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해솔이 어린이집 하원을 시키면서 함께 동네 산책을 시작했다. 거창한 코스도 아니다. 지하 주차장부터 쭉 이어진 길을 따라 아파트 단지 둘레를 걷고, 우리 아파트 단지와 이웃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놀이터에서 잠깐 놀다 집으로 돌아가는 초간단 코스이다.
코스는 빈약하다만, 저녁 전 우리 부녀의 산책이 우리 가족에게 주는 좋은 점은 결코 적지 않다. 내가 생각해 본 우리 가족 구성원들 각각에게 좋은 점은 아래와 같다.
나: 짧은 시간이지만 운동을 할 수 있다. 늘어가는 뱃살, 몸무게에 대한 죄책감을 줄일 수 있다. 허기를 극대화하여 저녁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아이와 함께 놀아주면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아내: 첫째의 하원 후 시끌벅적해지는 집안 분위기를 피해 둘째 돌보기에 집중할 수 있다. 둘째가 잠이 들었을 경우 여유를 두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할 수 있다.
첫째: 부족한 바깥 놀이 시간을 채울 수 있다. 아빠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아빠 기분이 좋으면 집에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간식을 살 수 있다.
둘째: 누나의 견제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엄마 품을 차지할 수 있다. 잠이 들었을 경우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우리 가족 모두 산책의 혜택을 받고 있다만,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이는 나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 병실에서 1주, 그리고 조리원에서 2주 총 3주의 시간을 엄마와 떨어져 지내면서 엄마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 해솔이.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빠 바라기인 줄 알았던 딸이 엄마만 찾기 시작하면서 집에서는 둘이 온전히 함께 놀 기회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없어졌다. 둘이 함께 걷고 놀이터에서 흙장난도 치는 어스름한 저녁시간은 나와 해솔이가 온전하게 둘만의 대화, 놀이에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리고, 밖에서 실컷 놀다 들어온 둘, 집에서 반갑게 맞이해 주는 둘이 만나 넷이 될 때 웃음꽃이 피는 저녁 시간이 된다.
오늘 아빠와 함께 나무에 위태롭게 매달려 추운 겨울을 보내며 쭈글쭈글해진 산수유 열매를 따 모래에 숨기고 보물찾기 놀이를 신나게 한 딸은 집에 돌아온 뒤에도 한참을 신나게 이야기하다 꿈나라 여행을 떠났다. 매일 익숙한 코스를 걷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신나게 웃고 떠들며 노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아빠와 딸의 산책. 작심삼일이 나의 주특기이지만, 산책만큼은 매일 꼬박꼬박 영양제를 챙겨 먹듯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