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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Sep 15. 2022

기분 좋은 사직서는 처음이라,

"팀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해외 나갈 거예요!"


오늘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 회사를 다닐 때에도 사직서를 제출했던 적이 있지만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주된 이유는 부정적 경험들이었기에 일이 힘들거나, 상사와의 트러블 등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나는 무척이나 설레고, 행복하고, 기쁘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기 위하여.


오랜 기간 동안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낯선 곳에서 살아보기!

코로나 시국 이전에 여행을 많이 다니긴 했지만 항상 돌아가야 할 곳이 있었기에 2주 이상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짧은 기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해야 한다는 어떠한 강박으로 인해 항상 하루를 꽉 채워서 돌아다녔고, 너무 열심히 돌아다닌 나머지 한국에 올 때면 언제나 살이 빠져있었다.


어떤 곳에 가던 여행의 짧은 일정으로 인해 캐리어를 끌며 이동하기 바빴다. 물론 그때는 그런 순간들조차 너무 행복했지만 마음 한 편에서는 언제나 여유롭게 머무는 여행을 소망해왔다. 누군가에겐 별것 아닌 소원 일지 몰라도 시간과 돈이 허락되어야 가능한 일이기에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사실 인생에서 1년 정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무슨 큰일이 나겠냐만은, 언제나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의 발목을 잡곤 한다. 나 역시  모아놓은 돈을 언제, 어떤 식으로 사용하게 될지 알 수 없기에 큰돈을 사용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두려움은 쳇바퀴 도는 일상을 지속시켰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받는 삶에 대한 안정감은 적어도 1년 뒤에 나를 예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도전에 눈을 돌려서는 안됐다.


물론 그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하고 싶은 것들은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꾸준히 학원이나, 클래스 등을 통해 경험해 왔다. 하지만 나의 마음이 언제나 말하고 있던 것은 어디에서든 살아보는 여행이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1년에 두 번씩 해외에 가며 그 마음을 달래 왔지만 코로나 시국 이후로는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그랬듯 여행을 가지 못했고 그 기간만 3년이 된다. 그동안 억눌려온 소망이 나 아직 여기 있다고 존재감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다시 활활 타올랐다. 언젠가 가긴 갈 것 같지만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뜬구름 같은 고민만 하며 타이밍을 기다렸다.


타이밍, 내가 기다린 타이밍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행동할 작은 상황, 떠날 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설득할 변명, 합리화가 필요했던 것도 같다. 언제나 마음을 따르는 나지만 그건 안정적인 상황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결정은 오로지 내가 원하는 것만 생각하며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떠나야 하는 여행이기에 나는 정말로 행동할 용기가 필요했다.

 

주야장천 해외 생각만 한 달째 해오던 어느 날, 하늘이 내 열렬한 소망을 듣기라도 한 것인지 코로나에 걸리게 해 주었다. 3년 동안 PCR 검사 한번 받지 않았고 5~6년이 넘도록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던 나인데, 아침에 머리가 너무 아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했더니 양성이 나왔다. 하지만 아픈 것과는 별개로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았고 되려 확신이 생겨 기분이 좋았다. 오매불망 기다려왔던 타이밍이 지금인 것이다. 감사하게도 상황이 내 등을 떠밀어주었다. '해외가라고 한국에서 미리 코로나에 걸리는구나. 이건 행동하라는 계시야!!'라고 내 멋대로 해석하며.


회사는 확신이 생길 때 언제나 고민하지 않고 그만둘 수 있는 부분이어서 퇴사를 결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격리 기간이 끝나고 회사로 출근을 했고, 점심시간이 지나서 상사에게 그만두겠다고 얘기했다. 나도 이렇게 빨리 말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다.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다음 걸음도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면 되니까.


전자결제 시스템에 들어가서 사직서를 작성하는데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내가  명이고, 사직서를 제출하는  다른 내가 앞에 있다면 강아지 쓰다듬듯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행복한 경험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인지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았고 기분 좋은 설렘과 긴장감이 사직서 제출 버튼을 클릭하는  오른쪽  끝으로 모여 저릿 거리는 느낌이었다. 미묘한 감정에 5분간 망설이던 나는 결국 '상신' 버튼을 눌렀다. 순간 적막감과 안도감이 나를 스쳤다.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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