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처럼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 법칙이 있으면 좋겠으련만, 살고자 했더니 살기도 하고 죽고자 했더니 진짜 죽기도 한다. 삶과 죽음에는 정말 대중이 없다.
어제 이상하게 눈길이 가던 환자분이 계셨다. 50대가 넘어가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나 지닌 인품이 얼굴에 드러난다고 믿는데,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며 작은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모습에서 뭐랄까 정말 평범하지만 따뜻한 중년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던 것 같다. 워낙 많은 사람의 동의서를 받으니 동의서 타임 때의 머릿 속에는 늘 only for speed 이 생각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한테는 말을 걸 수 밖에 없었다. '혹시 여기서 전신마취 받아보셨어요? 굉장히 낯이 익어서요'라고 뜬금없이 물었더니 '그래요? 처음인데 제가 흔하게 생겼나봐요 설명들으니까 또 너무 긴장되네요'라고 웃어주셨고- 미소로 답해주셨으니까 나도 답례로, '내일 수술 잘 받으세요 수술명만 봤을 땐 엄청 큰 수술은 아니시니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에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따뜻한 웃음을 보여드렸다.
나는 이번 달 로봇수술방인데 또 이상하게도 중간에 수술이 비어 그 분이 우리 방에 들어오셨다 그녀의 새하얀 얼굴은 더 새하얗게 질려있었고 손을 덜덜 떠렸지만, 굳건하게도 울진 않으셨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갔다. 마취 준비를 시작하고나서 '긴장되세요'라는 나의 당연한 물음에 '사실 2주내내 울었는데 막상 수술방에 들어와보니 지금은 수술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네요'라고 현답한 게 드라마 속 장면처럼 기억에 남는다. 수술은 시작되고 내 어설픈 위로의 말처럼 금방 끝이 났다. 복막에 seeding이 있었다. 이미 4기였기 때문에 수술적 치료가 유의미하지 않았으므로 조직검사 후 그대로 배를 닫고 나오게 되었으니. 그저 자꾸 속이 쓰리다해서 병원에 왔는데 종양이였고, 종양을 떼러왔는데 전이가 되어 수술이 의미없다는 말을 들은 보호자의 표정은 참담했다. 나와 같이 뜨거운 20대를 보내고, 사랑을 하고, 어른 아닌 어른 같은 30대가 되어서-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기르다보니 50대가 되었겠지. 이제 나만의 행복을 찾아보아야지 충분히 마음먹을 수 있는 한가운데서 맞이한 웅덩이. 아 이럴 때면 나는 내가 뭐라도, 어떻게 정말 지푸라기 하나라도 사람들 손에 쥐어드리고 싶다. 나는 나름 가톨릭신자인데 '나름'을 붙이는 까닭은 때론 인간의 교활한 자만으로, 신보다 과학을 더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지만. 그렇지만 하느님, 들리신다면 이 사람에게는 살고자 하면 죽는 대중없는 끝보다 살고자 하면 살 수도 있는 기적을 보여주시길. 쓸모있고 싶지만 할 수 있는게 없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회복실에서 그녀가 나한테 한 첫마디는 수술을 못했나요? 였다. 마취를 하면서 울컥하는 기분이 드는 경우는 드문데 오늘은 정말 그녀와 같이 울고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