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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y 06. 2024

아무리 맞으면서 큰다고 하지만

심판의 판정이 번복되었다. 상대팀 감독의 항의가 있은 다음이었다. 모두가 파울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팀 감독은 홈런이라고 격렬하게 항의했고 잠시 뒤에 파울이 아닌 홈런으로 바뀌었다. 점수는 갑자기 0점에서 3점으로 바뀌었고 우리 모두는 당황했다. 제일 흔들린 것은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서 있는 내 아들이었다. 아이는 흔들린 마음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또다시 허락한 2점 홈런. 차라리 빨리 투수 교체를 해 주기를 바랐으나 감독님은 한 이닝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자리를 지키게 하셨다. 그렇게 10점을 내어 주고 겨우 끝난 1이닝. 그냥 견디기에는 좀 많이 힘들었다. 좀처럼 감정을 내색하지 않는 아이가 소리 내어 흐느껴 울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내 마음도 아팠고 나도 눈물이 났다. 가서 안아주면서 토닥여 줄 수도 없어서 그냥 학부모 응원석에서 살짝 지켜만 보았다.


2이닝과 3이닝 새로 올라간 다른 투수가 4점을 내주면서 이번 경기는 14대 1로 가슴 아프게 끝났다. 그 누구도 내 아이를 탓하지 않았지만 투수전에서 밀린 아이의 엄마는 죄인이 된 기분이다. 감독님은 부모님들을 모으시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오후에 있는 경기는 기권하고 올라갈까요?"라는 말씀까지 하셨으니 우리 팀의 상황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경기는 이렇게 끝났지만 그래도 아이 밥은 잘 먹여야 다음 경기도 대비할 수 있다.


같은 식당으로 가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 우연히 한우곰탕집에서 다들 모이게 되었다. 포수를 맡은 동갑내기 친구는 우리를 보자마자 얼른 곁으로 다가와 자기 가족들은 놔두고 같이 앉더니 계속해서 말을 건네며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애를 썼다. 아들의 멘탈이 흔들릴 때 마운드로 올라가 토닥여주던 모습은 오늘 처음 보았다. 식사를 하고 나서 다른 아버님들이 차례로 오셔서 아이에게 잘했다고 격려의 말씀을 건네주셨다. 볼넷을 계속해서 던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렇게 제대로 던지는 것이 낫다고. 잘 던졌기 때문에 홈런도 나오는 것이라고. 나도 안다. 제대로 된 직구였기 때문에 홈런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한 이닝에 두 번의 홈런은 너무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다. 아이의 눈물을 보면서도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더 애가 탄다. 심판의 오심도, 뭔가 석연치 않은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본인의 실책도 다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오후 경기는 늘 형제 학교처럼 아웅다웅하는 S 학교. 이미 다른 두 팀을 이겼기 때문에 결선 진출은 확실히 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조별 1위인 S학교를 7대 5로 가뿐하게 이겨 버리고 말았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원래 두 번째로 치루었어야 할 경기였다. 그랬다면 조금 달랐을까. 그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계속 오락가락하며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필드에 선 아이들. 더 단단하게 잘 자라 가는 계기가 되기를. 그리고 나 역시도 더 단단해지는 마음으로 성숙하는 시간이 되기를. 집에 오는 저녁 길 유독 더 내리는 비로 유난히 더 뿌옇게 보이는 길을 운전하며 간절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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