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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루스 Feb 26. 2021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로 알아본 미(美) 의식

니체 예술철학 철학 중심으로

서론

미시마 유키오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한창 일본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다자이 오사무, 가와바타 야스나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일본 근대 문학 작가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미시마 유키오는 ≪설국≫의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통해 알게 됐는데 사제지간이었던 그들은 서로를 지극히 아꼈다고 전해진다.

미시마 유키오는 후에 충격적인 할복자살을 하게 되고, 그로부터 2년 뒤 가와바타 야스나리 또한 비극적 선택을 하게 된다.

실제로 일어난 이런 믿기 힘든 사건들 때문에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었고 그의 작품들을 제대로 보게 된 건 내가 군인이었을 때였다.

남는 게 시간이던 그때 군대 도서관을 들러 책을 고르는데 도서관 한편에 금색 양장을 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이 바로 내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였다.

내가 당시에 읽고 들었던 생각은 미시마 유키오라는 작가가 참으로 예민하고 감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로부터 3년 후 지금 다시 읽게 된 이 책에선 ‘나에게 과연 ‘미(美)’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했다.


개요 및 소개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자주 금각(金閣)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금각사≫  제1장 中


이 소설은 실제 방화 사건을 5년에 걸쳐 미시마 유키오가 취재하여 쓴 ‘시사 소설’이다.

주인공 ‘미조구치’는 시골 절간에서 태어나 말더듬이에 추한 외모, 허약한 체질까지 가진 그야말로 ‘콤플렉스 덩어리’의 소년이다.

그를 소극적인 인간으로 만든 콤플렉스와 다르게 그의 내면의 고백들은 놀라울 정도로 예민하고 섬세하며 아름답고 논리적이다.

그런 소년이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금각에 관한 이야기를 굉장히 자주 듣게 되는데, 그 영향으로 만들어진 금각에 관한 강박적 관심과 사랑이 생기고, 그러한 금각에 관한 비정상적인 애정이 그의 성장과 더불어 더욱더 일그러져가고 결국엔 미조구치 자신에게 미의 정수이자 전부였던 ‘금각’을 방화하고 만다는 것이 이 소설의 대략적 줄거리다.

흔히들 미시마의 작품세계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데, 그의 ‘전기’ 작품들은 인간의 내면 관심을 두어 있는 '미' 관념 그 자체를 삶의 목적으로 두고 그것에 대한 욕구들과 심도 있는 고민들을 자기 신념 안에 극도의 집중을 가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그에 반해, ‘후기’ 작품들은 굉장히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내셔널리즘적인 작가가 된다고 평한다.

미시마가 극적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보디빌딩’에 있었는데 그 ‘보디빌딩’을 시작한 때가 바로 금각사의 연재 시기와 겹친다.

그러므로 금각사는 미시마 전기 문학과 후기 문학의 정중앙에 서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관점의 미의식 분석 – 니체 예술철학 중심으로


이 소설 속을 가득 메우는 주인공 미조구치의 내면의 소리들은 금각을 통해서 갖은 어려움들을 뚫고 ‘미’ 관념의 정수를 관철시킨다. 이 점에서 ‘전기’ 소설의 열등감을 이겨내 ‘후기’ 소설로 나아가는 이 소설이 고백 소설이자 미시마 본인의 자전적 소설임을 알 수 있다.                                            



‘금각이 불타면… 금각이 불타면 이 녀석들의 세계는 변모하여 생활의 금과옥조는 뒤집히고, 열차 시간표는 혼란스러워지며, 이 녀석들의 법률은 무효가 되겠지.’


-≪금각사≫  제8장 中



미조구치는 미 존재 그 자체인 금각과 인간의 생을 끊임없이 대비한다. 유한한 인간의 인생이 손쉽게 바스러지는 것이라면 금각은 영생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비된 인생과 금각이 미조구치 뒤틀어진 내면의 열등감 키워 결국엔 금각의 불멸성을 방화로 소멸시키며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한다.

따라서 금각의 종말을 곧 미조구치의 자유가 되고, 금각, 즉 미 관념을 완전히 넘어  자유로운 삶 앞으로 나아간다.


