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을 왔는데 회사가 없어진다네
이직을 위한 여정의 시작 - 3월 20일
by 워킹맘의 성장일기 Jul 31. 2023
2023년 3월 18일, 출장 가기 하루 전날 아침.
토요일이었다. 아침을 먹던 중, 재직하고 있는 회사가 경쟁사에 합병된다는 뉴스가 떴다. 그때까지만 해도 뉴스의 톤은 '예상된다 it is expected' 였어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재직하고 있던 소위 말하는 있어 보이는 투자 은행은 2022년 하반기 내내 주가가 빠졌고, 주주들에게는 최악의 옵션인 유상증자도 했고, 본사는 정부 보조금을 받기도 했다. 거진 이주일에 한 번씩 안 좋은 뉴스가 나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뉴스를 보면서 기분 나빠하기보다는, 그러려니 싶었고, 그냥 덜 신경 쓰려고 노력하는데 더 집중했었다.
솔직히 내부에서 봐서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문화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체감을 했는데, 회사는 인력에 투자를 할 여력이 없었으며 사람들의 사기는 매우 낮았고 사실 나 또한 다르지는 않았다. 이러다가는 커리어가 정체될 것 같다는 불안감에서 이직을 알아보고는 있었지만, 지금 월급이 나오고, 나는 내 일 자체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기에, 엄청나게 열심히 알아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또한, 회사가 이제는 존속하지 않는다는 발표가 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느끼는 부분은, 사람은 정말 본인이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싶어 한다는 것. 그 당시에도 회사가 위태위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160년이 넘는 회사인데 정말로 없어질까?라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있었어서 아주 간절하게 이직을 준비했다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그렇지는 않았다.
그리고 2023년 3월 19일 일요일, 다음날, 출장을 가기 위해서 비행기를 탔다. 코로나로 인해서 몇 년간 하지 못했던 큰 컨퍼런스였고, 나름 설렜었다. 고객들과의 미팅도 많이 하기로 되어 있었고, 오랜만에 호텔에서 하는 컨퍼런스라니!!라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는데, 출장지에 도착해서 핸드폰을 켜니 설레었던 마음은 황당함과 불안함으로 바꾸었다. 뉴스에서는 온통 회사가 합병이 결정되었다는 이야기뿐이었고, 회사 아웃룩을 급하게 열어보니 다음날 월요일 새벽에 합병 관련한 컨퍼런스 콜이 있을 테니 임직원들은 참석하라는 이메일이 있었다.
마음은 싱숭생숭하고, 자는지 마는 건지... 무거운 마음으로 일어나 샤워를 하고 컨퍼런스 콜을 들었다. 최근에 홍콩 오피스에서 런던 오피스로 승진해서 옮겨갔던 영국인 부서 대표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그도 몰랐었다니.. 언제나 네이비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세련된 화법을 구사하던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스트레스받아하는 표정은 처음이었고 불안감은 더 커져만 갔다. 뉴스에 나온 것처럼 본사가 속해있는 정부가 주도한 일이라서, 그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어쨌든 결론은 회사는 경쟁사에 합병이 되며, 회사의 로고니 이름이니 하는 부분은 이제 존속하지 않는다는 것. 현실적인 문제인 언제 합병이 마무리가 될지, 직원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우리를 합병 - 거의 인수의 느낌이기는 하지만 - 한 회사는 사업에 있어서 겹치는 부분이 많이 있는데, 그러면 겹치는 부서의 직원들은 다 나가게 되는 건지... 그러면 그 시점은 언제인 건지.. 에 대한 답도 들을 수가 없었다.
헤드는 많은 불확실성이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컨퍼런스와 일을 열심히 하자고 - 솔직히 그다지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 그렇게 이야기하고 마무리를 하였다.
컨퍼런스 날 아침부터 현실성이 현저하게 떨어졌던 것 같다. 나는 컨퍼런스를 하러 가고 있는데, 그 주 내내 고객들과의 미팅도 잡혀 있는데, 내가 초대한 회사들도 와 있는데, 이 모든 것의 근간이 되는 '회사'라는 곳이 사라진다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가늠이 잡히지 않았다. 컨퍼런스 장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회사 로고 밑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른 오피스에서 줌으로만 이야기하던 동료들의 얼굴들도 보였다. 평소 같으면 마냥 반갑다고, 이따가 차라도 마시자고, 포옹도 하고 악수도 하고 하하 호호했겠지만 다들 얼굴에는 불안과 혼란이 있었다. 여러 나라에 오피스가 있는 글로벌 회사의 특성상, 회사가 없어진다는 건, 어느 사람에게는 직업이 없어지는 이슈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정체성의 변화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거주지를 바꾸어야 하는 비자문제로 까지 커지기 때문에 그 누구도 마음 편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방학 동안 꼬박꼬박 인턴을 하면서 노력하고, 그리고 운도 좋아서 졸업하기 전에 취직을 한 후, 단 한 번도 회사의 이메일이 없어본 적이 없었다. 직업의 특성도 있겠지만 사회 초년생 때는 회사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었고,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회사 인맥을 통해서 남편을 만났었고,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돈도 벌었다. 성격상, 창업이니 뭐니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심하게 갈등이 있을 일이 없는 증권업계에서 일하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또한 워킹맘으로서, 회사에서도 완벽하지 못하고, 집에서는 죄스러운 그 상황들이 힘들었지만, 그렇게 애매한 상황에서 더더욱 회사에서의 내 명함 그리고 내가 버는 돈 - 확실한 것들 - 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다만 산업의 흥망성쇠를 따라가는 특성상, 담당하던 섹터의 성장성이 떨어지고, 나에 대한 수요가 떨어지는 것은 느꼈다. 또한 한국을 보는 기관투자자들의 수요도 예전같이 않았기에 커리어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무엇보다도 회사가 몇 번의 큰 손실이 났었던 투자 이후에 흔들린다는 느낌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tatus quo를 금방 바꿀 용기도 없었고 관성처럼 그냥저냥 다니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15년이 넘어가고 있었고, 직업이 없는 나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가 없어지고 나의 회사 이메일 계정이 없어지고, 내 명함이 없어진다니. 나는 내가 의료보험 한번 내본 적 없고 회사가 내주었는데. 집에서 정신없이 있다가 조용한 오피스에 오면 그나마 살만 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이직의 세계에 떠밀려야 한다니. 만약에 그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어떻게 될지, 합병이 되면 퇴직금은 받는 건지, 그 시점은 언제가 될지, 그냥 불안하기만 기간들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