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의〈전적벽부(前赤壁賦)〉감성 따라잡기
이제 정말 코로나가 물러가려나보다. 물론 거리를 좁혀 대학 축제를 즐긴 대학가 근처 편의점의 자가진단키트가 동이 났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하고, 아직 날마다 만여 명 수준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어 우려스렵긴 하다. 하지만 이제 소수의 피해를 줄이려 다수의 행복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긴 절제의 시간을 보낸 탓인지 일상을 되찾기 위한 거대한 물결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밀려있던 회식 자리 역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코로나 끝나면 한번 만납시다.”라며 남발한 약속 어음의 지급 기한이 도래한 것이다. 저녁 9시면 영업이 끝나 10시 무렵에도 무척이나 한가하던 사당역 주변이었는데 요즘은 밤 11시에도 불야성이다. 덕분에 광역버스 줄이 길어져 경기도민의 퇴근길은 더욱 고달파졌다. 물론 나 역시 기꺼이 이 불야성에 이끌리는 불나방 같은 시간을 몇 번 보내기도 했다. 세상에 3차까지 이어지는 술자리가 대체 얼마 만인지. 동기들과 처음 가져본 거나한 술자리에 적어도 몇 년은 재잘대기 좋은 이야기거리도 생겼다.
물론 ‘알코올은 발암물질로 지나친 음주는 간암, 위암 등을 일으킵니다.’ 과음은 조심합시다.
하지만 술의 지난 역사를 생각해 보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없어서 못 마시는 일은 있더라도 자발적으로 술을 없애는 일은 없을 듯하니 이왕이면 슬기로운 음주생활을 배우는 게 좋겠다.
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이다. 그중 〈월하독작(月下獨酌)〉에는 애주가의 바른 낭만이 돋보인다.
花間一壺酒(화간일호주) 꽃 사이 술 한병 놓아두고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 친한 이 없이 홀로 술 따르네
擧杯邀明月(거배요명월) 잔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 그림자와 마주하니 세 사람이 되었구나
(후략)
현대인의 감성으로는 ‘#야밤_혼술_자작’ 정도로나 표현할 만한 순간을 이렇게나 멋지게 써내리다니 불세출의 시인은 역시 다르다. 이백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내 비루한 표현은 ‘#달_그림자_그리고_나 #혼술아님’ 정도를 벗어나기 힘들 것 같지만.
혼자가 아닌 여럿의 술자리 감성을 즐겨보자면 소식(蘇軾, 1037~1101)의 〈전적벽부(前赤壁賦)가 또한 훌륭하다. 손님과 함께 저녁 무렵 뱃놀이를 하며 지은 글인데 밝은 달 아래 찰랑찰랑 뱃전에 물결 부딪치는 소리를 상상하며 읽다 보면 도심의 불야성과는 차원이 다른 낭만이 느껴진다.
작은배 한 척 흘러가는 대로 따라 아득한 만 이랑의 물결을 타넘는다.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종일위지소여 릉만경지망연)
달빛 아래 유유히 흘러가는 배 안에서는 소동파와 객이 노래하고 퉁소를 불며 인생무상을 느껴 자못 슬퍼하다가 조물주가 남겨준 아름다운 산수를 즐기는 것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 힘껏 즐기는 것이 좋겠다며 의기투합하여 술자리를 이어간다. 어찌나 그 술자리가 즐거웠던지 달이 뜰 무렵 시작한 뱃놀이는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이어졌다.
안주는 다 떨어지고 술잔과 그릇은 어지러이 있는데
배 안에서 서로 베고 깔고 누워서 동쪽이 이미 밝아오는 것도 모르고 있네.
肴核旣盡 盃盤狼藉 相與枕藉乎舟中 不知東方之旣白
(효해기진 배반낭자 상여침자호주중 불지동방지기백)
글을 읽다보면 중국 항주(杭州)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서호(西湖)에서 작은 배를 타고 강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마시던 정경, 일을 마치고 새벽에 걷던 조용한 거리, 왁자지껄 떠들던 좋은 친구들과의 흥겨움 등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오른다. 경험해보지 않아도 상상은 할 수 있지만 경험이 바탕이 된 상상은 좀 더 감각적이고 실체적이다.
밤새 웃고 떠들기도 하다가, 조용히 흘러가는 물소리를 듣기도 하다가, 밤하늘의 별을 헤아려보며 감상에도 젖었다가 까무룩 잠들어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도 모르고 서로 베고 누웠을 소동파와 친구들을 생각하니 불야성과 불나방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감성에 부러움이 절로 일어난다.
어린이에겐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어른들에겐 시시한 일이 되는 것처럼 시간과 경험은 사람을 무디게 만든다. 낭만과 감성도 청춘의 영역이라 감성적인 중년이 되려면 더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더 좋은 무엇이 있을지 알아내려는 공부, 그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일단 〈전적벽부〉를 알아내는 공부를 하였으니 이 감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려면 어른의 스케일에 맞게 일단 ‘동파적벽(東坡赤壁)’을 보러 황주(黃州)에 가는 정도는 되어야 하려나. 생각을 이리저리 치달리다보니 공부와 노력 외에 극복해야 할 것이 또 생각났다. 바로 귀찮음. 감성중년이 되는 길은 쉽지 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