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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 닥터오 Jan 17. 2022

환자가 내 맘 같지 않아 속상합니다..

장루, 포기, 잔소리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하고 진료하면서 많은 경험을 합니다. 


의과대학을 다니면서 수업시간에 의학지식을 배우고 시험을 치르면서 머릿속의 지식은 풍부해지고 지금이라도 환자를 진료할 수 있을 거 같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치료하는 과정은 또 다른 세상입니다.


사람은 로봇이나 기계처럼 매뉴얼만 있으면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책에 나오는 대로 "A이면 a이다. B이면 b이다."라고 단답식으로 진단하고 치료할 수 없는 것이죠.


대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취업하는 경우도 있고, 대학원을 가서 관심분야를 좀 더 집중적으로 배운 후에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현장에서 일하면서 배우고 익히고 소위 말해 '깨지면서' 자신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의사는 어떨까요??


환자를 치료할 때 설명서, 안내서, 매뉴얼대로 진단하고 치료하고??

이렇게 했다가는 곧 병원문 닫아야 할 것입니다.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은 기계처럼 충전하고 나사를 조이고 부속품을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치료받는 환자의 과거 경험이나 생각, 마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까지도 생각하고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학서적에 나와있는 지식만으로 부족하고 수많은 환자 치료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야 합니다.


"수술하고 운동을 하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안 하지??

이런 음식은 드시지 말라고 했는데..

담배, 술은 안된다고 했는데..

이런 활동은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환자들은 수술 후 주의 사항이나 해야 할 권고 사항을 제대로 안 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까지 할 때면 저도 맘 속으로 느껴지는 답답함과 스멀스멀 올라오는 '화' 때문에 힘들 때도 있습니다. 


최근 대장이 천공되면서 복막염이 생겨 장루(인공항문)를 만든 할머니 환자가 있었습니다. 배 안의 염증과 복부 체지방으로 어렵게 장루를 만들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수술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80세가 넘는 연세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모두의 바램대로 위험한 순간들을 잘 이겨내시고 이틀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큰 수술을 받고 일반 병실로 가시게 되면 적극적으로 병동을 걸어다니면서 운동을 하시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걷는 운동을 하면서 장운동과 폐운동이 잘되어야 장폐색이나 폐렴처럼 합병증 없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회진 때마다 '운동하셔야 한다'고 설명드려도 알겠다는 말씀만 하시고 침대에서 일어서는 것조차 안 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문제가 있는지 검사를 하여도 이상이 없었고 통증 때문에 아파서 안 움직이는 것인지 해서 진통제를 바꿔보거나 용량을 올려보기도 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보호자로 아들이 있었기에 환자의 수술했던 과정이나 제거된 병변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할머니는 정말 큰 수술을 받으신거에요.

수술할 때 배안의 상태가 이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아주 심했었습니다.

이렇게 운동 안 하시고 누워만 있으면 여러 가지 합병증이 생길 수 있고 장폐색이 오면 더 고생하실 수 있어요.

옆에서 보호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운동시켜주세요.

만약 합병증 생겨서 또다시 수술해야 한다면 이번처럼 잘 회복되실지 아무도 장담 못합니다."


보통 이렇게 외래 진료실에서 보호자를 불러 강하게 말씀드리면 보호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고는 환자를 설득하여 침대에서 내려오는 연습부터 휠체어 타는 것까지 환자가 운동할 수 있게끔 적극적으로 격려합니다.


저도 속으로 이렇게까지 말씀드렸으니 이제는 운동 좀 하시겠지 하며 다음날 회진 돌면서 할머니가 계시는 병실을 가보면 제 속도 모르시고 여전히 누워만 계십니다.


"오늘은 운동 좀 하셨어요??

걷는 게 힘드시면 휠체어 타고 병실 밖에 복도로 나가보세요."


이렇게 물어보면 옆에 같이 회진 돌던 간호사가

"오늘 아침에 처방 난 X-ray 촬영하러 1층 내려갔다 오신 게 전부에요."


"할머니

이렇게 운동 안 하시면 정말 큰일나요.

제가 계속 환자 옆에 붙어서 이런 잔소리 할 수 없잖아요.

다른 입원환자도 치료해야 하고 수술도 해야 하는데."


이렇게 회진을 다 마치고 진료실에 돌아오면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내 생각을 몰라주나.

치료에도 적절한 시기가 있는데, 그 시기를 놓치면 불 보듯이 뻔한 일들이 생길 수 도 있는데.

속으로 화도 나고.

속상한 마음도 들게 됩니다.


몇 번을 진심으로 대하는대도 상대방이 변하지 않으면 화가 나게 됩니다. 이런 저의 진심 어린 여러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게 없다면 상대방에 대한 끈을 놓아버리는 "포기"의 단계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상대방을 "위해서" 노력을 해도 상대방은 변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포기"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병실에 대장암 천공으로 장루 만드는 수술을 하셨던 할머니 환자가 계십니다. 이 환자는 허리가 아파서 두발로 걷는 것이 힘들지만 운동해야 한다는 저의 말에 휠체어를 타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병실 복도를 다니면서 운동을 하십니다.

심지어 6살이나 많으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도 헤어짐이 있고 우정을 나누었던 친한 친구 사이에도 절교라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는 "포기"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메스를 잡고 수술하는 외과의사에게는 더욱더 환자를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죠.

어쩌면 짝사랑일 수도 있고 외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이환자에게 이런 잔꾀를 부려볼까 합니다.


그렇게 움직이려 하지 않으니.. 

"X-ray 찍으러 1층을 다녀오세요. 

소독받으러 외래 진료실로 내려오세요.

몸무게 재고 오세요." 등등..


제가 화를 내고 포기하면 짝사랑하는 사람이 어찌 될지 뻔히 보이니..

그렇게 할 수 없죠..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하죠??

저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운동을 격려하다 보면 좋아질 겁니다.


진심은 전해지기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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