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관협착증, 아버지, 감동
며칠 전 아버지를 모시고 척추 전문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시고 축산업(소, 돼지)도 하시면서 가족을 위해 일하셨던 아버지 허리가 몇 년 전부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70세가 다 되어 가시는 연세로 여전히 논농사며 밭농사를 하시니 몸이 고장 안 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매년 일 좀 줄이시라고. 일 좀 그만하시라고 말씀드려도 줄인다 줄인다 하시지만 제가 볼 때는 내년에도 여전할 거 같습니다. 오래전부터 허리 통증이 있었지만 근육통이라고 생각하시면서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픈 것은 쉬면 좋아지겠지 하셨던 거 같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아프다고 하신 것이 6년 전이었습니다. 제가 서울아산병원에서 대장항문외과 펠로우(전임의, 임상강사)를 하고 있을 때 서울에 있는 척추전문병원에 대학 선배가 있어서 진료를 받기 위해 모시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님. 이 정도면 약 먹고 해결이 안돼요.
여기 MRI에서 보이시는 것처럼 허리 신경들이 나가는 구멍이 좁아졌어요.
일 많이 하시고, 몸 많이 쓰시는 분들이 연세가 들어가면서 생기는거예요.
이 정도면 수술해야 합니다."
바로 척추관협착증(spinal stenosis) 이라는 병이 생긴 것입니다.
아버지는 수술이라는 것에 처음부터 굉장한 거부감이 있으셨습니다.
허리 수술하면 못 일어날 수 있다.
평생 다리 못쓰면서 살 수 있다.
평생 누워있어야 한다더라.
후유증이 많다.
부작용이 많다.
이런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으셔서 그런지 허리에 칼대는 것은 절대 안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전문가가 그렇게 얘기하는데, 아버지 몸이 지금 그만큼 안 좋다는거예요.
수술이 필요한 만큼 일하는 것도 줄이셔야해요."
저는 수술하는 것이야 두 번째 문제고, 이참에 아버지 농사일하시는 것을 어떻게든 줄여보려는 생각에 바로 일 줄이시라는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그 말의 효과도 잠시뿐이었고, 일의 규모는 좀 줄이긴 하셨지만 6년이 지난 지금(2021년)까지도 여전히 일을 하고 계십니다.
수술에 거부감이 많으셨던 아버지는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주변에서 용하다고 하는 병원을 다니시거나 동네에서 좀 떨어진 규모 있는 신경외과에서 주사치료를 받으셨습니다. 6년 전 수술하는 것이 좋을 거 같다는 신경외과 선배의 말에도 불구하고 임시방편으로 약물과 시술을 받으셨던 아버지는 올해 여름부터 오른쪽 다리와 허벅지, 엉덩이까지 통증이 더 심해지면서 종아리와 발은 감각이 떨어지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일 줄이셔야 한다고 했잖아요.
아예 내년부터는 그만하셔야해요."
아버지도 일을 그만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벌려져 있는 논농사, 밭농사를 지금 당장 정리할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알지만 "척추관협착증"이라는 병이 힘든 일을 많이 하거나 문제 있는 부위를 근본적으로 치료하지 않고 사용했을 때 더욱더 악화된다는 걸 알기에 저도 아버지와는 또 다른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너무 힘드셨던지.
"이제 걷는 것이 좀 힘들다.
오른쪽이 아프니깐 자꾸 비스듬히 걷고, 자세가 안 좋으니깐 왼쪽 다리도 아픈 거 같아.
수술이든 뭐든 좀 치료를 받아야 할거 같다."
그동안 고집스럽게 일하시고 그러면서도 아프다고 하시는 것을 봐왔던 저는 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질 거 같았습니다.
"아버지.
저번에도 말씀 드렸던거처럼 이제는 수술해야 해요.
아버지 몸은 약이나 시술로는 안돼요."
평소 신문을 자주 보시는 아버지는 신문 광고에서 나오는 수술부위 상처를 작게 만들어(미세침습) 척추관협착증을 치료하는 것을 보시고는 신문 스크랩하시듯 이런 것들을 모아 두고 계셨습니다.
"이런 병원들은 구멍만 뚫어서 현미경으로 수술한다던데.
나는 척추에 크게 상처내서 하는 수술하는 것은 안 해.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대수술 하지 않고도 치료한다니깐..
