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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y 23. 2024

처음으로 본선 진출하던 날

그리고 우연히 만난 옛 제자 이야기

셋째가 속한 조는 죽음의 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쟁쟁한 학교가 셋이 있었고 전력이 알려지지 않은 팀이 하나, 그리고 상대적으로 약체인 학교 하나, 그리고 정말로 약체로 알려진 우리 학교와 한 곳 더. 올해 첫 공식 경기였고, 첫 상대는 아무도 모르는 느닷없이 등장한 강남구의 유소년 팀이었다.


평일이라 나는 출근했고 유튜브 링크로 교과 시간에 잠깐 확인할 수 있었다. 톡방에서는 실시간 중계가 올라왔다. 2회 초 무실점. 3회 초 1대 0. 우리가 선취점으로 앞서고 있었다. 4회 말 1대 1. 3회 말 3대 1. 5회 말 3대 2.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이대로 하나만 더 잘하면 되는데!!!! 그리고 우리는 이겼다. 첫 경기 첫 승리!! 우리 아들은 선발 투수였지만 승리 투수는 아니라고 한다. 


어찌 되었건 우리가 이겼기 때문에 상대팀은 그리 잘하는 팀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잘하는 팀이었다. 쟁쟁한 학교들도 이 팀에 지기도 하고 고전하기도 하는 모습을 뒤로 이어지는 경기에서 보았다. 아무튼 다음다음 상대 학교인 I 초등학교 팀이 우리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B학교 못하는 데 아냐? B학교한테 지는 걸 보니 못하는 팀인가 봐."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학부모님들이 응원석에서 들었다고 하셨다. 물론 작년에 우리 학교 전적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놓고 비웃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나쁜 것은 사실이다. 아이들도 부모님들도 모두 오기가 활활활 타올랐다. 아무튼 그 I학교는 우리한테 진 G 팀에게 졌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졌다. 그리고 우리는 약간은 아찔한 순간을 겪기도 하면서 3승 2패로 본선에 진출했다. 알고 봤더니 G팀은 정말 잘하는 팀이었다. 


그리고 나는 예전 제자를 경기장에서 만났다. 4년 전 정말 나의 에너지를 많이 가져가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ㅇㅈ이는 조용한 ADHD인 것 같다고 영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머리도 좋은 편인데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계속 부산하게 움직였다. 혼자였으면 괜찮았을 것인데 주변에 변수가 되는 아이가 두 명이 있어서 이리저리 일들이 많았다. 그냥 조금 더 손길과 애정이 많이 필요한 아이였다.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운동을 많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때도 들었고 학부모 상담 때도 그런 말씀을 드렸던 것 같다.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던 아이는 티볼을 하다가 조금 늦은 5학년 2학기에 ㅂ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제 정말로 경기장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거기도 6학년 학생 선수가 그리 많은 학교는 아니라서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경기를 하고 있었고 그래서 이기는 경기보다는 지는 경기가 더 많았다. 그 학교에서 아이는 나름 열심히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늘 에너지가 넘치던 아이가 조심조심 있는 모습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면서 격려해 주고 싶었다. 토닥토닥. 기운 없이 나오는 아이에게 음료수를 한 병 건네 주자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아니, 3학년 때 선생님이 왜 여기에?' 하는 그 물음이 얼굴에 빤히 보여서 귀여웠다. "저쪽 학교에 선생님 아들이 야구 선수로 뛰고 있어. ㅇㅈ이 파이팅이야. 응원할게." 아이는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는지 아들과 지나가는 길에 오셔서 인사를 하셨다. 


초등학교에서 야구는 그래도 5학년 초에는 시작해야 좋다. 너무 늦으면 따라잡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보다 1년이 늦은 ㅇㅈ이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말 부단히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동네가 다르기 때문에 중학교는 다른 학교로 갈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면 ㅇㅈ이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우리 아들이 야구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었으면 하는 못된 마음이 내게도 있었다. 그 한 해가 정말 난이도 극강의 한 해였고 ㅇㅈ이가 한 획이 아닌 여러 획을 보탠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마냥 좋은 기억으로 덮기엔 좀 쓰린 마음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구장에서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런 마음은 다 사라졌다. 정말 잘하고 잘 크기를 응원한다. 야구의 길을 늦게라도 선택하기까지 정말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아이도 부모님도 말이다. 이 길을 걸어가면서 잘 성장하기를, 그래서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으며 노력하는 기쁨과 보람과 그로 인한 성장이 ㅇㅈ이에게 있기를 간절히 응원한다. 


아래 글과 관련이 된 글이고 이미 두 달 전 이야기인데 꺼내보았습니다.

https://brunch.co.kr/@estarlit/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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