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루, 복원수술, 장폐색
배를 한 번이라도 수술했던 환자들은 장폐색(Mechanical obstruction)이라는 것이 생길 수 있습니다.
수술의 횟수가 많을수록
배안에 퍼져있던 염증이 심할수록
나중에 "장폐색" 이라는 병이 더 잘생길 수 있습니다.
장폐색의 치료는 둘 중 하나입니다. 수술하거나 수술을 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막힌 부분이 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장폐색이 심하게 와서 풀리지 않는다면 치료를 위해서 수술을 해야 할 수밖에 없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수술이 장유착을 또다시 만들 수 있어 장폐색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수술을 하면 할수록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장유착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금식하고 열심히 걸어 다니면서 자연적으로 풀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오히려 좋은 치료 방법입니다.
최근 퇴원한 지 1달 정도 된 할머니가 외래진료를 받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환자분은 저에게 2번의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첫 번째는 에스결장(sigmoid colon)이 터지면서 결장루(대장 장루, colostomy)를 만드는 하트만 수술(Hartmann`s op)을 받으셨습니다. 두 번째는 이 장루를 다시 배 안쪽으로 넣어서 남아있는 직장과 연결하여 예전처럼 항문으로 대변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수술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큰 수술을 두 차례나 받으셨으니 다른 환자들보다는 장유착, 장폐색의 가능성은 좀 더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겠죠.
이 할머니 환자분은 시골에서 아들과 농사 지으시면서 사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은 입원부터 퇴원까지 늘 할머니를 모시고 다녔고 할머니는 치료받는 동안에도 고추 농사, 벼농사, 밭에 자란 풀까지 늘 농사 걱정이셨습니다.
두 번째 수술 후 퇴원하시면서
"나 집에 가면 고추 따야 하는데. 언제부터 할 수 있어요??
아들이 혼자 다 못해.
같이 해야 해."
"할머니.
아직 안돼요.
이제 수술한 지 2주 쫌 넘었는데, 상처 아물고 충분히 회복되려면 일하시면 안돼요.
그리고, 개복수술해서 배에 수술했던 흉터도 크잖아요??
배에 힘주거나 힘들어가는 일하면 상처 벌어질 수도 있고 나중에 그 자리로 '탈장' 생겨요.
퇴원하시면 일하지 말고 좀 쉬셔야 해요."
이렇게 신신당부를 했지만 퇴원하기 전부터 걱정거리였던 농사일을 집에 가자마자 기어코 아들과 함께 하셨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외래로 아들과 함께 오신 할머니는
"소화가 안돼요.
자꾸 속이 미식미식하고, 배가 땅땅한 거 같고.
방귀도 안 나오는 거 같고."
배는 심하게 불러있지 않았지만,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장폐색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할머니.
장유착이나 장폐색 때문에 그럴 수 있으니깐 복부 X-ray 먼저 찍어 볼께요."
복부 X-ray에서는 장폐색이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었고 아랫배가 자꾸 뭉치는 것 같다고 하여 복부 CT까지 촬영하였습니다. 다행히 대장이나 소장에 문제가 있어 수술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소장이 팽창되어 있었고 배꼽 아래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는 피부를 보니 소장이 밀고 나와있는 상황이였습니다.
바로 '절개성 탈장(incisional hernia)' 이라고 하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피부는 괜찮지만 수술했던 자리의 단단한 근육과 근막이 제대로 붙지 않으면서 배안의 소장이 그 자리로 밀고 나오는 병변이었습니다.
"할머니.
퇴원하시고 집에서 농사일 같은 거 많이 하셨어요??"
"농사철이니깐 해야지.
아들 혼자서 다 못해.
내가 좀 도와야지."
절개성 탈장(incisional hernia)
이전에 시행했던 수술의 절개했던 부위 근육층이 벌어지면서 복강 내 장기 특히 소장이나 대장이 결손 된 부위를 통해서 밀려 나오는 현상을 말합니다. 일부 논문에서는 개복 수술하고 10년이 지나면 절개성 탈장이 11% 정도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하는데 2/3는 5년 이내에, 1/3은 5년 이후에 발생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논문에서는 개복 수술 후 1년 이내에 7.4 ~ 11%가 절개성 탈장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보고하기도 합니다.
Reference : 외과학
위의 참고 문헌인 외과학 책에서도 절개성 탈장은 수술 후 1달 이내에 시작될 수 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술하고 1달간은 무거운 것을 들거나 배에 힘들어가는 활동이나 일은 하지 말라고 교육하는데, 입원 내내 아들 걱정, 농사 걱정 많으셨던 할머니는 기여코 일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할머니
장폐색도 생겼는데, 배꼽 아래 뭐가 자꾸 뭉치고 꿀렁꿀렁하다고 하셨죠??
그게 탈장이 생긴 거예요.
제가 퇴원하고 힘든 일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장폐색이 자연적으로 안 풀리면 또 수술할 수도 있어요."
이미 외래 오실 때부터 입원 준비를 해오셨던 할머니는 또 수술할 수도 있다는 말에 열심히 걸어 다니시면서 운동도 적극적으로 하셨습니다. 열흘 정도 입원하셨지만 다행히 수술 없이 장폐색이 좋아지셔서 퇴원하고 얼마 전 아들과 함께 외래로 오신 것입니다.
"할머니.
복부 X-ray 보니깐 괜찮아요.
일 많이 하셔서 배에 탈장 생긴 거니깐 앞으로는 배에 힘들어가는 일 하시면 안돼요.
지금은 탈장 구멍이 작은데, 자꾸 배 힘들어가는 일하시면 그 구멍이 더 커져요."
"그런 게 생겨서 그런거구만.
배꼽 아래가 꿀렁꿀렁해.
앉았다가 일어나려면 거기가 불룩해져서 부여잡고 일어난다니깐.
또 어떻게 하면 사르르 아프고, 어떨 때는 괜찮고."
"그러니깐 어디 다니실 때는 '복대' 꼭 하고 다니셔야 해요.
그거 자꾸 커지면 또 수술해야 해요."
"수술??
이제 수술 그만해.
또 수술해야 하면 그냥 죽게 냅둬."
"그러니깐 일 그만하시고, 복대 잘하고 다니세요."
검사 결과도 좋고 이상 없어서 특별히 정기적으로 외래 오실 필요 없다고 보호자(아들)에게 말씀드렸더니 조용히 듣고 있던 아들이 이런 말을 하십니다.
"아들이 돈을 많이 벌어야 엄마 일을 안 하게 해 줄 텐데요."
예전에도 할머니는 아들이 돈 벌어서 다 병원비 해준다며 그런 아들에게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입원 치료받던 내내 논농사 걱정, 밭농사 걱정을 하셨던 거 같습니다.
미소를 띠면서도 늘 말이 없던 아들도 오늘은 미안하다고 합니다. 아파도 일해야 했고, 그런 엄마에게 맘 편히 쉬게 해드리지 못했던 것이 죄송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엄마와 아들은 서로에게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