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job소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 Apr 09. 2021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직장내 성희롱에 관하여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어딜 가나 또라이가 적어도 한 명은 꼭 있고 또라이가 없다면 내가 바로 또라이다.

명언이다.


여성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성적인 불쾌한 농담과 맞닥뜨린 적이 있을 것이다. 경력 3년차인 나는 현재 세 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세 개의 직장 모두에서 그런 불쾌한 경험을 겪었다.


첫 직장에서의 일이다. 당시 행사 기획 회사를 다녔었는데 관리자 급의 팀장님 등이 참석하지 않아도 될 작은 규모의 행사가 잡혀서 30대 초반의 남자 주임과 남자 사원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가게 되었다. 1박 2일 행사였고 부산에 있는 5성급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보통 행사가 잡히면 미리 직원들이 묵을 숙소를 예약하고 가지만 가끔 행사 참가자들이 참석하지 않아 남는 방들도 있었기에 행사 당일 상황 보고 숙소를 잡는 경우도 있었다. 그날은 숙소를 예약하고 가지 않은 날이었다.


참가자 한 명이 불참해 룸이 하나 남게 되었다. 당연히 주임이 묵거나 혹은 주임과 남자 사원이 묵고 나는 다른 숙소를 잡아서 묵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행사가 거의 종료될 때 즈음, “우리 남은 룸에서 셋이 자는게 어때?”라는 개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항상 또라이들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고의 회로가 있는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남자 사원은 혼자 자는게 편해 사비로라도 다른 곳에서 자겠다고 말했고 그 순간 주임이 날 보며 룸이 트윈인지 더블인지 보고 오겠다며 쌩하니 가버렸다. 그러나 나에겐 그 방이 트윈인지 더블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방에선 묵을 생각이 없었으니까.


 곧 돌아온 주임은 더블 룸이긴 하지만 방이 크니 자기가 아래에서 자겠다며 괜찮지 않냐고 했다. 나는 열려있는 사람이라 크게 상관없다며 마치 본인이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인 마냥 아무렇지 않게 말을 지껄였다. 너무 어이없어 벙져있던 나는 다른 사원과 마찬가지로 주임님과 한방에선 잘 수 없으니 다른 숙소를 찾겠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너무 당연하게도 셋이 각각 세 개의 방에서 묵었다.


다음날, 회사로 돌아온 나는 팀장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렵사리 용기 내어 말한 내게 팀장이 한 말은 “주임이 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였다. 2차 충격이었다. 처음 겪는 상황에 내가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조언을 구하고자 부모님께도 어제 말씀드렸다고 전달하니 갑자기 화를 내며 너는 애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사소한 일을 일일이 부모님한테 말하냐고 되려 내가 잘못한 것 마냥 몰아세웠다. 3차 충격이었다.


그 일이 사소한 일이라면 그는 왜 사소한 얘기를 가족에게 했단 이유로 그렇게까지 흥분하며 화를 내었던 건지 웃기는 일이다. 지금 같으면 팀장에게 갈 것도 없이 주임이 그런 말을 뱉은 즉시 사과를 받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사회생활 몇 개월 차에 접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단지 기분 나빴음을 드러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그 일은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남긴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람처럼 지나가버렸다.


그 일을 생각했을 때 화가 나는 건, 내 경험에서 유발된 분노의 감정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신입사원들이 이러한 일을 겪을지 상상도 가지 않아서이다. 사회가 많이 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 또래의 친구나 지인들과 얘기하다 보면 이러한 일을 겪지 않은 직장인을 찾는 것이 오히려 힘든 수준이다. 직급과 사회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나마 대처 방법을 알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이런 상황에 대응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은 그마저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웃고 넘어가는 수밖에 별 수 없단 말이다. 수치심이 드는 불쾌한 농담에 웃고 넘어가야만 하는 그 더러운 기분을 당신은 아는가?


그러고 나면 상대가 아닌 나에게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왜 나는 상대의 희롱에 웃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는가,  왜 나는 제대로 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는가, 왜 이렇게 나는 바보 같은가. 혼자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상대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채 평소와 똑같이 웃고, 말하고, 일한다. 이번엔 상대를 향해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피할 수 없는 경험이라면 나의 대응 방법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분노에 휩싸인 채 어쩔줄 모르는 나 자신을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멈췄다. 그리고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스스로에게 인식시켰다. 그다음엔 상대가 내뱉은 말에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자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웃으면서 돌려 말했다. ‘그런 말 하면 요즘 큰일 나는 것 아시죠?’ 많은 책이나 글에서 이런 식으로 돌려서 말하라고 한다. 하지만 경험상 그렇게 말했을 때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현실성 없는 방법이다. 그래서 그들이 제일 민감해하는 말로 바꿨다. “성희롱 하신 거에요?” 정색하며 건네는 성희롱이라는 말에 펄쩍펄쩍 뛰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내뱉은 말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도 없는 사람들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저 그들이 인간이라면 말을 뱉을 때 뇌를 거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기를 바랄 뿐이다.


현 직장에서도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상사에게 여러 번 불쾌감을 느꼈다. 불쾌한 감정을 몇 번 드러내 보였지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퇴근 후 인터넷에서 파는 가장 고성능의 녹음기를 하나 구입했다. 그리고 그와 둘만 있는 상황이 생기면 그의 언행을 녹음했다. 녹음 파일엔 나를 향한 성희롱과 직장 내 폭언에 해당하는 말들이 녹음되어 있다. 그 후 상사와 큰 트러블이 있었고 본인이 뱉은 폭언에 대해서 그런 적 없다고 잡아뗐지만 화가 나진 않았다. 어차피 증거는 내 손안에 있었으니까.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서 많은 직장인들이 목소리를 내었으면 좋겠다. 사회는 그렇게 변화되어가는 거라고 믿고 싶다. 선을 넘는 무례함에 결코 웃으면서 넘어가고 싶지 않다. 그들이 나로 인해서 추잡한 농담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한 명이라도 깨닫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 한 명이 그렇게 반응한다고 해서 사회가 바뀌진 않겠지만 적어도 내 주위 몇몇은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변화는 각자의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일 년에 한 번 성희롱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그냥 의무시간을 채우는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하다. 현실적이며 체계적인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 되었으면 한다. 또라이는 도처에 널려있지만 대기업이 아닌 이상 조직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대응 체계가 없는 곳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젠더 감수성을 인지하지 못한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요즘 조심해야해. 뭐만 하면  성희롱이래, 여직원들이랑 말도 섞지 말아야겠어'따위의 말만   알지 정작 본인의 젠더 감수성을 키울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본인의 행동을 합리화 하고자 내뱉는 저런 말도 여성 배제라는 것을 모르지 않나.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인 2년차, 처음 겪은 권고사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