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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an 20. 2022

1. 방비엥에서 스페인 친구와 물속으로 뛰어들다

여행, 내가 사랑한 순간들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면 기억에 남는 많은 순간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잊기 힘든 것은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의 보통의 하루는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새로움을 찾아 나서지 않는 이상 새로운 것을 접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니까. 항상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 있어서 여행은 내 삶에 꼭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편견을 깨부수는 일.


나는 여행을 떠날 때 어떠한 목적을 두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생기면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 일상과 이어져 무언의 압박감을 주기 때문이다. 나에게 여행이란 그냥 그 자체로 좋은 것. 순간순간마다 삶이 흥미롭고 행복해지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주는 그 무엇이다.


Venture outside your comfortzone. The rewards are worth it.

익숙한 곳을 벗어나 모험을 떠나세요! 그만한 가치가 있답니다.


디즈니 라푼젤의 명대사이다. 가끔 이 글귀를 보면 지금이라도 당장 짐을 싸서 훌쩍 떠나고 싶다!




나는 당시 태국 우돈타니에서 출발하여 라오스 방비엥으로 막 도착했다. 이동시간만 10시간 이상이었던지라 지쳐있었다. 후덥지근하고 습한 날씨에 온 몸에서 땀이 났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 샤워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했지만 배가 고파서 우선 길가에서 판매하고 있는 그 유명한 반미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새로운 맛은 아니었으나 길가 편의점 앞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아 먹는 반미 샌드위치는 너무너무 맛있었다. 태국에서 뭘 잘못 먹었는지 장염 걸린 듯 배가 아팠다. 그래도 이 맛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반미 샌드위치 가게


맛있게 먹고 있는데 배가 자꾸 꾸륵꾸륵거려서 반을 남겼다. 그리고는 서둘러 현지 여행사에 들려 내일 할 액티비티를 예약하고 숙소에 들어가 쉬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숙소 앞에 서있는 툭툭을 타고 같은 시간대에 예약한 세계 각지의 여행자들과 함께 카약을 타러 갔다. 방비엥은 액티비티의 천국으로 유명했기에 더 기대가 되었고 기대에 부합하는 재미를 선물해주었다. 한국인 여행자들도 여럿 있었는데 급류 지점에서 카약이 엎어져 정말 아찔했던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 카약에 탄 현지 직원이 풀을 잡고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한국인들을 구해주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그들에게 항시 가방에 챙겨 다녔던 후시딘과 밴드, 소독약을 건네주었다. 나의 가방에 작은 구급키트가 들어있음에 감사했다.


카약이 끝나고 키가 크고 턱수염을 기른 한 젊은 유럽인이 말을 걸어왔다. 페이스북 아이디를 물어봐서 가르쳐주었다. 스페인에서 왔다고 했다. Ibai이라는 이름을 가진 스페인 친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가벼운 잡담을 하며 대망의 블루라군으로 향했다.

 

사진으로 보니 안 높아 보인다. 그냥 나한테만 높았나 보다 ㅎㅎ고소공포증이 있나..?


영상 속에서만 보던 블루라군을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다이빙할 때 퐁당 빠지는 소리가 곳곳에 가득했다. 이바이와 다이빙 지점 근처로 이동했다. 가까이서 보니 첫 번째 다이빙 지점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막상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체감 높이와는 너무도 달랐다. 찰랑거리는 물의 표면이 너무 아득해서 다리가 떨릴 지경이었다. 수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물결처럼 후회가 빠르게 밀려왔고 내 입은 "I can't do this!!!"를 외치고 있었다. 내려가지도, 뛰어내리지도 못하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놓였다. 끝내 돌아서는 나를 이바이가 붙잡고는 같이 뛰어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못할 것 같다고 외치는 나에게 이바이는 "You can do it"을 여러 번 외쳐주었다. 자기가 숫자를 셀 테니 one에 뛰어내리자고 했다. "three", "two", "one"이 슬로모션처럼 흘러갔고 one을 외쳤을 때 이바이와 나는 그 찰나의 순간 서로 눈을 마주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다시 다이빙하는 지점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의 웃기는 모습에 이바이는 환호하며 영상으로 남겨주었다. 돌아가는 길에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덕분에 용기를 얻고 뛰어내릴 수 있었다고.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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