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꼭 라면이어야 하나요?

by 고성미

불닭볶음면이 쏘아올린 K라면의 열풍이 거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3년 우리나라의 라면 수출량을 봉지 라면으로 환산해 보면 약 20억개나 된다고 발표했다. 그 면발을 굳이 이어 붙여 본다면 지구를 무려 2,539바퀴 휘감을 수 있는 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돈으로 비교해 보자면 봉지 라면 약 20억개가 벌어들인 외화는 중형 승용차를 약 5만 3732대 수출한 것과 같다. 그 많은 라면을 누가 다 먹었을까.

국내로 눈길을 돌려보자. 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우리 나라 사람들의 연간 평균 라면 섭취량은 70개 정도라고 한다. 평균이 그렇다니 궁금해진다. 일 년에 라면을 가장 많이 먹는 사람은 과연 몇 개나 먹을까? 반대로 가장 적게 먹는 사람은? 듣기로는 매일 두세 개 이상의 라면을 먹는 사람이 있다고 하니 최대치는 감히 어림잡을 수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후자의 답은 확실히 알고 있다.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일 년동안 라면을 가장 적게 먹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라면 한 개를 혼자 다 먹어 치운 것은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그 아이가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이니 무려 10년 전의 일이다.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도 입덧으로 오래 고생했는데 둘째 때도 네 달이 지나도록 어지러워 머리를 들 수 없을 지경이었다. 속이 울렁울렁 메슥거려 밥은커녕 물조차 넘어가질 않았다. 뭐라도 먹어야 나도 살고 뱃 속의 아기도 살리겠다 싶어 결연해지기까지 한 어느 날이었다. 온갖 먹방 영상을 찾아 봐도, 동네 맛집 사진을 몇 시간이고 둘러 봐도 구미가 당기는 게 없었다. 그러다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난 것이 라면이었다. 그때 내 심정은 수능을 딱 100일 앞둔 고 3 수험생의 불타는 전의 같았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라면이라도 먹어봐야겠어."


당시 친정 엄마가 몸져 누운 나 대신 첫째 아이를 우리 집에 와 계셨다. 나의 유별난 식성을 잘 아는 엄마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서둘러 신발을 꿰어 신고 나가셨다. 그 당시 우리집에는 라면이 단 한 봉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 없이 전국민의 집 주방 한 켠에 종류별로 자리잡고 있는 그 흔하디 흔한 라면 말이다.


정식으로 고백하자면 나는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라면 뿐만이 아니다. 치킨도 안 좋아한다. 돈까스와 짜장면, 피자, 햄버거, 콜라, 커피, 술도 안 좋아한다. 말도 안 된다고? 그렇게 살아서 뭐 할 거냐고? 애초에 지구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큰 뜻 따위는 없었다. 어쩌다 보니 의사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먹지 말라는 건 죄다 안 좋아하고, 챙겨 먹으라는 건 몽땅 좋아하게 됐다. 하지만 이런 식습관이 사회 생활을 하기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에게 메뉴 선택권이 있으면 운 좋게 그것들을 피해갈 수 있었지만 불행히도 보통의 입맛을 가진 듯 꾸며야 할 때가 훨씬 더 많았다.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보며 허기를 면할 정도로만 먹거나 맛있게 잘 먹는 척했다. 그때 나는 어렸고, 무리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인원이 꽤 많은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이어붙인 세 개의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이라곤 치킨과 맥주, 마카로니 과자뿐이었다. 나에게는 강제 다이어트 메뉴였다. 차라리 사람이 많아 시선이 분산되니 다행이었다. 모두들 저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느라 바빠서 아무도 내가 치킨을 한 조각도 먹지 않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500cc 맥주와 물을 번갈아 홀짝이며 이쪽 저쪽 대화에 끼었다 빠졌다하며 1차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행 중 한 명이 그제야 나를 발견했다는 듯 반기며 옆으로 와 앉았다. 그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나를 챙겨준답시고 굳이 팔을 이리저리 뻗어 다양한 맛의 치킨을 골고루 한 접시에 수북이 담아 내게 건넸다. 모임의 주최자 격인 분이었으므로 회원 관리가 목적이었을 것이다. 가벼운 목례를 한 뒤 접시를 받아든 나는 그의 친절에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그래서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가장 작은 치킨 조각을 포크로 찍어 한 귀퉁이를 베어물었다. 대충격이었다. 끔찍하게 맛이 없었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모두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여러분, 이게 진짜 그렇게 맛있어요?"

알고 보니 그 치킨은 지금도 여전히 탑스타인 한 여자 배우가 꽤 오랫동안 광고한 제품이었다. 초록 검색창에 '뿌'자만 쳐도 맨 위에 나오는 탑 치킨.


