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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Feb 03. 2024

마음대로 해도 괜찮아

  "아빠, 내가 만든 트리케라톱스 좀 보세요."


  해솔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어린이집 가방을 싸고 있는 나를 불렀다. 아침부터 뚝딱뚝딱 무얼 하나 했는데 자석 블록으로 거실 바닥에 공룡들을 수놓고 있었다.


  "우와 뿔 세 개에 프릴까지, 정말 트리케라톱스 같네! 옆에 있는 기다란 건 뭐야?"


  "아 저건 모사사우루스야"


  "정말 멋지다.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아."



  아빠의 칭찬 세례에 기분이 좋아진 해솔이. 평소처럼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 해담이는 엄마 아빠랑 있는데 나는 어린이집에 가는 게 속상하다는 투정 한 번 안 하고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며 헤어졌다. 해솔이가 오래간만에 어린이집에 밝은 얼굴로 들어가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고, 아침부터 해솔이가 만든 멋진 공룡들을 만나 더더욱 기분이 좋았다.


  나는 매뉴얼을 참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는 매뉴얼대로 하는 데 익숙하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까. 스스로 생각하고, 무언가 결정을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다 보니 하는 일에 제약도 많고, 무엇보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 블록 장난감을 새로 사면 설명서는 꼭 온전하게 보존해야 하고, 종이 접기나 그림 등의 작품 활동에도 지켜야 할 일종의 형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아이들이 보다 자유롭게 성장하기 원하는 아내는 그런 내가 아이들에게도 매뉴얼, 정해진 형식을 따를 것을 고수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아이들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다 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생각한 바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아내에게는 새로 산 블록 장난감의 설명서는 보관할 가치가 없는 재활용품일 뿐이다.


  육아를 처음 시작하면서는 아내와 생각이 다른 점에서 충돌하는 부분도 많았다. 내가 정해진 틀 속에서 성장해 온 것처럼 아이도 정해진 틀 속에 자꾸 가두려는 모습을 스스로 자각하면서 불편했던 점도 많았다. 그래도 나도, 아이도 성장통을 겪는 과정을 거쳐 자유롭게 생각하고 거침없이 표현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자녀를 자신만의 철학이 있고, 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의식적으로 정해진 틀 속에 아이를 가두지 않기, 작은 실수는 눈감아줄 수 있는 아량, 그리고 스스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나 지켜볼 수 있는 인내심 등. 하루하루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그래도 힘든 과정을 거쳐 가며 해맑게 성장하는 아이를 보면 앞으로도 쭉 노력할 가치가 있는 일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아빠, 이거 보세요 색종이로 만들었어요."


프테라노돈



디메트로돈



털매머드



  저녁을 먹고 난 후 쉬고 있는 내게 해솔이가 작품을 한 무더기 들고 왔다. 색종이로 접고, 테이프로 붙이고, 색연필로 이리저리 그은 손을 탄 흔적들이 가득해 꼬깃꼬깃해진 작품들. 종이접기 책에 나오는 것처럼 깔끔하고 예쁘지는 않지만, 내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프테라노돈', '디메트로돈', 그리고 '털매머드'가 살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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