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다는 '취급'에 관하여
“그 친구는 예민해서 조심해야 돼, 신고 당할지도 몰라 하하” 이런 대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예민하다’라는 단어는‘무언가를 느끼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라는 긍정적인 의미와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라는 부정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예민함의 표현은 주로 후자에 가깝다. 특히 무례함을 일삼는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불쾌한 언사가 자행되는 상황에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예민함’이라는 말의 무기는 폭력적이다. 그들에게는 예민하다는 말이 비겁한 무기로 쓰이지만 나에게 예민의 감정은 방어기제로 쓰인다. 상대방이 뱉는 쓰레기를 귀로 먹고 삼키지 말라는 신호. 난 나의 예민함이 좋다. 회사 생활하면서 예민하게 반응해야 했던 말 중 쓰레기가 아닌 말이 없었다. 이는 거리를 두어야 할 인간을 선별해 주기도 한다.
한 번은 상사와 경쟁사들의 홍보 인쇄물을 보며 우리 회사는 어떤 식으로 구성하면 좋을지 회의를 한 적이 있었다. 종이를 마구 넘기는 상사의 손이 경쟁사 여자 모델이 인쇄된 종이에서 멈췄다.
“오우.. 이 여자 몸매 봐, 와.. 가슴 크고 섹시하다..오..우..”를 연신 외치며 여자 모델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마구 문질러댔다. 곧이어 그 손가락은 모델의 라인을 따라 내려갔다. 이상한 눈빛에 침까지 삼키는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혐오감이 느껴졌다. “이런 모델을 써야 남자 고객들이 좋아하는 거야, 남자들이 많이 가는 박람회 같은데 가봐, 여자 모델들 가슴에 일부러 뭐 붙이고 나오잖아”라고 말하며 본인의 가슴을 탁탁 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여간 불쾌한 게 아니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향해 “정말 최악이네요”라고 말했다. 그는 “최악? 하하 최고지!!”라고 대꾸했다. 그가 나의 상사라는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이 일과 더불어 전에 들었던 불쾌한 말들을 모두 포함하여 윗선에 보고했다. 그는 나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원래 모델 선정할 때 이렇게 하는 거야,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래도 네가 내 말에 의해서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할게”라며 찌질한 사과를 건넸다. 그에게 “이거 엄연히 성희롱이에요”라고 말하니 “아니? 그건 아니지. 다른 회사에서도 여직원들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일해왔고 한 번도 그런 소리 들어본 적 없어”라며 내가 유독 예민하게 굴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는 사과가 아니라 변명이다. 성희롱을 일삼는 자들이 늘상 그렇듯 본인이 성희롱을 인정하지 않으면 성희롱범이 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조직에는 권력이 있다. 권력은 직급과 비례하게 커진다. 안타깝게도 권력은 자리에 맞게 적절히 쓰이기보다는 약자를 함부로 대하는 것으로 남용된다. 마치 놀이공원에 들어가기 위해 입장권이 필요하듯 타인의 불쾌함이 그들의 즐거움으로 변모되는 길로 들어서는 일종의 입장권 같기도 하다. 내가 그의 부하직원이 아니라 대표였다면 어땠을까? 클라이언트라면? 가족이라면? 아마 같은 말을 건넬 수 없었을 것이다. 언론에서 이슈되는 회사 내 성희롱 사례를 봐도 권력을 가지고있는 상사가 성희롱의 주 가해자이며 피해자는 부하직원이다. 동료끼리의 성희롱 사례가 있어도 부하직원이 성희롱의 가해자가 되는 사례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과 위치가 곧 권력이기에 어떤 장소에 가던지 그 힘이 느껴지지 않는 곳은 없다. 그렇다면 힘의 남용은 내가 그 위치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피할 수 없는 것일까. 그 위치란 또 어디일까, 내가 계속해서 올라간다고 돈이 권력이 되는 사회에서 내 위에 또 다른 권력자가 없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불쾌한 언행이 자행되는 더러운 상황을 겪지 않으려면 그 위치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대체 권력이란 무엇인가.
여성 모델을 성적 대상화하고 주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언행을 한 그에 대해서 나는 그가 스스로 문제가 되는 언행인지 진정 몰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건 그의 양심만이 대답할 문제다. 하지만 자신의 언행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하게 될 경우 조직에서 받게 될 따가운 눈총이 두려워 알량한 사과를 하는 그가 참 찌질하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정말 몰랐을지라도 성에 관한 기본적인 인식이 없다는 뜻이니 그것 또한 본인의 무식에 창피해야 할 일이다.
우리 사회는 권력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회사 내 꼰대식 문화도 어쩌면 권력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공공연한 암묵적 행태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일 테니까.
그날 이후 그는 더이상 나에게 성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언사는 하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오빠라는 둥 주말에 연락하라는 소리도 일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직원에게 또 다시 성희롱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한테 그러지 않으니 이젠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조직에서 자행되고있는 이러한 문제는 조직에서도 함께 관심을 두고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상사들이 내뱉는 쓰레기들을 절대 묵인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묵인하는 순간 그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사람쯤으로 전락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