마음 같아서는 당장 혀 위에 얹혀져 있는 그 치킨을 뱉고 싶었지만, 몇 번 더 씹은 후 꿀떡 삼켰다. 입 안에 남아 있는 그 불쾌한 맛을 지우기 위해 물 두 잔을 연거푸 원샷하고 나니 왠지 서글퍼졌다. 왜 나는 입맛마저 다수가 아닌 소수, 그것도 아닌 극소수에 해당하는 것일까.

그 후 한동안 더 분위기를 맞추다 치킨과 술값의 n 분의 1을 내고, 무거운 마음과 가벼운 몸으로 집에 돌아갔다. 혼란스럽고 배고픈 밤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뿌 치킨을 먹지 않고는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는 그 누군가가 유난인 걸까, 사는 동안 다시는 뿌 치킨을 먹지 않겠노라 다짐한 내가 유별난 걸까.


다시 라면 얘기다.

영화 '봄날은 간다'는 라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늦은 밤 헤어지기 아쉬운 다 큰 남녀에게 라면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다.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차도 마셨지만 이 밤이 새도록 함께하고 싶은 열정이며,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나만 빼고.

20대 중반의 어느 날 '상우'와 '은수'를 만나게 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사뭇 다른 포인트로 꽤나 심란했었다. 만일 내가 그 영화 속 '은수'라면, 그냥 보내기 아쉬운 '상우'에게 라면 대신 뭘 먹자고 해야 할까. 내가 영화 속 '상우'라면, 혹시 이렇게 말했으려나.

"꼭 라면이어야 하나요?"


도대체 나는 왜 라면이 맛없는 걸까? 왜 나는 지난 10년 동안 라면이 먹고 싶지 않았던 걸까? 극소수의 삶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라면을 먹으며 라면 먹방을 본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라면이 왜 맛있냐고. 어디가 어떻게 맛있냐고. 누구는 면발 맛이라고 하고, 누구는 국물 맛이라고 했다. 그들이 내게 되물었다.

"넌 라면이 왜 싫은데?"

"라면보다 맛있는 게 많으니까."


청국장 나물 비빔밥.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을 때를 대비해 늘 마음에 품고 있는 대답이다. 막상 내 진심을 들은 그들은 이렇게 넘긴다.

"그런 거 말고."

하지만 청국장 나물 비빕밥만 생각해도 나는 벌써 침이 고인다. 비빔밥 그릇은 클수록 좋다. 그리고 보리가 반쯤 섞인 밥 위에 색색의 나물을 밥보다 많이 넣어야 한다. 거기에 콩의 모양이 살아 있는 청국장을 빙글빙글 돌려 끼얹고, 부드러운 상추 몇 장, 아삭한 상추 몇 장을 손으로 뚝뚝 뜯어 넣는거다. 아래에 뭐가 있는지 안 보일 정도로. 폭발하는 침을 삼키며 한 손으로는 양푼을 야무지게 잡고, 다른 손으로 내 사랑 비빔밥을 시원스레 뒤섞는다. 이쯤에서 매번 참을성이 바닥난다. 미처 다 비벼지지도 않은 비빔밥을 크게 한 숟가락 떠 안달나 있는 입 안으로 밀어넣는다. 이미 양 볼이 가득 찼지만 어떻게 해서든 나물과 상추를 추가해 와구와구 먹어야 천국을 맛볼 수 있다. 거기다 오이맛 고추를 한 입 아삭 베어물면 조금 많이 과장해서 내가 가진 것 전부를 내놓을 수도 있는 무아지경이 된다. 누군가는 매일 라면을 몇 개씩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처럼 나에게는 청국장 나물 비빔밥이 그렇다. 삼시 세끼 매일 먹으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먹을 수 있다. 진심이니 믿어주길 바란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의 유별난 식생활에 또 한 번 위기와 혼란이 찾아왔다. 아이들이 라면과 하리보, 초코파이의 존재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하교한 아이를 학교 도서관에서 만났는데 나를 보자마자 서둘러 가방 앞주머니를 열어 무언가를 내밀었다. 아이 손바닥만한 크기의 하리보 젤리 봉지였다. 그걸 든 아이의 설레는 눈빛과 목소리가 아직도 선하다.

"엄마, 나 이거 먹어도 돼?"


