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나는 부정적인 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꼭 하고야 말았다. 부모님이 '이건 이래서 하면 안 되고 저건 저래서 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하면 '이건 이래서 해도 되는 거고 저건 저래서 해도 되는 거야'라고 말하며 끝까지 설득했다. 어느 순간 부모님도 깨달으신 것 같다. 아무리 반대해도 결국 하고야 만다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을 안하고 살면 후회는 내 몫이 된다. 반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해서 즐거움을 얻는다면 그 즐거움과 성취감도 내 몫이 된다. 간단하다. 두 가지 중에 나는 나 자신에게 새로운 경험을 통한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설령 끝이 좋지 않은 경험일지라도 뭐 어떤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나?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우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마음이 끌리는 데로 했다. 돈이 내 발목을 잡는 거라면 알바를 해서라도 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해서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지는 않았지만 애초부터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내 목표는 아니었다. 대단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세상이 정의한 대단하다의 기준은 돈과 명예가 아니었나? '대단'과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지 고등학생 때부터 고민을 해왔던 것 같다. 돈과 명예가 대단한 사람을 정의하는 기준이 되는 거라면 두 가지의 가치를 보통의 사람들보다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죽어서까지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스스로에게 미안하다. 애꿎은 주인을 잘 못 만나 평생 '성공했다'와 '대단하다'라는 소리를 듣고 살지 못할 것이 아닌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는 '경험'이니까. 내 삶의 목표는 죽을 때까지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고 죽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해볼 것들이 참 많다. 그래서 해보고 싶은 것도 참 많다. 내가 어떤 경험까지 해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대학생 때 나는 세상에 진리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지성이 뛰어나지도 않고 감히 철학을 논할 수도 없는 사람이지만 '당연히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야',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너도 그렇게 해야지’라는 말을 가장 싫어했다. 진리로 통하는 사회적 통념들을 누가 옳다고 정의한 것인가? 어떠한 시점부터 그렇게 흘러왔던 것들이 너무나 당연해서,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다른 생각을 가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통념에서 벗어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난이 향한다. 무엇을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학교 때 전공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강의 이름은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언론학이었던가 영화 비평 관련 수업이었던 것 같다. 그때 인터넷에서는 이념과 정치적 견해의 극명한 대립, 혐오, 페미니즘 등 갖가지 충돌들이 난무했다.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하지만 다른 견해를 가진 서로를 혐오할 정도로 극으로 치닫는 갈등들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현재 이슈되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항상 극으로 치닫는 게 문제지 페미니즘 자체는 나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사회를 좀 다른 방향에서 보자고 하는 것들이지요. 사회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이념을 옹호하는 것으로 말하는 것이 아님)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달리해보자는 것이 왜 나쁜 것이 되어버리는 걸까요? 뭐든 극으로 몰고 가는 일부로 인하여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까워요." 전적으로 동의했다. 비난받을까 두려워 몰래 해 왔던 생각을 학식 높은 지성인인 교수님의 입을 통해 듣자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묵살시켜버리는 행태에 대해서, 또한 사회적 통념이 진리는 아니라는 것에 대한 말을 누군가의 입에서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진리란 없기에 보편적인 '성공'과 '대단'의 기준이 나에게 똑같이 적용될 필요는 없었다. 수많은 경험과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내 삶의 성공 기준이다. 물론 돈도 정말 중요하다. 내가 바라는 경험들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세상이니까. 그래서 돈은 수단이다. 수단은 그냥 벌면 된다. 만 가지 직업 중 그래도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일을 하고 돈을 벌면 된다. 일도 하고 돈도 벌고 그 돈으로 다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글쓰기도 그래서 시작했다. 글다운 글을 써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대학생 때도 그저 과제 때문에 썼던 거지, 쓰고 싶은 주제로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본 적은 없다. 단지 써보고 싶었다. 그 뿐이다. 이로써 나에게 또 하나의 경험이 쌓였다. 하나의 경험이 쌓일 때마다 한 걸음씩 성장하는 기분이 든다. 용기 내서 한 발짝만 움직이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할 권리'. 어떤 책에서 본 구절이다. 77억 인구 중에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진사람이 얼마나 될까? 무척 어려운 일이긴 하다. 모두가 YES를 외칠 때 혼자 NO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그런 사람이 삶에 대한 만족도는 누구보다 높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본인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실천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경험하기를 좋아하나 뭐든 꾸준히 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나이지만 뭐 어떤가. 그로인해 내가 행복했다면 그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