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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 닥터오 Nov 21. 2021

소장이 20%만 남았습니다.

지치시면 안 됩니다.

"소장이 20%만 남았습니다."

건전지나 밧데리의 전력이 20%가 남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소장의 길이가 20%만 남았다는 것이죠. 핸드폰처럼 충전해서 100%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타깝게도 우리 몸에 있는 여러 장기는 간(liver)을 제외하고는 수술하기 전의 크기나 모양으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논문과 교과서에 따라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성인에서 소장은 길이가 5 ~ 6m 정도로 알려져 있고, 십이지장(duodenum), 공장(jejunum), 회장(ileum)의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입으로 들어온 음식물은 위(stomach)에서 작게 분해되고 이 음식은 소장에서 영양분이 흡수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실제 수술하면서 확인해보면 다양한 길이의 소장을 보게 되는데, 다른 장기보다 길고, 긴 만큼 복강 내 외부요인에 노출이 잘 되기 때문에 소장은 장유착(adhesion)과 장폐색(Mechanical obstruction, ileus)의 위험성이 높습니다.


3주 전 갑작스런 복통 때문에 응급실로 오신 70세 넘으신 남자 환자가 있었습니다. 평상시에도 심장관련 약을 복용하고 있었고, 복부 CT와 피검사를 해보니 소장의 일부가 많이 부어있고 팽창된 상태였습니다. 피검사에서도 염증수치(WBC, CRP)가 높아져 있었기 때문에 심장약은 언제부터 드셨고, 예전에 배 수술은 받은 적은 없으신지 물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협심증이나 부정맥처럼 심장이 안 좋을 경우 혈관 안에 피딱지(혈전)가 생기면서 갑자기 혈관을 막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이때 이 혈전이 소장이나 대장을 먹여살리는 혈관을 막는 경우 급성 장 허혈(ischemia)이나 괴사(necrosis)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과거에 배 수술을 한 경우 장이 들러붙는 유착이나 장폐색이 생겨서 복통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확인해봐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담당 외과의사입니다.

기록을 보니깐 아스피린이랑 심장약을 드시네요.

배 수술한 적은 없으세요??"


"심장관련약은 먹은 지 몇 년 됐고, 배 수술한 적은 없어요."


"복부 CT를 보면 장이 많이 부어있고, 팽창되어 있어요.

이쪽장으로 혈류 공급이 잘되지 않고 있어요.

복통도 심하고 염증 수치도 올라간 것으로 보면 소장 허혈과 괴사가 생긴 거 같습니다.

수술해야 합니다."


"아스피린을 복용하시는 경우에는 응습수술이 아니면 5 ~ 7일 정도는 약을 끊고 수술할 수 있지만..

현재 환자분은 그렇게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출혈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해요.

수술이 늦어지면 소장 괴사 때문에 생기는 염증이 몸 전체에 퍼지면서 패혈증(sepsis)이 생길 수 있습니다.

패혈증으로 진행하게 되면 혈압도 떨어지고, 심장, 콩팥 등 여러 장기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아주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출혈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죠."


수술과 관련된 설명, 여러 위험한 상황, 앞으로 하게 될 치료에 대해서 설명하고 수술을 진행하였습니다. 복강경으로 배안을 확인해보니 예상했던 대로 혈류 공급이 안되어 색이 변해있고 유착 때문에 꼬여있는 소장이 보였습니다.


"배수술도 한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런 것들이 생겼네."


바로 장유착과 유착 밴드(소장의 목을 조르는 듯한 띠)때문에 괴사 되어있는 소장이 보였던 것입니다.


보통 장유착이라는 것은 복부 수술을 했던 환자에게서 잘 생기지만 이렇게 수술한 적이 없이 자연적으로 장유착이 생기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습니다.


유착되어 엉켜있는 소장을 풀었지만 파랗고 어두운 색깔로 변해버린 소장은 생기 있는 핑크빛의 장색깔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몸의 장(소장, 대장)은 일정 시간 혈류 공급이 안되면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변해버린 소장은 절제하고 건강한 장을 찾아서 문합하는 수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술하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제거하였다 하더라도 수술 마무리하기 전에 배 안 전체를 다시 확인해봐야 합니다. 혹시라고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수술 전 검사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것은 없는지?? 하나하나 다시 확인해봐야 합니다. 그렇게 위, 소장, 대장, 그 밖의 배 속의 다른 장기까지 일일이 확인하고 수술을 마쳤습니다.


