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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Aug 15. 2021

불만을 멈추는 중입니다

모든 일에 긍정적이었던 내가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안에 부정적인 감정들을 가득 담아두고 지내왔다. 이토록 사람이 부정적으로 변할 수 있는 건지 매 순간 나 자신에게 놀라웠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어느면으로 보나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 없기에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도 하고 억누르려고도 해봤다. 하지만 그럴수록 반감만 더해갔다. 회사에서 작은 일이라도 생기면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 말해서 불만을 토로하고 싶은 욕구가 커져만 갔고 어떤 날에는 화가 나를 집어삼키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나는 변해야 했다.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기분 나쁜 일들을 말한다고 한들 남는 건 무거운 마음과 찝찝한 기분뿐이었다.


내가 불만을 쏟아낼 때마다 부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회사도 배움의 장소야, 전 회사를 다녔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네가 하는 불만을 보면 매번 똑같아. 언제까지 불평불만만 늘어놓을래? 네가 그런 태도면 회사를 옮긴다고 한들 똑같은 일이 벌어질 거야. 결국 너 스스로 그런 일을 자초하고 있는 거라고." 화가 났다. 화를 풀려고 얘기했건만 공감은커녕 듣기 싫은 말을 들은 것이다. 나를 화나게 하는 주체는 항상 존재했다. 회사, 상사, 업무 등. 근데 그들의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니.


나는 변해야 했다.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기에 이리저리 날뛰는 내 감정을 컨트롤해야만 했다. 아직 스스로 어른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사회가 정해놓은 법적 연령을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현재 어른이고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감정 절제가 필수이다. 근본적으로 감정이라는 것이 컨트롤될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변화를 선택했다. 유튜브에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검색하고 여러 가지 책들을 구입하여 읽어나갔다. 그러나 영상과 책 속의 글들은 나에게 겉돌기만 했다. 화가 날 때 좋은 음악을 듣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서는 것은 분명 굉장히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날뛰는 머릿속 의식까지 잡아주지는 못했다. 에너지는 흩어지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도 지금 이 순간에 머물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어딘가로 늘 흩어진다고 한다.


흩어지는 나의 의식들은 과거로, 미래로 자유로이 유영해 다녔다. 하지만 행복했던 기억과 순간들을 되짚어보고 떠올리기보다는 '그때 왜 그랬을까'하는 후회, 분노, 짜증 등의 기억만 콕콕 잘 골라내어 다녔다. 생각하기 싫은 기억들이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어느 순간 내 의식은 항상 5분 전, 1일 전, 1년 전, 10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지금 이 순간'이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파울로 코엘료 작가를 좋아해서 어떠한 사상이 묻어있는 그의 책들을 좋아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회에 나오면서 나에게 소중했던 지금 이 순간들은 과거와 미래가 덕지덕지 뒤엉켜 정작 현재라는 시간은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현재에 있어야 할 의식이 과거와 미래에 머물러있으니 현재라는 순간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방금 지나간 1초라는 시간도 과거라고 불릴 수 있는 거니까.


어떻게 하면 의식을 현재에 집중시킬 수 있을까. 수개월 동안 나에게 던진 물음이었다. 의식을 현재에 집중시킬 수만 있다면 복잡하게 보이는 내 머릿속 생각들을 모두 비워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화, 짜증, 불쾌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도 한순간의 스쳐 지나가는 감정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긍정적인 마음과 기쁨은 최대한 누리되 부정적인 감정에는 동요되지 않도록 나를 다잡고 싶었다.


일분일초,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일들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처럼 보였다. 이 흐름 속에 있는 내가 택할 수 있는 건 그저 현재를 바라보는 것과 현상에 대한 나의 태도를 선택하는 것뿐이었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일상에서 하나의 작은 사건이 일어나면 단순히 흘러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잠시였고 어느 순간 사소하고 작은 일들에 깊이 매몰되어 과거에 머물러있는 나를 순간순간 느꼈다. 그럴 때면 '아차'하는 마음과 무거운 마음이 졸졸 따라다녔다. 왜 굳이 화를 컨트롤해보겠다고 이런 행동을 하기로 해서 스스로 더 무겁게 만든 건지 자괴감도 들었으나 멈추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화에 대해서 조금은 무덤덤한 감정이 생겼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화를 낼 필요가 없었던 일들도 많았던 것 같다. 누군가 나를 화나게 했다면 부끄러움과 부정적인 감정은 상대의 몫이지 내 몫이 아니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관계를 지속하고 그러지 않는 사람이라면 거리를 두면 그만이었다. 최근에 나에게 실수를 한 친구가 무덤덤하게 대응하는 나를 보고 차라리 화를 내지 왜 이렇게 무덤덤하게 대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화를 낼 이유가 없다고. 단지 너의 행동이 너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고, 그냥 그뿐이라고.


부정적인 감정이 조금 줄어들었을 뿐인데 안정된 마음과 편안한 일상을 느끼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이지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분노의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 사람들을 만나는 날이면 가끔 마음속으로 그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기도 한다. 어쩌면 멍청하게 보일 수 있는 이런 행동을 할수록 나를 둘러싼 삶의 온도가 더 따뜻하게 올라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스로에게 잘 잤다고 외치고, 문 밖을 나서면서 그저 오늘 하루 더 따뜻하고 즐거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가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에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구름을 보고 나무를 보고 사람들을 본다. 퇴근하는 길에는 오늘 하루 잘 보냈음을 스스로에게 인사하고 운동을 하며 뿌듯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내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더욱 친절해지리라 다짐한다.


이러는 내가 어쩔 땐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상황이 변한 건지 내가 변해서인지 일과 회사, 상사에 대한 불만이 사라졌다. 대신 내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 하루 나를 위해 1밀리미터만큼만 앞으로 가더라도 충분히 좋은 하루를 보냈다고 말할 수 있는 요즘 나의 일상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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