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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헛똑똑이 Mar 23. 2021

시골 인형공방지기

제주도 시골마을 공방지기의 일상

나의 출근길

유채꽃이 만발한 봄이 시작되었어요.

제주도 시골마을에 사는 공방지기인 나, 오늘도 푸르른 하늘과 눈이 부시게 노란 빛깔로 하늘 거리는 유채꽃밭을 가로질러 출근을 한다.

크고 작은 돌들이 율동감 있게 나지막이 쌓여있는 돌담을 따라 호젓이 걸어가면 나의 소담한 공방이 앉아있다.

작고 오래된 툇마루와 제주도 시골에나 있는 초가지붕에 흙과 돌을 쌓아 만든 나의 제주 전통 돌집 공방.

마을 전체가 문화유산인 성읍 민속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나의 공방은 타임슬립을 한 듯 옛 모습 그대로이다.

 

처음 이 곳을 보았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오후 3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오후의 햇빛을 그대로 너른 마당이 안고 있었다. 따뜻하고 아늑한 기운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했다. 작은 풀들이 가지런히 돋아서 잔디처럼 얇게 깔려 있었다. 풍채라고 불리는 제주도 초가집의 바람막이도 초가지붕처럼 풀로 만들어져 있다. 지금의 '어닝(Awning)'같은 풍채는 풍채 다리가 받쳐주고 있다.  2미터 정도 되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데, 위쪽은 'v' 자 모양으로 벌어진 가지를 잘라서 그 벌어진 사이로 풍채의 양쪽을 들어 올려 고정한다. 수동식 어닝이다. 그냥 빨랫줄 장대처럼 풍채를 고정하기만 해도 되는데 이것이 바람 많은 제주도의 바람을 막아주어 초가집의 외풍을 차단하고 햇빛을 막아주기도 한다. 이것은 또한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라 보고 있으면, 옛 수묵화의 한 풍경을 보는 듯 편안하고 정감 있다.

 

아침에 공방을 들어설 때는 늘 소풍을 온 듯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 외할머니 댁에 온 것처럼 설레고 또 편안하기도 하다.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세 곳의 정원에는 거대한 동백나무부터 동글동글 아담한 사이즈의 동백나무까지 공방을 바라보며 자라고 있다. 이 외에도 감나무, 비자림 나무, 치자나무 등등. 나무와 꽃들과 풀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마치 그림처럼 평화롭고 아름답다. 아침에는 산새들이 나무에 앉아 지저귀는 새소리도 파란 하늘과 산뜻하고 맑은 바람을 따라 조용히 그리고 경쾌하게 들려온다.


공방을 시작하기까지

 공방의 풍경을 가만히 앉아 떠올리자니 '내가 참, 공방을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에 혼자 웃음이 난다.

이렇게 예쁘고 따뜻한 공방을 지키는 공방지기가 되기까지 나는 많은 시간을 준비하고 기다려왔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결혼과 함께 시작되는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불가피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나 또한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하며 직장에 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쌍둥이를 낳은 나로서는 독박 육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육아의 시간은 마치 짐승처럼 살았다고 누구에게라도 말한다. 나의 육아는 그야말로 지독한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는 시간들이었기에 어떠한 시간도 나를 위해서는 쓸 수 없었다. 쌍둥이를 홀로 키우는 동안 나는 내 팔이 두 개인 것이  그렇게 슬펐다. 동시에 두 아이를 케어하는 것은 인간 신체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러한 내가 공방을 그것도 제주도 시골마을 성읍에서 공방을 운영하기까지의 시간은 무려 출산 후 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취미로만 여겨왔던 공예를 배우며 하나하나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공예 자격증을 3개를 가지고 있으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방과 후 사로 활동할 수 있다는 문화센터 원장님의 말씀을 믿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나면, 헐레벌떡 버스를 타고 20분 거리에 있는 문화센터로 향했다. 또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무언가를 배우며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기쁨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열정을 쏟을 수 있게 했다.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원장님의 이야기만 믿고 3개의 수업을 들었던 나는 참 바보였었다. 단순히 방과후강사를 할 생각이면 토털공예강사 민간자격증만 있으면 되는 문제였다. 수강을 시작하고 몇 달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야속한 세상에 또 속았지만, 나는 그냥 어차피 천천히 즐기며 배우자라는 생각에 수업을 즐겁게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임신을 위해 난임 병원에 몇 년을 다니고, 또 출산 후 육아까지의 긴 시간 동안을 지나온 나. 나를 위해 무언가를 배우는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대학교를 입학하던 스무 살 새내기 시절의 설렘이나 행복감과 견주어도 될 정도로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매일 배우고 만들고 나의 창작욕구를 불사르며 정말 열심히 만들고 또 만들었다.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그 자체가 좋았다. 쌍둥이 딸을 가진 나는 자연스레 아이들을 예쁘게 꾸미고 싶어서 '리본공예 강사 자격증'을 첫 번째로 취득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강사 자격증이 이제는 무려 8개가 되었다.


