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의 기묘한 성장기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라는 영화는
한국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박찬욱이라는 감독이
할리우드 배우와 함께 호흡을 맞춘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모든 배우가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며
특히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배우도 등장한다는 점만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샀던 영화이다.
이 영화는 2013년에
개봉을 했는데,
벌써 개봉한 지 9년이나 된 영화이다.
이번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의 개봉을 기념으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을 다시 한번 보고 정리해보려 한다.
0. 서론
영화 '스토커'는 간단히 말하자면,
주인공인 한 소녀,
인디아의 성장기,
인디아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다만, 인디아의 환경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달라
인디아의 성장기는 기묘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집단을 거쳐 살아간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혹은 다양한 소모임 등..
하지만, 집단이 달라져도
각 개인이 집단에서 취하는 스탠스는
동일하다.
예를 들어 20대가 되기 전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의 리더 격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학교를 졸업 후 대학교, 회사 내에서도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집단 내에서 핵심적인 존재감과 영향력을 보이는 한편,
어렸을 때부터 집단 내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 대학교, 동아리, 회사라는 집단 내에서도
좀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집단 겉을 겉돌기만 한다.
이렇게 각각의 개인이
집단에서 어떠한 존재가 되는지가 다른 이유는
자신이 태어나서 처음 접한
가정이라는 집단에서
모델링한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아들은 아버지가 가정이라는 집단 내에서 보이는
소통 양식을 모델링하여
이를 자신의 정신적 정체성으로 정한 후
이를 가정 외의 학교, 회사, 사회에서 사용한다.
딸의 경우 어머니가 가정에서 보이는
소통 양식을 모델링하여
어머니와 비슷한 정신적 정체성을 설정한 후
이를 가정 밖의 다양한 집단에서 사용한다.
좋은 소통 양식을
모델링했다면,
그 혹은 그녀는 집단 및 이성 관계에서
좋은 만남을 이어갈 것이고
좋지 못한 소통 양식을
모델링하게 된다면,
집단 및 인간관계에서
배제되거나 집단 주위를 겉돌게 된다.
좋은 소통 양식과 좋지 않은 소통 양식의 기준은?
좋은 소통 양식은
상황의 맥락에 부합하는 좋은 대상으로
나를 타인에게 인식시키는 것,
그리고 나 또한 타인을 좋은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에 있다.
그래야 둘 간의 관계의 맥락이 지속되고
그 지속되는 맥락 안에서
긍정적인 상호 작용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1. 신체적 정체성과 정신적 정체성
앞서 말했듯
아들은 아버지를 소통 양식을 모델링하여
자신의 정신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딸은 어머니를 모델링하여
자신의 정신적 정체성을 확립한다.
가정 내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토대로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하며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남자'로서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남성성을 통한 사회성 구축)
딸은 어머니를 보며 자신이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여자'로서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여성성을 통한 사회성 구축)
이러한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집단 안의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없고
집단 겉을 맴돌게 되기도 하며,
이성 간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어머니, 아버지의 관계가
수평적이지 않고,
집 안 내에서 아버지 혹은 어머니
한쪽의 영향력이 독단적으로 크다면,
자녀들은 자신의 신체적 성(性)과 관계없이
자신이 무시받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영향력이 큰 사람을 모델링하게 된다.
모권이 강한 가정 내에서는,
예를 들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순종적이고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의 의견이나 감정이 묵살되는 환경에서는
아들, 딸 모두 아버지처럼 무시받는 사람이 되기 싫어
어머니를 모델링하게 되고,
아버지의 권한이 강한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하대하고 무시하는 가정)
아들, 딸 모두가 아버지를 모델링하게 된다.
특히 자신의 신체적 성(性)과
모델링한 양육자의 성이 반대인 경우,
인간관계에서 더욱 큰 차질이 생긴다.
아들이 어머니의 정신적 정체성을 모델링하는 경우,
혹은 딸이 아버지의 정신적 정체성을 모델링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적 정체성과 정신적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에
이 둘의 차이가 드러나는 상황마다
자아에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보통 사람들보다 더욱더 빈번하게
일상의 다양한 상황에서 자의식이 발동하고
이러한 자의식 발동으로
타인과 관계에서 많은 문제를 겪게 된다.
2. 아버지를 모델링한 딸, 인디아
영화 '스토커'에서는
딸이 어머니를 모델링하는 것이 아닌,
딸이 아버지를 모델링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 초반에
이블린 에비 스토커(니콜 키드먼)는 자신의 딸 인디아(미아 바시코브스카)에게
쇼핑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기분 전환 겸 밖으로 나가자고 하는데,
인디아는 비아냥 거리는 논조로 거절한다.
어머니는 단지 시무룩해 보이는 딸에게
기분 전환을 하자는 마음으로 제안을 했을 뿐인데,
딸 인디아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즉시 이를 거절한다.
이에 인디아의 어머니, 이블린 에비 스토커(니콜 키드먼)는
아버지랑은 사냥을 자주 가면서
나랑은 왜 반나절도 함께 보내지 않는 것이냐 반문한다.
