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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ul 08. 2024

내 아이가 가해자일까 봐 3

이 제목으로 글을 세 편이나 이어서 쓰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오늘 오후에는 막둥이의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아마 나 보다 몇 년의 연배가 있어 보이시는 막둥이의 담임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시다. 나도 교사라 함부로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이 분은 좀 더 열정적이신 분, 이 분은 아이들의 기본 습관을 엄격하게 잡으려고 하시는 분, 이 분은 수업을 재미있게 해 주시는 분. 그중에서도 막둥이의 선생님은 아이들 개개인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아 주시돼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할 때는 또 확실하시다. 


내가 담임 선생님께 문의드린 것은 아이가 집중력을 키워주는 약을 먹으면서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을 하거나 그로 인해서 친구들과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우려한 부분이었다. 선생님은 우선 그전에 있었던 다른 사건을 하나 말씀해 주셨다. 나도 알고 있는 일이었는데 아이가 여기서도 피해를 당했지만 굳이 학교에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넘긴 일이었다. 선생님은 예전보다 속상한 마음을 자주, 잘 표현한다고 하셨다. 이 부분은 아이가 오랫동안 친구들에게 만만하게 보여서 참고 넘어갔던 일, 반격하지 않고 지나갔던 일들을 그냥 넘기지 않는 부분이라고 하셨다. 옳지 못한 행동에 대해서 자기를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몰랐다. 아이들이 우리 아이를 그렇게 만만하게 여기고 함부로 대한다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선생님은 그동안 참아왔던 억눌림을 발산하는 시기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제는 주변 친구들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잘못하는 부분이 있는 친구는 지적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보통은 저학년 아이들에게서 많이 나오는데 우리 막둥이는 조금 늦은 셈이다. 아이는 감정이 격해지면 (어른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 논리적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이런 때를 위해서 유창하게 말하기 연습도 집에서 많이 해 보도록 권고해 주셨다고 한다. 그러시면서 내게는 아이를 많이 어루만져 주시라고. '이게 정답이다'라는 때가 없고 아이마다 다 다르게 가니까 어느 단계는 거쳐야 성숙에 이르는 시기가 온다는 말씀에 나는 그냥 눈물이 나왔다. 


네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항상 참을 것을 강조했다. 늘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볼 것을 강조했다. 부당한 경우에는 물론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웬만해서는 참고 넘어갈 것을 이야기했다. 굳이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조금 피해를 보더라도 가해자가 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사소한 것에서도 내 아이를 보호하고 내 아이를 우선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이 순간에도 내 아이의 참을성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참고 넘어가면서 당하는 아이들의 속상한 마음은 미처 잘 만져주지 못한 것 같다. 전화 통화였지만 나는 그만 또 펑펑 울고 말았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상황을 이해해 주시고 막둥이를 격려해 주시는 담임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에 그냥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사실은 남들보다 느리고 손이 많이 가고 힘이 겨운 막내를 보면서 나도 좀 지쳐있었던 그 자리에 들어온 위로에 눈물이 났다. 


삶의 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면 또 마주해야 하는 다른 고비가 다가온다. 어쩌면 인생은 이렇게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지 가끔 기가 막히기도 하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련이 없던 시기로 돌아가지는 않고 싶다는 마음이다. 늘 생각한다. 굳이 겪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또 생각한다. 내 딸들은 나처럼 살지 않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생각한다. 그래도 이래서 단단해질 수 있는 거지. 오늘도 한 발짝. 더 여물어지고 성숙해지는 시간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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