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갬

Chapter5.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충청

by 장병조

보령 여행 중 어느 하루는 인터뷰를 하지 않고 해수욕장에서 놀았다. 나름 여행을 떠난 것인데 찜통더위 속에서 인터뷰만 하고 오면 왠지 억울하니까!


대천해수욕장은 오전 10시부터 바닷물에 들어가는 게 허용됐다. 방꾸쟁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놀고 싶었지만, 인터뷰로 쌓인 피로를 푸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에 늦게까지 깊은 잠을 잤다.


두 사람은 이른 점심을 먹은 뒤에야 해변으로 나갔다. 모래사장에 도착하자마자 아무 곳에나 짐을 내던졌고, 바닷물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물가에 다다르자 방꾸남은 거침없이 물에 뛰어들었다. 반면 땀띠로 고생하던 방꾸녀는 ‘바닷물 닿으면 땀띠 엄청 따가운 거 아니야?’라고 걱정하며 조심히 몸을 적셨다. 다행히 바닷물은 땀띠를 악화시키거나 따갑게 만들지 않았다. 안심한 방꾸녀도 방꾸남을 따라 더 깊은 바다로 조금씩 나아갔다.


바닷물은 미지근했다. 물속에서 해변을 따라 좌우로 돌아다녀 보니 어떤 부분은 ‘따듯하다.’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몇 걸음 차이로 물의 온도가 다르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바닷물은 짰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짰다. 바닷물을 조금씩 맛보다 보니 비로소 ‘바다에 왔구나.’라는 게 실감이 났다.

사진_Chapter5_충청도_8_수달예닮.jpg 비치볼만 있으면 바다는 문제없지~

날씨도 더운 데다가 바닷물을 실컷 마시면서 놀다 보니 갈증이 났다. 방꾸쟁이들은 해변 어딘가에 던져둔 짐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러고선 방수 가방에 나란히 담아둔 얼음물과 생수 한 병씩을 꺼내 마셨다. 방꾸남이 물을 가방에 다시 넣고 짐 놔둘 자리를 정돈하는 동안 방꾸녀의 머릿속에는 문득 ‘해변에 오면 모래찜질을 해야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 생각과 동시에 방꾸녀는 물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아 누웠고, 방꾸남이 와 모래를 덮어주길 기다렸다. 그러자 방꾸남은 텔레파시라도 받은 듯이 조용히 그녀를 찾아가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모래로 덮어주었다. 방꾸녀가 평소 가지고 싶어 했던 S라인과 복근도 모래 위에 새겨주었다. 방꾸녀의 작은 꿈이랄까, 소원 두 가지가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 맞이하는 여름에 바닷가로 여행 가서 놀기’, ‘복근과 S라인 가져보기.’

사진_Chapter5_충청도_9_방꾸녀의모래찜질.jpg 미라 발굴의 현장 같은 방꾸녀의 모래찜질

방꾸녀가 모래를 많이 무거워하자 방꾸남은 몸에 덮힌 모래를 치우고 그녀를 꺼내주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이번에는 방꾸남이 모래에 묻힐 차례였다. 방꾸남은 땅을 조금 파더니 그 위에 앉았다. 그러고선 앉은 상태 그대로 자기 몸과 그 주변에 모래를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혼자 하겠다는 방꾸남의 말에 방꾸녀는 스스로 땅과 하나가 되고 있는 방꾸남을 가만히 구경했다.


모래가 사방으로 허리보다 조금 높게 쌓이고 나니 방꾸남 혼자서 모래를 덮을 수가 없게 됐다. 쌓아 올린 모래들이 움직일 때마다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방꾸남은 높이 쌓아 올릴수록 혼자서 움직이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방꾸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진_Chapter5_충청도_10_방꾸남의모래찜질.jpg 방꾸남으로 만든 모래산! 뒤에는 먹구름이 몰려오는 중...

방꾸남의 가슴 높이쯤 모래를 쌓아 올렸을 때였다. 실시간으로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거세지는 것이 느껴졌다. 비도 내리기 시작했다. 방꾸남은 “시원해~오히려 좋아~”라고 중얼거렸고 방꾸녀는 계속해서 모래를 쌓아 올렸다. 그런데 방꾸쟁이들이 한참 모래찜질에 집중하던 도중 축구공처럼 생긴 비치볼이 멀리서 굴러가는 게 보였다. 생긴 것이 왠지 익숙했다. 그 공은 모래찜질 전에 방꾸남이 가방과 함께 놓아두었던 방꾸쟁이들의 비치볼이었다. ‘설마’ 싶은 마음에 두 사람은 가방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역시나 비치볼이 없었다. 모래에 묻힌 방꾸남을 놔두고 방꾸녀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다행히도 그녀의 빠른 발 덕분에 바람으로부터 비치볼을 되찾아올 수 있었다.