인디아는 이 장면 외에도
어머니에게 보통의 가정에서 볼 수 없는
무시하고 깔보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는데,
이러한 인디아의 태도는
어머니가 인디아에게 원할을 살 만한 큰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평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보이는 태도를
그대로 모방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스토커 가문의 장남,
인디아의 아버지(리차드 스토커)는
그의 아내와 수평적인 위치에서
의사소통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여성을 하대하는 남성의 소통 양식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인디아는
한 명의 여자로서 집단 내에서 타인과 교류하는 방법을 모르고,
그렇다고 가정 밖 사회에서는
남자처럼 행동할 수도 없기 때문에
집단 내에서 사람들과 교류에 어려움이 있다.
3. 자신의 신체적 정체성과 정신적 정체성이 어긋난다면?
인디아가 갖고 있는
콤플렉스(자신의 본래 성과 모델링한 대상의 성이 반대인 콤플렉스)가
발현되는 순간은
영화 중간 부분에서 볼 수 있다.
인디아는
평소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윕 테일러와 키스를 하다가
윕 테일러를 갑자기 뿌리치는데,
이러한 인디아의 갑작스러운 반응은
자신의 신체적 정체성은 여자이지만
정신적 정체성은 남자이기에
남자와 사랑을 나누면
자신의 신체적 정체성과
정신적 정체성이 부딪히는 상황을 막기 위한 행위이다.
하지만, 웹 테일러는
계속해서 키스 이상의 스킨십을
인디아와 하고 싶어 하고
계속해서 스킨십을 이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웹 테일러와 스킨십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신체적 정체성이 드러나
결국 자신의 정신적 정체성과 부딪히게 되므로
웹 테일러와의 스킨십을 최대한 막아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콤플렉스가 발현되기
직전의 상황에서 인간은 누구나 커다란
신경증적 감정을 떠안게 된다.
신경증적인 감정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웹 테일러를 죽이고 온 후
전혀 성적인 행위를 할 상황이 아님에도
인디아가 샤워를 하면서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은
자신의 신체적 정체성과
정신적 정체성의 마찰로 인한
커다란 신경증적 감정을 해소할 방도가 없으므로
오르가슴을 통해 신경증적 감정을 해소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4. 인디아와 아버지를 연결하는 선, '사냥'
영화 곳곳에
인디아가 아버지와 사냥을 함께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냥이 인디아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강한 남성성, 정신적 정체성을 상징한다.
결국 인디아는 연쇄 살인마인 삼촌을
아버지와 함께 사냥 연습을 하면서 사용했던 총으로
쏴 죽인다.
삼촌은 아버지의 막내 동생, 찰리 스토커로
인디아의 아버지와 주위의 친척들을 모두 살해하고
인디아의 어머니까지 살해하려 한
사이코패스이다.
삼촌을 죽이고 인디아는 집에서 나와
길을 떠나는데,
무작위적으로 사람을 사냥하는
인디아의 모습을 끝으로 영화가 끝이 난다.
이는 영화 처음의 내레이션과 연결 지을 수 있는데,
인디아는 자신의 정신적 정체성을
완벽히 확립했음을 의미한다.
사실 영화 처음에 나오는 인디아의 내레이션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에 해당하는데,
이 내레이션은 다음과 같다.
내 귀는 남이 못 듣는 것을 듣고
내 눈은 남이 못 보는 작고 먼 것을 봐
이런 감각은 오랜 열망의 산물이야
구출되거나, 완성되고 싶은...
바람이 불어야 치마가 날리듯
난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이뤄지지 않았어
어머니 블라우스 위로
아버지의 벨트를 했고
삼촌에게서 받은 구두를 신었거든
이게 나야
꽃이 자기 색을 고를 수 없듯
내가 무엇이 되든
그건 내 책임이 아니야
그걸 깨달아야 자유로워지고
어른이 된다는 건 바로
자유로워진다는 거야
결국 자신의 신체적 정체성과
정신적 정체성의 괴리가 있는 사람은
둘 간의 합일을 이루어내야
신경증적 고통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영화는
'박찬욱스러운' 기묘한 결말에 도달한다.
인디아는 찰리 리차드를 죽임으로써
가정이라는 사회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연쇄살인마 삼촌을 죽인
인디아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어머니를 죽음으로부터 구해주지만,
어머니를 구하는 구원자의 행동이 아닌
그저 삼촌을 사냥총으로 쏴버린
'사냥' 행위에 가까웠다.
자신의 정체성의 확립은
자신의 정체성을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경험에서 비롯되는데,
인디아의 '사냥 행위'가
가정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인정을 받게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인디아는 이제
신체적 정체성과 정신적 정체성의 합일을
이루어냈기에 (위의 네레이션 초반에 언급된 사냥꾼의 예리한 귀와 눈)
자유롭게 집 밖으로 나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인간을 사냥하는
사냥꾼이 되어버렸다.
이는 인디아의 정신적 측면에서는
축하를 전해야 할 일이기도 하면서
잔인한 범죄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더 커다란 아이러니를 자아내며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아이러니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작품의 가치가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의
인간 정신에 대한 고찰과 예리한 시선이
느껴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