허리에 쇠 박고 나사 박고 하는 것은 안된다."
아버지가 얘기하시는 것은 '현미경'이 아니라 작게 구멍만 뚫어서 신경이 지나가는 길을 넓혀주는 '내시경척추수술' 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현재 상태를 보고 어떤 치료 방법이 있는지, 어떤 수술로 치료해야 하는지는 당연히 신경외과 선생님이 결정해야 합니다. 비록 아버지의 허리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수술하는 범위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허리 수술은 절대 안 하시겠다던 아버지가 마음을 바꾸신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얼마나 아프셨으면 그런 결정을 하셨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근무하는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경외과 동기가 근무하는 척추전문병원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진료 보기로 하였습니다. 외래 진료 후 MRI 촬영을 하고 아버지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가면서 '내시경으로 수술할 수만 있다면 정말 다행일텐데.' 이런 마음으로 검사 결과를 듣고 있었습니다.
"아버님.
MRI 검사한 거 보니깐 협착증이 정말 심하세요.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가 다 문제가 있네요.
이거 다 손보려면 허리 수술 크게 해야 해요.
그런데. 아버님이 제일 불편해하시는 것이 통증이라고 하셨고 또 발이랑 다리가 남의 살같이 감각 떨어지는거잖아요??
감각 떨어지는 것은 돌아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근데, 통증 좋아지는 것은 내시경 수술로도 많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저와 진료 보러 가기 전부터 수술하면 몇 %가 좋아지는지??
합병증 같은 것은 없는지??
얼마나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지??
일상생활은 언제 가능한지??
허리 보조기는 언제까지 차야하는지??
신경외과 전문의가 아닌 저에게 물어보시니. 제가 대답해드릴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허리를 크게 열고 해야 하는 대수술이 아닌 내시경척추수술로도 좋아질 수 있다는 말에 외래진료 내내 너무나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순간 저에게 수술받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아마 '이런 심정으로 설명을 듣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제발 큰 수술이 아니기를..
수술 후 담담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는 "수술 잘 되었습니다."라는 한마디.
큰 수술이었는데, 잘 회복하고 있습니다.
경과가 좋아요. 식사도 잘하시고.
충분히 좋아지셨어요. 이제 퇴원하셔도 되겠습니다.
다 좋아지셨네요. 이제 병원은 안 오셔도 됩니다.
환자와 보호자는 이런 이야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랄까요..
수술 날짜를 잡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아들아.
우리 동네에서 버스 타고 20분 정도 가면 읍내(시내)가 나오거든.
거기에 O내과가 있어.
그 의원이 생긴진 한 30년은 됐을거야.
요즘 새로 생긴 병원처럼 깨끗하고 좋은 병원도 아니야.
게다가 1층이 아니라 2층에 있어서 나이 많은 사람들은 올라가기도 힘들어.
옛날 건물이니깐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계단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어.
근데, 이병원 선생님은 참 한결같아.
항상 친절해.
환자도 많고 일이 바쁘면 짜증도 나고 얼굴에 표가 날 텐데, 그런 게 없어.
다리 아프고, 무릎 아프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2층이라 계단으로 올라가기 힘들텐데 꼭 그 병원으로 가더라.
너도 수술 많고 일이 많아도 환자들한테는 친절하게 해라."
늘 아버지는 저에게 "아무리 바빠도 늘 환자에게는 친절해야 한다." 라는 말을 밥먹듯이 하십니다. 아프고 힘들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모질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이런 아버지가 어제 허리 수술을 하셨습니다. 요즈음은 간호간병통합시스템이라고 하여 보호자나 간병인 없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오전 진료 때문에 수술방에 들어가시는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진료를 마치고 점심이 지나 부랴부랴 병실로 갔을 때는 그간의 걱정은 뒤로한 채 편하게 누워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술 전날부터 불안감과 걱정으로 잠을 잘 못 주무셨던 아버지가 수술이 잘 되었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아침 일찍부터 수술 들어가기 전까지 몇 번을 와서 설명해주고 마음 편안하게 해 주었다며 신경외과 동기에게 너무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불안했던 아버지를 맘 편하게 해 준 신경외과 동기에게 밥 한 끼 대접해야한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는
아마
아들인 저도
"설명 잘해주고 친절하고 감동을 주는 의사"
이런 의사가 되길 바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