사람일수록 더욱 신중하게 운전을 하는 것과는 대조가 되는 것이죠.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안다는 프레임에 갇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마치 진실이고 진리인 양 착각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이런 프레임 속에 갇혀 있는 사람은 자신과 의견이 다를 경우 타인의 말과 생각을 공격하고 도외시 여기는 경우가 많아 관계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방면에서 위기가 닥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마지막으로 한 연설이 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이죠. 이 말은 배고픔의 정신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갈구하라는 뜻입니다. 즉,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인식하고 끊임없이 배움에 대한 정진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여전히 배고프고 어리석습니다. ^^


그럼 어떻게 하면 자신의 삶을 효율적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게 하는 메타인지를 향상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문답법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3Why'라고 부르는 문답법도 있습니다. 왜(why) 그 일을 하기를 원하는지? 그래서 왜(why)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하는지? 그래서 왜(why) 돈이 행복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는지? 등의 심층 문답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체화하고 가시화하는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항상 왜(why)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취의 동기가 될 수도 있고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가르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알고 있다는 의미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남에게 올바르게 설명할 수 있고, 또 가르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가르치다 보면 자신의 알고 있는 것이 틀리다는 것을 알 수 도 있고, 또한 가르치면서 온전한 지식이 되는 것이죠. 세 번째,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는 명상이나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성찰할수록 자신을 더욱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 글을 쓰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고, 퇴고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신의 생각이 올바르게 정리가 되고 또한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됨으로써 메타인지 능력이 향상됩니다. 다섯 번째, 대화나 토론을 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의견이나 시선을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여섯 번째, 주변 사람들을 통해 자신에 관한 피드백을 받는 것입니다. 친한 지인이나 친구가 있다면 부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때 올바른 태도는 상대방의 부정적인 피드백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상대방의 의견을 수렴하는 태도일 겁니다.


출처 : Pixabay


'무식하면 용감하다'와 비슷한 속담이 있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즘 들어 옛 속담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여러 측면에서 실감하는 중입니다. 과학적 실험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선조들의 오랜 삶의 지식과 체험들이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만들어진 속담들이니 틀리진 않을 겁니다. 이 속담들을 더닝 쿠르거 효과와 메타 인지 능력을 덧대 본다면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들어 저는 하룻강아지가 되고 싶단 생각을 자주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요즘 사회초년생으로 인생 2막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영업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제가 식당 창업을 결정했을 때는 아마 하룻강아지의 입장으로 섣불리 판단했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속담과 달리 저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무턱대고 하려는 것이 아닌 여태껏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일을 용기 있게 도전했다는 의미에서 하룻강아지란 표현을 하고 싶었습니다. 인생 뭐 그리 대단한 게 있습니까? 인생 그까이거 들이대고 노력하다 보면 그 결과도 그리 썩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인생 2막! 저처럼 뭔가를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하룻강아지가 한번 되어 보는 것은 어떠실까요?


The End Of The World - Skeeter Davis(이 세상 끝-스키터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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