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Jun 26. 2024

절박해지는 순간 글을 쓴다

그런 순간들이 있다.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다가오는가 싶은 순간들. 머리로는 안다. 냉철한 이성은 이야기한다. 너만 힘든 거 아니라고. 너보다 더한 고통을 겪는 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지 않냐고. 안다. 너무도 잘 안다. 진심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고 해서 내가 지금 이 순간 느끼는 이 절박함과 간절함과 서러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삶이 잘 풀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을 정성으로 잘 키웠다고 생각하는데 예상치 못한 일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십 대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공통된 고민은 나라고 피해 가지 않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두 시간 동안 어떻게든 치워놓은 집은 다음 날 퇴근하면 다시 엉망으로 되어 있다. 남들은 다 있다는 내 집도 우리에겐 요원해 보인다. 사실 이런 것들은 아주 사소하고 매일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이다. 별다르지도 않고 예측불가능한 일들도 아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당연한 일상의 반복이 나를 몰아칠 때가 있다. 


나만 필사적인 것 같고 나만 간절한 것 같다. 이것은 아마도 나의 조급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만큼 했으니까 그래도 이 정도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부질없는 기대가 가끔은 황당하게도 잘 유지되고 평화롭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까이 있는 그 누군가를 붙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집을 벅벅 쓸고 닦고 그렇게 치울 수도 있을 것이다. 모른 척 현실 도피성 게임을 하거나 하릴없이 영상의 릴레이에 멍 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내 마음에 들어온 것은 글쓰기. 노트북을 펼치고 글을 쓴다. 갈 곳 없고 방황하는 이 마음을 글로 펼쳐본다. 어디선가 느껴지는 희미한 곰팡이 냄새는 세탁조를 청소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면 될 것이다. 거슬리는 먼지는 닦아내면 될 것이다. 어질러진 책상은 정리하면 된다. 막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는 접으면 된다. 이리저리 어질러진 것들은 하나하나 하다 보면 결국에는 정리가 되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다. 어지러운 내 마음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나를 답답하게 하는지 짚어본다. 말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 글로 하나씩 써 본다. 그럼 보인다. 가끔은 그저 키보드를 붙잡고 눈물을 하염없이 쏟기도 한다. 글로 쓴다고, 눈물을 흘린다고 내 앞에 산적한 문제들이, 내 안을 켜켜이 채운 이 원인들이 다 해결되는 것도 제거되는 것도 아닌다. 그럼에도 이렇게 짚어보고 풀어내고 살펴보면서 나는 또 희망을 얻는다. 서서 나갈 힘을 얻는다. 내 곁의 누군가에게 기댈 수도 있지만 이렇게 먼저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면 놀랍게도 삶의 무게에 눌려졌던 감사와 기쁨과 에너지가 다시 그 모습을 보여준다. 


가끔씩 게을러지고 싶은 순간에도, 또 미치게 달리고 싶은 날에도, 한 템포 천천히 쉬어 가고 싶은 순간에도, 슬픔에 잠겨버리고 싶을 때도, 기쁨이 넘쳐흐를 때에도, 그리고 일상에서 자잘하게 전율이 흐르는 그런 순간들이 모두 글로 다가온다. 글을 쓰는 것이 나를 들여다 보고 나를 북돋우고 나를 채우고 나를 비운다는 것임을 이렇게 알아간다. 그리고, 글은 혼자로서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도 배워간다. 글은 쓰는 사람도 있지만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의미롭다는 것을. 그리하여 함께 삶을 엮어 나갈 수 있는 힘을 받는다는 것을 문득 생각했다. 





66일간의 별별챌린지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이 글은 지난번에 써 두고 마지막 글로 아껴 두었습니다. 아, 물론 이번 별별챌린지 마지막 글이고 저는 글을 계속 씁니다, 물론요. 며칠 사이에 주요한 프로젝트가 네 개나 끝났네요. 피아노 정기 연주회는 잘 마치고 새로운 곡에 들어갔고, 영어원서한권읽기는 22번째 책 안녕, 우주를 마치고 이제 23번째 책 파친코를 읽을 준비를 합니다. 영어책읽는밤의 두 번째 책 별을 헤아리며도 끝나서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을 시작하는 중이고요. 그리고 세 번째 도전한 별별챌린지도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시작했고 조용히 끝날 두 개의 프로젝트도 이번 주 안에 다 끝납니다. 정말 많은 것이 있었고 많은 것이 마무리되는 유월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올해의 상반기가 마무리됩니다. 


학교의 1년은 일반적인 1년과 조금 달라서 정식으로 상반기가 마무리되려면 아직 한 달이 더 있어야 합니다. 조금 가쁘게 유월을 달려보니 어떻게 7월을 보내고 8월을 보내야 할지 천천히 생각해 보게 되네요. 야심 차게 시작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기다리는 새로운 달. 기존의 것을 이어가는 것은 괜찮지만 전혀 시도해 보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대형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조금 싱숭생숭하기도 합니다. 두려움 반, 기대 반이기도 하고 어쩌면 걱정이 주가 되는 마음도 있지만 조심조심 잘 조절해 보려고 합니다. 


늘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8월인가 싶을 정도로 뜨거웠던 열기를 잠깐 식힐 수 있도록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고마운 유월의 화요일 밤입니다. 일 년의 반을 차분하게 돌아보고 또 새롭게 남은 반을 여러분들과 함께 잘 만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늦은 밤 조금 서둘러서 조심조심 글을 먼저 올려봅니다. 잠깐 동안 글이 몹시 그리울 때까지 한 템포 호흡을 고르고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거창하게 인사해 놓고 내일 뿅 하고 나타날지도 몰라요. 하하.) 

작가의 이전글 그녀는 예뻤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