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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un 21. 2024

삶의 균형 잡기

"선생님은 늘 바쁘신 것 같아요."

지난 번 교사소모임에서 만난 한 분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소모임 두 개에 같이 소속되어 있다. 하나는 영어원서읽고 영어로 토론하는 모임이고 하나는 생활 속에서 작은 그림을 그리고 나누는 모임이다. 스티븐 해링턴의 그림을 보러 간 자리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뵙게 되었다. 


이 말에 곰곰히 생각해 봤다. 영어원서읽기 모임에서 내가 바쁘다는 티를 낸 적이 있었나? 딱 한 번 다른 원서읽기 모임과 겹치는 시간이 올 때 시간 조정을 부탁드려도 되겠냐고 여쭤본 것이 다인 것 같다. 나를 톡방에서만 만나고 실제로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나는 정말 바쁘다는 것을 온 몸으로 티를 내고 다니는 사람일까?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유난히 이번 달, 그리고 이번 주가 좀 빡빡했어요."


막둥이가 상담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매주 한 시간 반 이상은 아이를 위해서 따로 두어야 하고, 거기에 다른 상담클리닉에 가게 되는 일도 3주에 한 번씩 있으니 없던 일정이 추가된 셈이다. 셋째 야구 경기는 수시로 잡힌다. 첫째 둘째는 중학생 고등학생이라 덜 할 것 같지만 아이가 컸다고 부모의 손길이 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사 알았다.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 더 바쁘다. 


그 와중에 나는 연주회를 한다. 물론 한 곡이고 다른 분들이랑 함께 하니까 독주회도 뭣도 아니라 부담은 없지만 그렇다고 연습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것이다. 2주 전부터 날마다 연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 하는 곡은 슈베르트의 환타지 D.940으로 포핸즈인데 그래서 더 바빴다. 개인 연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맞춰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조금, 아니 많이 무리를 했던 것 같다. 보통 사이사이 쉬어가는 여유 타임에 나는 피아노 연습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지난 주 일요일 같은 경우는 오전에 셋째 야구 경기에 데려다 주고 오전 예배가 끝난 후에는 막간을 이용해 피아노 연습을, 오후에는 예배가 끝나자 마자 미술관 소모임에 갔고 그리고 집에 와서 저녁을 차리고 원서 읽기 모임 두 개를 연달아 한 후 마지막으로 피아노 호흡을 맞추러 연습실로 달려가 같이 연습을 하고 집에 오니 11시였다. 그 전 날인 토요일에는 대전에 가서 글로성장연구소 분들과 물론 즐거운 모임을 하고 왔다. 좋았지만 이틀 연속 빡빡한 일정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주말에는 조금 여유있게 쉬어가는 편인데 그러지 못한 상태로 다시 피아노 연습과 독서와 공부에 올인하는 한 주를 보내고 나니까 이제 슬슬 한계가 오는 것이 느껴진다. 우선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같이 연주를 하는 다른 분의 말처럼 내일 끝나고 나면 일주일 정도는 쉬어주어야 할 것 같다. 피아노가 너무 좋고 사실 지금도 이리저리 다른 곡을 쳐 보고 싶긴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오히려 장기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집이 조금씩 안 깨끗해지고 있다. 아이 넷이 있는 집이니 어쩔 수는 없다지만 아무래도 하루에 2시간 정도 연습을 확보하다 보니 새벽 1시 넘게까지 치워도 빈 틈이 있기 마련이다. 왜 매일 치워도 왜 매일 더러운지 정말 경이롭다....


그래도 내일이 지나면 중요한 프로젝트 두 개가 끝나니까 한 숨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주말이 지나면 또 다른 프로젝트가, 이렇게 한 주씩 겹쳐서 진행되었던 것들이 차례차례 끝난다.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최근 2주에 대여섯 개의 공을 저글링을 했다. 어찌어찌 떨어뜨리지 않고 잘 할 수는 있었다. 잠이 부족해서 피로가 조금씩 쌓여가는 것을 빼면 그래도 할 만은 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지혜롭게 무리하지 말고 해 보자고, 이번에 새삼 다시 깊이깊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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