공방지기가 된 나

공방에 앉아서 인형을 만들고 있으면 문득문득 참 행복하다!


제주도에 내려온 후 아이들을 키우며 집 근처에서 공방을 하기 위해 1년이 넘게 자리를 찾으며 기다렸다. 우연한 기회에 지금의 공방을 운영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전원생활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마당에 잡초를 뽑고, 여름에는 모기들과 각종 벌레들의 공격을 이겨내기가 당황스럽고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커다란 지네를 봐도 약을 먼저 뿌리고 도망가는 강심장이 장착되었다. 시골살이를 하다 보니 점점 생활밀착형 파워 아줌마가 되어 가고 있다.

 

공방을 운영하면서 제주도 감성에 맞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작품 탄생의 모티브는 '해녀'가 되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 명확하다. 나에게 제주도의 '해녀의 삶'은 그 자체로 나의 엄마의 삶을 투영시켜 오버랩되었다.

오로지 희생으로 일관된 삶! '나'는 없고 오롯이 '가족'만이 있는 그녀들의 희생의 시간이 가슴 아프도록 깊은 울림이 되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해녀인형'을 만들게 되었다. 하나하나 만들기 시작한 작품들은 대부분 '해녀인형'들로 탄생이 되었다. 인형을 만들고 나서는 먼저, '디자인 특허등록 출원'을 하게 되었다. 또다시 그렇게 시작된 '디자인 특허등록'이 10개가 되었다. 밤을 꼬박 새우거나 새벽 4~5시까지 깨어있으며 작업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피곤한 줄 모르고 열심히 만들고 또 만들었다.

 

인형들을 만들고 제주도 소품샵에 납품하는 기회도 주어졌다. 소소하게 만들고 납품도 하고 플리마켓에도 참여했다.  대한민국 최대 관광지인 제주도는 소품 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지만 '플리마켓'은 무척 활성화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바다와 산, 들에서 펼쳐지는 플리마켓은 제주로 이민 온 나에게는 그 자체가 여행이었고 즐거운 행사였다. 제주도를 여행하듯, 입도하고 무려 1년 동안 제주도 구석구석의  플리마켓에 셀러로 참여했다. 어떤 날은 무려 200킬로 가까이 운전을 하고 와도 재밌었다. 그렇게 공방과 플리마켓을 병행하며 만들고 또 만들기를 쉬지 않고 했다.

 

공방을 운영하며 아직도 나의 색깔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지만 처음 아이들 헤어핀을 직접 만들어주던 그 순간의 행복하고 뿌듯했던 감정들이 생생히 기억난다.

분명히 나와 같은 무수한 엄마들이 있을 것이다. 나를 찾고 싶은 엄마들 말이다. 잃어버린 자존감이 바닥을 딛고 해저에서 수면으로 떠오르길 기다리는 엄마들. 그리고 여인들!

나 스스로도 아득히 먼 꿈이고 대단한 일이라 생각했던 공방 운영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글쓰기를 통해 공방을 운영하며 만난 인연들과 그 소중한 에피소드들을 이야기에 쓰고 싶다. 그 어떠한 누구라도 소망한다면 공방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함께 나누고 싶다. 그리고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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