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30대가 아니라고!!
11월 말 어느 날, 회사에서 미친 듯이 초콜릿을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퇴근 한 막내에게 전화해서 막내 자리에 있는 초콜릿을 먹어도 되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우리 팀의 이 생활습관이 훌륭한 막내는 군것질을 하지 않고 받은 걸 다 쌓아놓는다). 이런 식이면 정말 금방 살이 찌겠는데...라는 생각 후 일주일 있다가 손에 잡히도록 두툼한 나의 뱃살을 발견하게 되었다 (키가 작고 근육이 없는지라 디저트를 흡입하고 나면 금방 살이 찌는 편이다). 마침 위기를 느끼고 그룹 요가를 시작하였는데 요가복의 배 주변 부분이 계속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이어트를 해야겠어!!!
나의 오래된 습관은, 식사는 '때우는' 편이었고, 스트레스는 많이 받고 있었으며, 운동량이 규칙적이지 않았다. 특히 먹는 부분에 있어서는 리서치 RA때부터 그랬지만 워킹맘이 되면서 정말 꽤나 '때 우는' 식으로 변해 버려서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잘 바뀌어지지가 않았다. 점심을 떡으로, 컵라면으로, 편의점 도시락으로, 빵으로, 많이 '때웠고' 달다구리를 좋아해서 중간중간에 배가 고프면 간식을 집어먹었다. 운동도 사실 규칙적으로 하는 편이 아니라서 전형적인 마른 비만으로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든지 하면 위가 아프다든지 두드러기가 나는 식으로 몸에서는 신호를 보내왔는데, 매번 아주 심각하지는 않고 약을 먹으면 금방 나아져서 예전의 그 생활로 돌아가곤 했다.
증상의 시작은 11월 마지막주... 2주 전의 나는 정신적으로도 꽤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사람이 정말 싫어질 정도였다), 식사도 계속 '때웠고', 커피는 하루에 습관적으로 5잔씩 마셨고, 갑자기 위기를 느껴서 그룹 필라테스를 이틀 연속으로 하루에 두 번을 들었다. 그 와중에 저탄고지를 한답시고 평소보다도 대충 먹었다. 그 와중에 신나게 방탄커피도 주문했고, 살을 빼야지!!라고 생각했다. 저저번주 목요일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복귀를 하는데 점점 목이 아파왔다. 정말 바보 같은데 나는 그게 '키토플루'라고 생각하고 금요일도 끙끙 앓다가 열을 재보니 38도가 넘어서 토요일에 병원에 갔다. 면역력 저하로 임파선이 부었다면서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저번주 초반까지... 여기서 바보 같은 건, 그래도 살은 빼야지!라고 생각하고 아침에 방탄커피를 마시고 항생제를 먹었다. 의사인 아버지가 알았으면 정말 경을 칠 일이지만, 난 살 뺄 거니까! -_-생각하고 계속 대충 먹으면서 약을 먹었고, 위가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코로나 백신도 맞았다. 그리고 월요일, 팔에 예의 그 두드러기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보통 때면 물을 많이 먹으면 나아졌겠지만, 이번에 생각보다 오래갔다. 그래서 병원에 또 갔다... ㅠㅠ. 알레르기 약을 처방받고, 면역력 강화한다고 수액도 맞고 했지만 나아지지 않아서 화요일에 병가를 쓰고 수요일에 회사에 복귀했다.
저번주 중반부터 시작된 가려움증.. 팔에 난 두드러기는 옷에 가려 안 보이기도 했고, 어느 정도 없어지고 있어서 이번에도 이렇게 넘어가나 했다. 그런데 하루 지난 저번주 목요일부터 발바닥이 가렵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오전에 회의를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가렵기 시작했다. 오후에도 계속되었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양말을 벗고 발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상한 점은 없는데 가려웠다. 괴로운 건 그날 밤이었다. 가려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인터넷을 보니 면역력 이슈라면 잠을 잘 자고 물을 잘 마시고 쉬어야 한다는데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물을 벌컥벌컥 먹고, 화장실을 가고, 아무리 해도 가려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뭔가 상처나 두드러기처럼 눈에 보이면서 간지럽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겉은 멀쩡한데 가려우니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살면 너무 끔찍할 것 같았다. 지방에 있어서 혼자였고 너무 무서워서 바보같이 엉엉 울다 잠이 들었다. 새벽에 조금 잠에 들었다 비몽사몽 회사로 가서 비몽사몽 업무를 마쳤다.
퇴근하는 내내 발바닥은 가려웠고, 그나마 금요일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피부과를 가야 한다고도 했고 내과를 가야 한다고도 했는데, 주변에 시술이 아니라 일반진료도 해주는 피부과가 있다고 해서 토요일에 가기로 계획을 세워두었다. 당연히 금요일 밤도 물만 마시고 잠은 잘 수가 없었다. 가려움은 계속 됐고, 점점 손까지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저번주까지만 해도 내 욕심대로 안 되는 것들이 많아서 너무 짜증 났는데, 이제는 이 발바닥의 가려움만 없어지면 정말 다 괜찮을 것 같았다.
토요일에 첫째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스타벅스에서 피부과가 10시에 열 때까지 기다렸다. 커피를 시켜놓고는 혹시나 더 가려움이 심해질까 봐 마시지도 못하고 정수물만 계속 마셔댔다. 나중에는 스타벅스 파트너분이 정수물을 알아서 리필해 주셨다 -_-. 예약을 하지 않고 갔음에도 다행히 진료를 볼 수가 있었다. 선생님은 면역력이 다시 자리 잡을 때까지는 간지러울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을 처방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잘 먹고 잘 쉬라고 하셨다. 간지러워서 잘 못 자겠다고 하니 조금 졸릴 수 있는 약도 처방해 준다고 하셨다.
그리고 토요일밤.. 여전히 가려웠지만 약을 먹었다는 심리적인 느낌인지, 혹은 주말이라 쉬어서 인지 아주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면 왠지 더 가려운 것 같아서 한잔도 안 마셨고, 살 빼겠다고 야심 차게 산 방탄커피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물이랑 밥이랑 야채를 열심히 먹었다. 일요일, 그리고 이번주 월요일이 지나면서 너무나도 다행히 가려움증은 잦아들었다. 글을 올리는 지금 다행히 가끔씩 움찔움찔할 정도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가렵지 않다. 물도 많이 마시고 있어, 무직정 다이어트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다행이란 것은 물을 많이 마시고, 달다구리를 끊어서 (가려울까 봐 과자를 끊었다) 뱃살이 좀 들어간 것 같다는 것이다.
올해 회사가 문을 닫고, 이직을 하고, 새롭고 충격적인 환경에 적응을 하고,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별별일이 다 있었지만, 제일 충격적인 것은 이 알 수 없는 가려움증이었다. 평생 이렇게 산다면 너무나 끔찍할 것 같았고, 건강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꼈다. 가려워서 뜬눈으로 지새운 경험은 정말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예전 회사에서 신문사 특파원을 지낸 유명한 여기자 분을 초청했었는데, 그분이 한 말이 외국에 나가서 대충 먹다가 쓰러지시고 난 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고 (정말 대단하시다!!!), 정말 먹는 것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마흔, 가만히 있으면 근육이 빠지는 시기. 그리고 아직도 일할 날이 창창한 게 귀찮다고 먹는 것에, 내 몸을 신경 쓰는 것에 소홀히 하면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무작정 다이어트가 효과가 있기에는 이제 나이가 너무 먹었다는 것도.... 일도 아이도 키우기 위해 건강에 힘쓰기로 했다. 가려움증아 떠나가 줘서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