                                         

'여기에서는 금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소용돌이치는 연기와, 하늘로 치솟는 불길이 보일 뿐이다.

(…)

다른 호주머니의 담배가 손에 닿았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금각사≫  제10장 中


이 점에서, 금각사와 니체 예술철학은 만난다.

니체는 니힐리즘의 극복을 위해 적극적 대처를 주문했는데, 가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닌 창조되는 것이므로 그전까지 금각을 통해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미’를 적극적 대처 즉, 방화로서 깨어버리고 이유 있는 삶과 자유로 나아간 미조구치의 방화는 니체에게 있어 삶을 위한 거대한 자극, 삶의 긍정을 주장할 수 있는 가치의 허무주의를 붕괴시킨 일대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너무나 무거운 관념으로만 남아있던 미의식을 미조구치는 금각을 방화하고 뒷산으로 마구 뛰어가 벌렁 누워버리며 담배를 한 대 피운다. 여기서 미조구치 가벼워진 미의식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곧 니체가 말한 가벼운 정신을 통한 기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더 이상 미조구치에게 미 관념은 금각이라는 무거운 주체가 자신의  몸이 주는 정동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 것이다.

결국 미조구치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금각을 자신의 손으로 불태움으로써 미를 관념에서 실제로 이끌고, 자신의 진정한 삶으로 나아갔다.

서론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는 미시마 유키오 본인의 열등감이 극복되어가는 과정을 말할 수도 있다. 혹자는 미시마 유키오의 후기 문학이 지나치게 내셔널리즘 한 경향을 보여 예술성이 전기에 비해 떨어진다고 평하지만, 미시마는 자신의 최고 작품이라 평해지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이 예술 그 자체로 머무르지 않고 삶에 대한 의지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니체의 자기 고양, 자기의 힘을 펼칠 수 있는 힘으로 예술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나에게 미(美)란 무엇일까                                          


'자기 자신을 조형하는 자(der Sich-selbst Gestaltende)'

-니체


니체가 예술가를 정의했다.

천재의 특별성에 주목하지 않고, 일반 개개인 자신의 능력과 힘의 한계를 건너가려는 뛰어가려는 극복과 분투에 주목한 니체는 고통을 기쁨으로 전환해 축복을 받으라 했다.

금각사의 주인공 미조구치와 작가 미시마 유키오도 그런 선택을 했다.

미조구치는 현실에서 관념 속 미 그 자체인 금각에서 도망갈 곳은 없었다.

마치 억겁을 다시 태어나도 그대로 살아가야 하는 니체의 영원회귀의 사상 속에 그대로 갇혀버린 미조구치에게 운명의 두 가지 갈래가 쥐어진 셈이다. 그 모든 책임과 혜택은 미조구치의 몫이었다.

따라서 금각에게 불로써 종말을 부여하는 미조구치는 관념 속에서 깨어 나와 자유로운 세상에서 담뱃불을 붙인다. 그리고 미조구치는 그 관념의 미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세상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럼 나에겐 관념 속에 존재하는 미(美)란 무엇이고 그것을 깨어버린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게 했다.

만일 그 미가 존재한다면, 난 그것을 깨어버릴 용기가 있을까?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위버멘쉬가 될 수 있을까?

결국에 미시마는 자살을 택하였지만, 미조구치의 담뱃불처럼 ‘살아야지’라고 생각한다.

미에 관한 끊임없는 번뇌가 보여주는 인생의 고통과 그것과 마주치면서 삶에 방향성을 결정하려는 노력들은 관념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행위를 통해 완성되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러한 삶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면서 관념이 아닌 행위로 완성시키는 삶이 미(美) 그 자체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25살이 되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감췄던 미조구치처럼 항상 나의 추함과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 뒤에 숨었던 내가 나 자신에게 솔직해졌다.

니체는 가치 창조 행위 자체를 예술로 보고 인간 개개인을 가치 창조의 주체로서 세웠다.

그렇다면 난 지금 진정한 예술을 하고 있는 중인가 보다. 또한, 내 진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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