방꾸녀는 비치볼이 날아가지 않게끔 바람을 빼 다른 짐들과 묶어두었다. 그러고선 다시 방꾸남의 몸에 모래를 덮기 시작했다. 그런데 빗방울이 빠르게 굵어지더니 점점 맞으면 따가울 정도의 장대비가 되어갔다. 빗방울이 완전히 굵어지는 데까지는 체감상 1분도 걸리지 않은 듯했다. 비만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방향 또한 바뀌었다. 바다에서 육지로 불던 바람이 육지에서 바다로 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해변의 안전요원들이 물놀이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모든 여행객을 물 밖으로 이동시켰다. 또, 해수욕장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서는 물가에서 조금 떨어져 대기해달라는 내용의 음성이 계속해서 송출됐다.


방꾸쟁이들은 모래놀이를 하느라 물가에서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놀던 장소를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두 사람은 비와 바람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일기예보에서 소나기라고 했으니까 금방 그치겠지.’라는 생각으로 방꾸남의 몸에 모래를 마저 덮었다. 하지만 5분이 채 되지 않아 결국 방꾸남의 몸에 쌓아 올린 모래를 모두 무너뜨리고 모래사장 밖으로 몸을 옮겼다. 주위에 아무도 없이 튜브와 비치볼만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해가 구름에 가려지고 바람이 강하게 부니 체온이 급속히 떨어졌고, 추위를 느낀 방꾸쟁이들은 비를 피해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모래사장 밖에 있는 가장 가까운 건물로 비를 피한 두 사람은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고 손을 말렸다. 그러고선 휴대전화를 꺼내 날씨를 검색했다. 비가 금방 그칠 것이라는 정보를 먼저 확인한 방꾸남이 방꾸녀에게 이야기했다. “비 곧 그칠 것 같아. 좀 기다렸다가 다시 놀자.”


방꾸쟁이들은 쏟아지는 비를 말없이 바라보며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조금 추웠지만, 아무 행동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멍하니 무언가를 기다릴 때만 느낄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여유’를 만끽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20분쯤 지났던가. 방꾸녀는 왼편으로 멀리 떨어진 해변에서 사람들이 다시 물놀이를 시작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곳 한편에서는 폭풍우가 몰아치는데 다른 한편은 화창하고 평화로운 모습이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동시에 환상적인 느낌도 있었다. 누군가 캔버스를 일부러 반으로 나눠 그림을 그려놓은 듯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이 모두 갰다. 그러자 사람들은 일제히 바닷물을 향해 나아갔다. 안전요원들은 물에서 놀아도 된다는 방송을 하는 대신 각자가 비 오기 전 서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곤 수평선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여행객들은 안내 방송이 따로 나오지 않았음에도 튜브와 비치볼을 가지고 물속에 들어갔다. 그러곤 튜브와 비치볼과 한 몸이 된 것처럼 둥실둥실 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가 자연스레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마치 그곳이 원래부터 정해져 있던 자기 자리인 것처럼.


방꾸남은 그 장면에 대해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명령 코드라도 입력받은 것 같아. 맑아지니까 바로 다시 자기 자리 찾아가네.”라고 표현했고, 방꾸녀는 “바다가 샤워하는 것 같아. 빗물 샤워를 하기 전에 모두 밖에 내놓았다가 목욕이 끝나니까 다시 들여두는 거지!”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방꾸쟁이들 각자의 성향이 묻어나는 비유적 표현을 한 구절씩 주고받은 뒤, 다시 바닷물로 들어갔다. 물에 들어간 방꾸쟁이들은 누구보다 신나게 놀았다. 보령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으므로. 올여름 두 사람의 처음이자 마지막 바다였으므로.


이날 두 사람은 꿈 인터뷰를 한 건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꿈같은 하루를 보냈다. 자고 일어나면 어느 한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잊힐 꿈. 꿈속에 있을 때는 생생했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흐릿해질 꿈. 무서웠던 감정, 즐거웠던 감정처럼 자기가 가졌던 감정은 기억하지만, 옆 사람의 얼굴과 표정은 언젠가 잊어버릴 그런 꿈과 같은 하루였다. 방꾸쟁이들은 이날 자기들이 경험하는 짧은 하루가 누군가는 긴 시간 꿈꿔온 하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특별한 하루를 온전히 누렸다.

사진_Chapter5_충청도_11_방꾸남 물속에서.jpg
사진_Chapter5_충청도_12_방꾸녀와비치볼.jpg

■ 다음 이야기(2025.09.28.일 업로드 예정)

□ Chapter5. 꿈속으로 떠나는 여행, 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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