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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nautes 프리나우트 Jun 30. 2023

브레인볼

“방금 두분의 왕자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브레인볼이 떨리기 시작했다.


“쉿, 아직 아니야.”


이안은 옆으로 맨 가방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보좌관이 하늘을 나는 용이 그려진 커다란 문을 열었다. 똑같은 얼굴을 하고 어깨에 금장이 달린 검은 수트를 차려입은 남자 들이 들어왔다. 쌍둥이 왕자였다. 사방을 둘러보는 둘 중 한 명의 눈동자는 오드아이였다. 붉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바라보는 이안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이안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가 짧은 흰색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호기심 가득한 붉은 눈동자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추억에 젖어 있는 이안의 귀에 보좌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분 왕자님과의 최종면접을 통해 주치의 한명을 명할 것입니다. 면접은 특별히 준비한 공간에서 진행하며 순번에 맞춰 안내할 예정이오니….”


더 이상의 설명은 들리지 않았다. 면접은 ‘특별히 마련된 공간’에서 진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찬스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찬스.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를 꽉 악물었다. 손에 식은땀이 나서 자꾸만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름이 불린 이안은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테이블 너머로 두 명의 왕자가 앉아있었다. 


“이안이라는 자이옵니다.”


보좌관은 소개가 끝나자 방을 나갔다. 이 순간을 위해 7년을 기다렸다. 


“혹시 7년 전의 일은 기억하시는지요. 저는 선우라 하옵니다.”


이안은 가방에서 브레인볼을 꺼내 왕자 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앞에 놓았다. 거기에는 허여멀겋고 주름진 덩어리가 들어있는 동그란 공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두 왕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럼 그렇지. 왕이라는 작자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7년 전.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쌍둥이 왕자 들은 더 이상 손쓸 수 없을 만큼 병이 깊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남은 것은 장기이식뿐이옵니다. 어서 진행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왕은 침대에 나란히 누운 쌍둥이 왕자 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의사가 아니라도 곧 생명의 불씨가 꺼질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깊은 한숨을 쉰 뒤 왕은 나라에 이식이 가능한 사람이 있는지 급히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그게 누구든 데리고 오라는 말과 함께. 수술은 ‘선우’라는 이름의 의사에게 시킬 것이었다. 그는 명의로 명성이 자자해 이름을 대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 왕도 익히 알고 있어 전부터 수소문하던 차였다.


기증자를 찾는 작업은 은밀히 진행되었다. 반년 걸려 찾아낸 기증자의 이름은 ‘진영’. 새하얀 머리와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수술할 의사인 선우의 약혼자였다는 사실이다. 왕은 이 사실을 숨겼다. 의관을 시켜 장기를 적출하고 선우에게는 이식수술을 명했다. 이식은 성공적이었다. 쌍둥이 왕자 들은 각각 심장, 신장과 눈을 이식받아 건강한 삶을 되찾았다. 


수술을 하던 선우는 이식할 눈의 눈동자가 붉은색인 것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가 알기에 이 나라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은 진영뿐이었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선우는 진영의 몸과 남은 장기를 찾아 자취를 감췄다. 왕이 그를 은밀히 잡아 없애버릴 것을 명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7년 전. 저는 목숨보다 소중한 여인을 잃었습니다. 그녀의 심장과 신장, 눈을 두 분 왕자님께 옮겨 넣은 것이 바로 저입니다. 덕분에 두 분은 창창한 미래와 희망을 손에 넣었죠. 저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뇌만 남았죠. 왜죠? 왜 그래야만 하죠? 그녀의 뱃속에는 제 아이가 있었습니다. 두 분 왕자님들이 저희 셋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이겁니다.


이안으로 모든 것을 바꾼 선우는 오열했다. 


“이제 충분합니다. 눈부신 미래와 희망을 충분히 즐기셨으니까요. 힘이 있다고 생명까지 좌지우지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요. 그녀의 손에 죽어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제 마지막 부탁이에요.”


왕자 들은 선우의 이야기를 들으며 충격에 몸을 떨었다. 힘차게 뛰고 있는 심장. 열심히 움직이고 있을 신장과 앞에 서 있는 선우를 바라보는 눈을 자기도 모르게 더듬고 있었다. 선우는 브레인볼을 왕자들 가까이 밀었다. 둘은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다 동시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진영의 염력이 발동된 것이 틀림없었다.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왕자 들은 바닥에 처박혔다. 안간힘을 쓰며 손톱으로 바닥을 긁어대는 통에 금세 손끝이 보랏빛으로 변했다. 


선우는 브레인볼을 집어 소중히 쓰다듬었다. 지난 7년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그녀의 몸과 장기를 옮기느라 고생했던 일. 장기이식을 위한 보존 전류액으로 뇌를 보존할 방법을 찾고 환호했던 일. 그녀의 뇌를 둥그런 공 모양의 용기에 넣고 함께 벚꽃이 흩날리는 강가를 산책했던 일. 뇌를 자극하기 위한 전류 자극으로 염력이 생긴 것을 알고 복수를 생각했던 일. 선우였던 자신을 버리고 이안으로 다시 태어났던 일.


길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 버렸다. 밖이 어수선했다. 누군가 이곳에서 일어난 눈치챈 듯했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선우는 브레인볼을 품에 꼭 안았다. 익숙한 떨림이 느껴졌다. 


“괜찮아. 괜찮아.”


작게 속삭이며 선우는 천천히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끝.)







참여중인 첫 문장 스터디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스터디 출처 : <첫 문장 스터디> https://blog.naver.com/dalbit_salon/22309043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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