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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an 25. 2022

중국 친구들에게 곰과 뱀을 대접받다-2

여행의 묘미

(전편 이어짐)


조니에게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정말 기대된다... 아.. 하하... 다음 음식은 뭐야..?"


"haha, snake!"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두근거림은 기대와 설렘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내가 살아있는 생명체 중에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 가장 소름 끼쳐하는 것이 바로 스네이크다. 맞다. 뱀.

꿈에서도 보기 싫고 어쩌다 인터넷 기사에서 보이는 사진으로도 보기 싫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쳐 뱀을 검색하는 것도 몸서리쳐지도록 싫어한다. 어떻게 그걸 먹을 수가 있지? 몇 달 전 기사로 한국사람이 뱀으로 담근 술을 먹으려 뚜껑을 열다가 살아있는 뱀이 나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봤다기보다는 SNS 기사 썸네일을 스쳐 봤던 거지만. 그 기사를 보고 한국에서도 뱀을 식용으로 먹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어쨌든 나에게는 이건 곰보다 더 심하다!! 이름도 징그럽다. 뱀.


 snake 한 단어에 그 어떤 억지 반응도 할 수가 없었다. 대접해준 중국 친구들에게는 정말이지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살면서 한번 먹을까 말까 한 음식을 이렇게 대접받고 있지 않나. 중국에서 흔한 음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친구들이 신경 써준 것만은 확실하다. 나의 이성은 무한 감사를 외치지만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곰 고기와 앞으로 나올 뱀 고기를 진심을 다해 거부하고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사장님이 또 들어왔다. 테이블에 대망의 음식을 내려놓았다. 곰 고기와는 달리 생긴 것도 징그러웠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정말이지, 이 사진을 다시 꺼내보는 것도 힘들었다 ㅠㅠ


기름에 튀겨진 이 음식은 곰고기와 달리 겉보기에도 음식의 재료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어떤 음식이던 기름에 튀기면 맛있다던데 굳이 내입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진 않았다. 테이블에 놓인 큰 접시를 보고 중국 친구들이 다시 한번 먹어보라고 권했다. 열 개의 눈동자가 날 향했다. 대접받은 음식을 거절하게 될 경우 새로 만난 친구들이 그들과 그들의 국가를 존중하지 않는 다고 오해할 것만 같았다. 해외에서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미지로 누군가의 마음속에 한 국가의 이미지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인데 무례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젓가락을 들었다.


심장이 두근두근두근 요동쳤다. 손에 잡힌 젓가락은 나에게만큼은 음식이라 불릴 수 없는 그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비슷비슷 하지만 제일 작아 보이는 조각 하나를 나의 접시에 내려놓았고, 튀긴 생선을 바를 때와 비슷한 젓가락질로 새 모이만큼 집어 올렸다. '제발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입에 넣어, 그냥 입에 넣어..' 여러 번 스스로를 향해 외친 채 입으로 넣었다.


음미하기 싫었고 무슨 맛인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나의 혀는 본연의 역할을 너무나 훌륭히 수행했다. 비록 새 모이만큼의 양이었으나 맛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음식은 후라이드 치킨 같았다. 곧바로 다른 친구들을 보며 괜찮다고 말해주었고 중국 친구들도 그제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평생 처음 듣고 보는 이 두 가지의 음식이 너무나 강렬해서 테이블에 어떤 음식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접시에 옮겼던 두 개의 조각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물과 중국 음료수, 정체를 알 수 없는 재료로 만들어진 국물요리로만 배를 채웠다. 국물요리가 어떤 재료로 만든 건지 궁금했는데 모르는 게 약이다 싶어 물어보지 않았다.


음식들은 나로 하여금 공포를 불러일으켰지만 중국 친구들은 매우 유쾌했고 같이 있는 내내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이렇게 웃음과 공포가 뒤섞인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이 경험이 조금은 충격적이었을 지라도 나는 그 친구들과 함께한 모든 순간에 감사하다. 어디서 마주칠지 모르는 우연과 인연. 그것들이 주는 선물 같은 시간들. 이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했을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짧은 만남들이 서로의 여행을 한층 넓어지게 만들어준다.


좋은 시간을 보낸 뒤에는 헤어짐이 있다. 아쉬움은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여행이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향수를 일으킨다. 더 어렸을 땐 헤어짐이 너무 아쉬웠고 슬펐다. 하지만 이제는 다가올 헤어짐을 알고 있기에 그 순간이 소중하고, 더욱 감사하다.


아무도 See You Again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스쳐가는 사이였으니까.

Hi, Thanks, Bye 만으로도 따뜻한 시간을 보냈으니까.

우리의 우연은 거기까지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무엇보다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는 나에게 우연처럼 다가온 글귀이다. 아쉽게도 책 제목은 찍어두지 않아서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사진으로 찍어 몇 년 동안 가지고 있다.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항상 마음속으로 빈다.

잊지 못할 여행이 되기를. 우연한 만남과 행운이 나와 함께 하기를.

누군가에게 내가 좋은 만남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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