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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R 규제의 개념과 역사

by 원스

SLR(보완적 레버리지비율)은 은행이 보유하거나 보증한 모든 자산과 거래를 하나의 분모로 묶어, 그 총액의 3 % 이상을 손실 흡수력이 가장 강한 Tier 1 자본으로 유지하도록 요구하는 규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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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모든 자산에는 현금·국채·대출뿐 아니라 보증이나 파생상품처럼 대차대조표 바깥에 있던 항목까지 포함됩니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일부 대형은행은 신용등급이 높아 위험가중치가 거의 붙지 않는 주택담보부증권(MBS)을 대량으로 들고 있었습니다.


자본 부담이 작다는 이유로 자산을 빠르게 늘렸지만, 서브프라임 부실이 번지자 MBS 가격이 급락했고 얇게 쌓여 있던 Tier 1 자본이 단숨에 잠식됐습니다.


규제 기준 아래로 떨어진 자본비율은 곧바로 신규 거래 정지와 유동성 경색으로 이어졌고, 파급 충격은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번졌습니다.


이 경험은 “자산이 얼마나 안전해 보여도 총량 대비 일정 수준의 자본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위기 직후 바젤은행감독위원회는 이 교훈을 제도화하기 위해 2010년 바젤 Ⅲ 개혁안 속에 SLR을 포함했습니다.


은행들은 2013년부터 시범적으로 비율을 공시했고, 2018 년부터는 국제 공통 규제로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미국은 한발 앞서 2014 년 4월 SLR 최종 규정을 확정해 총자산 2 ,500억 달러 이상이거나 해외 활동이 큰 은행에 즉시 적용했습니다.


같은 해 가을에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8개 대형은행(G-SIB)에 더 높은 잣대를 들이댔는데, 이것이 eSLR이라 불리는 강화 규제입니다.


※ G-SIB : 규모·복잡성·국제 연계성이 커서 파급력이 큰 ‘글로벌 시스템적 중요 은행’을 뜻합니다.


SLR은 자본 완충을 두텁게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국채와 지급준비금 같은 안전자산까지 분모에 그대로 포함된다는 점이 논란을 낳았습니다.


자칫하면 은행이 국채거래를 늘릴 때마다 레버리지 한도를 소모해 시장조성 기능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시험하듯 2020 년 4월, 연준은 국채와 지급준비금을 1년간 SLR 산식에서 제외하는 한시 'carve-out'을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국채 호가 깊이가 회복되고 금리 변동성이 빠르게 안정되는 효과가 확인되었습니다(챕터 2에서 더 자세하게 다룹니다).


※ Carve-out : SLR 분모에서 특정 자산을 일정 기간 혹은 일정 한도로 제외해 레버리지 부담을 줄여 주는 조치입니다.


그러나 면제가 2021년 3월 종료된 뒤에도 국채발행은 계속 늘었고, 연준의 양적긴축(QT)까지 겹치면서 딜러들의 대차대조표 여유는 다시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결국, 미국 금융당국은 2024년 하반기부터 SLR 개편 필요성을 공식 의제로 올렸습니다. 목표는 분명합니다. 자본의 안전판 역할은 유지하면서도 국채시장 유동성과 금융중개 기능을 해치지 않는 절충점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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