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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an 21. 2022

2. 클럽에서 나를 보호해준 아일랜드인

여행, 내가 사랑한 순간들

이바이와는 블루라군에서 물놀이를 마치고 헤어졌다. 다음 여행지는 비엔티안이라고 했다. 나 또한 다음 여행지가 비엔티안이었으므로 서로 연락하자는 약속을 뒤로한 채 방비엥에서의 여행을 이어갔다.




신나게 물놀이를 한 뒤에 너무 허기져 돼지 뽈살 구이를 먹으러 갔다. 소문대로 맛있었다. 해가 졌고 길가의 펍과 클럽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신나는 팝이 길가에 퍼져있었고 내 기분 또한 분위기만큼이나 무르익었다. 한 클럽 앞을 지나치는데 앞에 서있던 예쁜 유럽 여행객들이 와서 같이 놀자며 손짓했다. 여행자의 거리에서는 우리 모두가 친구다. 희한하게도 한국에서는 외국인을 보면 영어 때문에 울렁증이 생기곤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조금의 이질감도 없이 모두가 전에 알고 있던 사이인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클럽으로 들어가니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 애드시런의 Shape of you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젊은 열기와 흥겨운 음악에 내 몸도 절로 들썩였다. 한국인은 또 흥의 민족이 아닌가? 놀 때는 확실히 놀아야 한다. 그건 나의 신념이기도 하다.  점점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어 춤을 추었다. 물론 나는 춤을 못 추니 몸짓이라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다. 허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음악에 몸을 맡기면 그게 다 춤이지 뭐...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과 신나게 놀았다. 잠깐 쉬려고 사이드로 빠졌는데 그때 자신들을 태국인이라고 소개한 네 명의 사람들이 와서 정중히 손을 내밀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나는 그 정중한 손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나도 장난스레 정중히 손을 살짝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쉴 틈도 없이 또 놀았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클럽이야말로 자유로운 곳 아니겠는가. 태국인들이랑 놀고 나서 다른 여행자들과 놀고 있을 때도 그 친구들이 자꾸 껴들었다. 내가 놀고 있는 무리에 합류했다는 표현이나 함께 어울려 놀았다는 표현도 있겠으나 그건 맞지 않다. 그들이 같이 춤을 추며 놀고 싶은 사람은 나였고 나를 향해서만 자꾸 손을 내밀었다. 한두 번 내미는 손은 괜찮았으나 세 번째, 네 번째가 되니까 점점 불편해졌다. 어느 순간 무의식적으로 그들이 있는 방향을 확인하며 계속 거리를 유지했고 최대한 피해다니며 놀았다. 분명 나쁜 친구들은 아니었다. 다만 술과 분위기에 취해 약간의 판단능력을 상실한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을 돌아보니 또다시 그들이 와있었다. 아, 방심했다. 튕기면 다시 오고 튕기면 다시 오는 인간 용수철 같았다.


이젠 내 표정도 숨길 수가 없다.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고 한숨이 나왔다.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에 앞에서 줄곧 같이 놀고있던 갓 성인이 되어 보이는 아일랜드 여행자가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너희와 놀게 둘 수 없다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그들을 쳐다봤다. 살짝 설렜다..(사실 아주아주 많이..)

그 순간만큼은 그가 우주 최고로 멋지고 잘생긴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따라 아일랜드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지함)


아마 그도 계속 주변에서 함께 놀고 있었으니 그들이 올 때마다 내가 당황스러워한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그가 나설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의 입장에선 'not my business' 아니겠는가. 그러나 계속 태국인 네 명이 내 주위를 서성거리고, 나의 표정을 본 그가 이번엔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 같다. 그는 태국인들과 살짝 떨어진 곳으로 나를 데려갔고 얼마간 같이 놀았다. 그리고는 내 볼에 가볍게 뽀뽀를 해주고는 다시 각자 또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리며 놀았다.


나는 어느새 스테이지 중앙에서 놀고 있었다. 내 안의 흥이 거기까지 인도했다. 주변에 있던 어떤 한국인이 '정말 잘 노시네요'라고 말하며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엔 그 말이 좋았다. 제대로 놀고 싶을 때 가는 장소가 클럽이고, 그 목적에 맞게 잘 놀고 있던 거였으니까.


어차피 한 번 보고 안 볼 사람들이니 창피함 따윈 개나 줘버려! 하며 그렇게 한동안 미친 듯이 놀다가 문득 이제 숙소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함께 놀던 사람들과 가벼운 인사를 하고 나왔다. 나오자마자 다른 여행자들이 따라 나와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아쉬워하는 그들을 향해 쿨하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멋진 툭툭을 타고 함께 간 친구와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반미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비엔티안으로 이동하기 위해 미니 봉고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서있었던 그때 한국인 몇 명이 줄을 서고자 내 뒤에 섰다. 그때 수군거리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어제 클럽에서,, 그 사람 아니야?"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개나 줘버렸던 창피함은 비엔티안 가는 봉고차 안에서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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