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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헛똑똑이 Apr 01. 2021

 제주나라 이민자?

제주살이 시작~

우리 이민 갈까? 나 이민 가고 싶어~


 늦은 결혼과 난임으로 힘들어하던 나는 쌍둥이를 결혼 6년 만에 낳았다. 양가 부모님 모두 아이를 돌보아줄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리원과 친정을 합쳐 딱 둥이 생후 57일 만에 독박 육아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2011년 한 여름에 태어났다. 늦은 나이의 출산이고 또 쌍둥이 


임신 막달은 조산기가 있어서 한 달 동안 병원 입원을 했다. 입원 후 바로 제왕절개를 하고 출산한 나의 몸은, 아이들의 백일이 한참 지나고 나서도 무릎과 손목이 제대로 굽혀지지 않아 좌식 생활이 안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출산 딱 1달 만에 남편은 사업을 시작했다. 남편의 이른 아침 출근과 늦은 퇴근으로 육아는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힘들게 낳은 아이들이었기에 감사히 아이들을 산후 우울증 없이 오롯이 혼자 키웠다.

 아마 지금 다시 그 시절을 돌이키라고 하면 막말로 달러빚을 내서라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키웠을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늘 생각해 오던 것이 있었다. 내가 어릴 적처럼 아이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유년의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아니 꼭 그렇게 키우고 싶었다. 아이들이 기관에 다니기 시작한 후 나의 열망은 더욱 커져 갔다.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힘든 교육의 스트레스는 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답게 행복하게 뛰어놀면서 꿈을 키우는 시간을 주어야겠다는 생각. 이 생각은 결국 이민을 가고 싶다는 열병을 낳게 했다. 그 무렵 아르헨티나에 살고 계신 외삼촌에게서 이민 오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다. 외삼촌은 30년 이상을 원양어선 선장을 하셨고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계신지 10년이 되셨던 터라 우리가 그곳에 가게 되면 취업과 영주권 신청에 많은 이점이 있었다.


 나는 남편을 설득시켰고 나와 평소에 아이들과 미래에 대한 가치관이 같았던 남편은 큰 고민 없이 이민에 합의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민 준비에 들어갔다. 1년을 준비하고 아이들이 1학년이 되기 전에 아르헨티나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준비 기간 동안에 아르헨티나에 IMF가 시작되고 경제와 정치가 혼란스러워졌다. 자연스레 우리의 이민 준비는 탄력을 잃고 있었고 남편이 선언했다. "나 이민 갈 자신이 없어! 도저히 안 되겠어." 그렇게 좌절된 이민으로 난 또다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은 초등부터 학원을 전전하고 또 맞벌이를 할 경우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귀가 시간을 맞춰야 하기에 더욱 고단하게 유년을 보낼 것이라는 나의 염려와 안타까움.


'아~~ 도저히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 철없이 맘껏 뛰노는 행복은 없는 걸까?'


 그러던 중 우연히 남편은 제주지사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너무나 단순하고 과감하게 그러자고 대답했다.

지구 반대편으로 이민도 갈 생각이었던 우리에게 제주도쯤은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이사 가는 것이었으니 너무도 쉽고 간단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제주살이는 2018년 2월 둥이들이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해에 시작되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제주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 시작은 설렘으로 가득 찬 행복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우린 태어나서 한 번도 시골살이를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제주도는 하나의 섬이 아닌 다른 나라였다는 것을!!!

그렇다! 우린 우리도 모르게 정말로 이민을 왔던 것이다. 제주에 와서 보니 모두들 우리를 "제주이민자"라고 부르고 있었다. 우린 제주도민이 되었지만 우리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이민자였다.

세상에!!! 내가 이민자라니!!!!


 제주에서 황홀했던 6개월, 그리고 시작된 이민자의 진짜 삶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것도 땅도 집도 없는~ 제주에 괸당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생 날것의 이민자의 삶!

 

 우리는 그렇게 제주 나라에 도착해서 지금 벌써 4년 차의 시간을 맞이했다. 많은 이야기와 많은 생각들이 가득했던 제주에서의 삶! 그 이야기를 올 해에는 꼭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재웠던 블로그도 다시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요즘에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문학소녀를 꿈꾸고 시를 쓰던 나의 감성을 되찾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또한 내 인생에서 가장 파란만장했던 제주에서의 생활을 기록하고 나누고 싶었다. 코로나로 다시금 부각되고 있는 제주에서의 삶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을 많은 분들에게 나의 글이 시원한 사이다 급의 현실인식이 될지 아니면 더욱더 꿈을 꾸게 하는 동경이 될지는 모르겠다. 엄마로서 또한 제주도 가장 시골마을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나.

제주를 사랑하는 눈물 많은 울보 아줌마인 나의 이야기들을 쓰고 싶다.


 내가 제주에 내려와 살게 된지도 벌써 4년 차라는 사실이 신기하고 스스로 대견한 이 시점에, 글쓰기를 통해 더욱더 나의 생활을 다듬고 성실히 살고 싶은 마음도 얹어본다. 앞으로 하나하나 써 내려갈 추억과 또 오늘의 이야기들을 기대해 주시기를 용감하게 말씀드린다.

자 이제 제주이민자로서 시골공방지기가 된 나이야기를 시작하는 첫걸음을 떼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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