복강경으로 소장 절제술을 했기 때문에 수술 부위 상처는 개복수술에 비해서 작았지만 이 환자는 다른 환자에 비해서 통증에 예민하셨기 때문에 좀 늦게 걸어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도 상처부위 통증이 좋아지면서부터는 그동안 못했던 운동까지 하시듯 아주 열심히 병원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렇게 열심히 걸어 다니셨지만 장의 운동은 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수술하고 매일 찍었던 복부 X-ray의 장폐색 증상은 좋아지는 듯하더니 1주일이 지나고 나서는 더 이상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염증 수치는 좋아져서 정상수치까지 떨어졌지만 돌아올 듯 돌아올듯하던 소장의 장운동은 멈춰버린 것 같았습니다.  


수술하고 2주째 되는 시점에 환자, 보호자와 함께 앞으로의 치료에 대해서 상의하였습니다.


"수술하고 이쯤 되면 방귀도 잘 나오고 식사도 하면서 퇴원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여기 복부 X-ray에서 보이는 것처럼 장운동이 돌아오지 않아요.

며칠째 X-ray 사진이 비슷해요. 

변화가 없어요."


"환자는 수술한 적도 없었는데, 장유착과 장폐색이 생겼어요.

이번도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환자분은 체질적으로 유착이 잘되는 것 같아요."


"다시 배안은 확인해보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처음 수술하고 회복되는 속도가 늦었기 때문에 보호자들에게는 2차 수술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얘기했었던 상태였습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수술을 해달라는 보호자들이었지만..


환자는 아주 완강히 수술을 거부하고 계셨습니다.

첫 번째 수술에서 수술 자리 통증도 심했고, 자신의 몸은 자신이 더 잘 알기 때문에 수술 없이 운동하면서 자연적으로 풀리도록 노력해보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상시에도 등산 자주 다니시고, 걷는 것을 많이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며 수술은 절대 안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외과의사는 수술을 하고, 환자는 수술을 받습니다.


수술 전의 그 두려움과 걱정

수술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합병증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이 병원에서 수술하는 것이 맞을까??

이 의사 선생님한테 수술받는 것이 맞을까??

수술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환자들은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마취가 되며 의식이 흐릿해져 가는 순간까지도 말입니다..


회복이 늦어지는 환자들을 보면 외과의사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수술을 잘못한 것인지??

검사에서 뭔가 놓친 것은 없는지??

수술하면서 확인 안 한 것은 없는지??


2차 수술을 해야 한다면 언제 해야 할지??

어떻게 수술해야 할지??

만약 환자 상태가 계획했던 수술보다 더 심한 상황이라면??


결국 이환자는 첫 번째 수술 후 20일 정도 되었을 때 두 번째 수술을 하였습니다. 제가 2차 수술을 해서 다시 배안을 확인해봤으면 했던 때가 14일째고 이후 자연적으로 안 풀리고 배가 더 불러온다는 것을 느낀 환자가 두 번째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 그보다도 며칠 더 지난 시점입니다.


저도 아주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언제 수술하는 것이 맞을지?? 혹시 운동으로 잘 풀리는 것은 아닐지??

내심 수술 없이 자연적으로 풀렸으면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안될 거 같다는 확신이 든 후론 가족들과 환자와 여러 차례 상담을 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수술을 하면서 배안을 확인해보니 계획했던 수술보다 '아주 아주 심한' 상태였습니다.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첫 번째 수술했던 자리 아래로 예전 소장 문합술을 했던 소장과 주변의 다른 건강한 소장들이 한 덩어리처럼 뭉쳐있었습니다. 유창박리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치 돌덩이 같았습니다. 복벽에서 그 소장을 떼어내는 것조차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오전 10시에 들어간 수술은 오후 5시가 돼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소장의 20% 정도만 남길 수 있었고, 그 소장을 오른쪽 대장에 연결하는 수술을 한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소장을 20%라도 남길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수술이 끝나고 외래 진료실로 돌아와서 멍하니 수술 전 찍었던 환자 복부 CT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2주째 수술했다면 이렇게 소장을 많이 잘랐을까?? 아니면 2주째나 3주째나 결과는 똑같았을까?? 2주째 환자를 더 설득해서 억지라도 수술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수술 후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입니다.

'수술 결과와 얼마나 큰 수술을 받으셨는지' 가족들에게 전해 들으셨던 환자는 회진 온 저에게 미안하다고 합니다. 괜히 고집부렸다고. 3주째 되니깐 운동해서 안 풀릴 거 같다는 것이 느껴졌다며..


저도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좀 더 일찍, 좀 더 억지로라도, 좀 더 강하게 환자를 설득했어야 하는건데..


내일은 환자를 보며 이런 말을 하렵니다.

"큰수술 받고 잘 회복하셨어요.

오늘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가실께요.

저번처럼 운동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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