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쓰레기통에서 낭만을 줍는 방법

Chapter5.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충청도

by 장병조

보령에서의 마지막 밤, 저녁으로 조개구이를 한 바가지 가득 먹은 방꾸쟁이들은 아이스크림과 새우 과자를 사 들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밤바다’라고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낭만적인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해수욕장에 도착한 방꾸쟁이들은 앉거나 누울 만한 자리가 있는지 찾았다. 물론 돗자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너무 축축하지 않은 벤치나 스탠드가 따위가 있기를 바라며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방꾸남이 쓰레기통 주위에서 버려진 듯한 튜브 2개를 발견했다. 아마 낮에 비가 많이 올 때 사람들이 버리고 간 듯했다.


방꾸쟁이들은 튜브를 보고 주울지 말지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주웠다. 그러고선 모래 위에 자리를 잡고 튜브 위에 누웠다. 튜브에 누워서도 방꾸녀는 ‘혹시 주인이 있는 튜브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지만, 금방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이미 누워버린 지금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감정과 감각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방꾸녀는 모래사장 위에서 튜브를 타고 자기만의 상상을 펼쳤다. 상상 속에서 자기만의 작은 모험을 즐겼다. 방꾸남은 그런 그녀를 아무 말 없이 쳐다보다가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른 곳을 응시할 때면 자기만의 세상에 푹 빠져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해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그녀만의 작은 모험을 존중했다.


그날 밤의 튜브는 침대 못지않게 편안했고, 두 사람의 감각은 충만했다. 해수욕장을 한가득 채운 갈매기 무리가 방꾸쟁이들의 눈을 가득 채웠다. 어둠 속에서 고요히 들리는 파도 소리가 방꾸쟁이들의 귓속을 가득 채웠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바다 냄새가 방꾸쟁이들의 콧속을 가득 채웠다. 과자가 주는 짭짤하고 자극적인 맛이 방꾸쟁이들의 입속을 가득 채웠다. 방꾸쟁이들의 끈적한 팔다리에 붙은 모래 알갱이 몇 개가 까끌까끌한 느낌으로 그들의 피부를 가득 채웠다. 그렇게 방꾸쟁이들의 오감은 밤바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들로 가득 찼다. 이 모든 것은 모래사장에서 튜브 위에 누워있는 두 사람만이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기에 침묵을 지키며 각자의 감각에 오로지 집중했다. 편안함을 선물해주는 튜브를 주웠음에 감사하면서.


시간이 지나고, 상상을 마친 듯한 방꾸녀가 먼저 침묵을 깼다. “이런 데서 무슨 얘기를 해야 좀 낭만적일까?”라는 물음을 던진 것이다. 그러자 방꾸남은 이렇게 대답했다. “음, 글쎄? 일단 쓰레기통에서 튜브를 주워서 밤바다에 누워있는 것 자체가 낭만적인 게 아닐까? 그러니까 아무 말이나 해도 될걸?”


방꾸녀는 듣고 보니 맞는 말 같다고 느꼈다. 우리는 쓰레기통에서 낭만을 주웠고, 낭만을 깔고 누웠고, 오감으로 낭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말 아무 말이나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꺼내두기 시작했다. 갈매기에게 하는 잔소리부터, 바다를 향한 외침,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각자의 삶 이야기, 지금까지의 여행에서 생긴 추억 등을 꺼내두었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웃고, 장난치고, 진지한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의 소리가 파도를 타고 떠내려갔다.


■ 방꾸남: 하아~ 또 일주일이 지났네. 내일이면 집에 가야 해. 시간이 제발 멈췄으면 좋겠다.


■방꾸녀: 쏘 이지(So easy)하지~ 내가 한 번 멈춰봐?!


우리는 늘 낭만적인 삶을 꿈꾼다. 그리고 낭만을 찾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쏟는다. 하지만, 낭만이라는 것은 내 맘처럼, 내가 계획한 순간에,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찾아오는 존재가 아니다. 낭만은 우리가 추구하던 완전함과 완벽함 따위를 내려놓고 약간의 부족함을 감수할 때 나에게 찾아오는 작은 선물이다. 낭만은 나의 계획으로부터 벗어나 세상의 계획을 따라갈 때 비로소 나에게 주어지는 예상치 못한 순간들과의 만남이다.


낭만은 그냥, 쓰레기통 옆에서 주운 튜브 같은 존재이다.


그렇게 방꾸쟁이들은 자신들이 선물로 받은 특별한 낭만을 즐겼다. 꿈꿔왔던 낭만의 모습과는 달랐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그들은 행복했다. 이대로 어디론가 떠내려가도 괜찮을 것 같은 밤, 모든 존재가 선물인 것처럼 느껴지는 밤은 그렇게 조금씩 흘러갔다. 일주일 동안의 꿈 인터뷰 여행, 작은 모험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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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별, 갈매기와 함께면 상상 여행 준비 완료!

■ 다음 이야기(2025.10.05.일 업로드 예정)

□ Chapter5.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충청도


"스낵챕터: 다시 여기 바닷가"

→ 대천 해수욕장에서 찍은 사진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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