나도 안다. 그런 거 한두 번 먹는다고 안 죽는다는 거. 하지만 안 먹었으면 좋겠다. 그것 말고도 먹을 수 있는 게 많으니까. 그날 아이에게 처음으로 '불량 식품'이라는 말을 알려줬다. 그리고 약속했다. 선생님께 받은 불량 식품을 되돌려주거나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오면 집에서 엄마가 비슷하게, 맛있게, 더 많이 만들어주겠다고. 다행히 엄마가 세상에 전부였던 초등학생 1학년 때는 고맙게도 잘 따라줬다. 나 역시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려 무수한 시행 착오를 거치며 갖가지 먹거리들을 만들어냈고, 그러지 못할 때는 제품 뒷면의 원재료명을 꼼꼼하게 따져 보고 내 기준에 통과된 것만 사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벌어졌다. 하교한 아이의 알림장에 '초코파이 하나'가 준비물로 써 있었다. 며칠 후 그 달에 생일을 맞은 친구들을 축하하기 위해 초코파이로 케이크를 만들어 다같이 먹는다는 거였다.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서둘러 초코파이의 대체품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통밀이 무려 20.07%에 유기농 원당이 27%, 네덜란드산 유기농 코코아분말이 3.28% 함유돼 있는 초코파이와 똑같은 모양의 과자를 찾을 수 있었다. 1974년에 출시된 이래 전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 초코파이에 들어있는 백설탕, 미국산 밀, 쇼트핑, 산도조절제 1, 산도조절제 2, 산도조절제 3, 유화제 등이 하나도 없었다. 신이시여, 애 하나 잘 키워보겠습니다!

하지만 그 생일 파티날 나는 신을 원망했다. 아침에 아이의 가방에 내가 만들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찾아낸 감사한 초코과자를 넣으며 내가 더 설렜다. 취학 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의 기관 생활을 하지 않은 아이라 학교 생활 하나하나가 다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사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려고 애를 끼고 있냐는 주변의 우려와 달리 아이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했고, 주말에도 학교에 가고 싶어했다. 초코 과자를 보물처럼 챙겨가던 아이에게 좋은 추억이 되는 하루가 되길 바라며 하교 시간을 기다렸다.


그날 도서관에서 만난 아이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먼 발치서도 나를 발견하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와 조잘대던 아이였다. 친구들과 즐겁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정을 나눈다는 그 초코파이를 먹는 아이들 틈에서 내가 찾은 대체품을 당당하게, 맛있게 먹고 온 아이의 해맑은 모습을 기대했는데,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오늘도 재미있었어?"

"응."

"생일 파티는 어땠어?"

"좋았어."

아이는 그림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언제나 초롱초롱 두 눈을 반짝이며 온 세상 얘기를 떠들어대는 아이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초코파이는 맛있게 먹었어?"

참지 못한 내가 한껏 밝게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내 눈을 피하는 아이를 보며 머리가 바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별로였어?"

"아니."

"그럼?"

"뜯다가……바닥에 떨어졌어."

얼마 간 뜸을 들이던 아이 입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내 불찰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초코파이를 맛볼 기회 뿐 아니라, 그런 과자 봉지를 뜯어볼 수 있게 해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서툰 몸짓으로 봉지를 뜯다가 안에 들어있던 과자가 튕겨나와 바닥에 떨어지고 만 거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듯 눈 앞이 캄캄해졌다.

"얼른 주워 먹지 그랬어."

"친구들이 다 보고 있어서."

아이는 애가 타는 나를 앞에 두고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것으로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대신했다.


지금 12살이 된 아이는 그 날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에게 그날은 원망이다. 작게는 불량 식품이나 담배, 술 등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 크게는 나에 대한 원망이다. 남들 다 먹고 사는데 왜 이리 유별난 건지.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지만 지금도 그날만 생각하면 불량 식품이고 뭐고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앞선다.


초반에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이 된 것 같다.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일 년 중 라면을 가장 적게 먹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확신하는가에 대한. 내가 일 년에 먹는 라면의 양은 세계 최저라는 우리나라 출산율보다 낮다. 어이없지만 수치로 나타내 보자면 0.01정도 되려나. 0이 아닌 이유는 라면의 존재를 알게 된 아이들 덕분이다. 아주 가끔 아이들을 위해 우리밀 라면을 끓여주며 한 가닥쯤 먹어보는 날이 더러 있다. 라면 러버가 아니어도 면발이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는 눈으로 보면 바로 안다. 대체 이게 왜, 어디가 어떻게 맛있는 걸까 하는 나만의 미스터리에 대한 탐구 정신이랄까.

마흔을 넘기고 보니 알겠다. 불타는 열정으로 눈 딱 감고 라면과 치킨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밤도 있다는 것을. 그 열정은 끝내 그 놈의 라면 때문에 사그라들고 만다는 것도. 나는 면발을 어느 정도 남긴 라면 국물에 끓여먹는다는 라죽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된장국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더 좋다. 한겨울 눈밭에서 얼었다 녹았다한 배추로 끓인 달달한 된장국 말이다. 지금 함께 사는 40세, 12세, 10세의 남자 중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