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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써니 Oct 30. 2024

수학 선행, 해야 할까.

수학을 배우는 목표가 무엇일까.

수학을 가르친다고 얘기를 하면 자녀가 있는 지인들이나 학부모들은 나에게 항상 묻는다.

수학 선행해야 되냐고.

내가 학원에서 가르칠 때는 선행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확실히 앞서서 지식을 안다는 것은 다른 또래에 비해 더 많은 유형을 접하게 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뭘 그리 당연한 얘기를 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아이를 가르치고, 교육 경험이 많아진 순간부터는 섣불리 단언할 수 없다.


수학은 마치 '불'같다고나 할까?


불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기도 하고,

날 것의 고기를 익혀 먹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못 다루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순식간에 다 태워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수학이 좀 그런 것 같다.


나는 똑같이 가르쳤는데,

어떤 아이는 수학을 잘하게 되고, 좋아하게 된다.

반대로 어떤 아이는 수학이라면 학을 떼고, 수학을 너무 싫어하게 되는 학생도 보았다. 


바로 수학을 배우는 목표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른 결과이고,

이에 따라 수학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서이다. 


목표를 누가 세우느냐도 중요하다.

학생 본인이 세우면 금상첨화다. 

교사는 그냥 옆에서 방향 설정해 주고,

모르는 것 알게 해 주면 된다. 

학습동기가 많은 역할을 하지만,

수학을 맹목적으로 시험점수를 높이기 위해

공부를 한다면 과녁 없이 허공에 화살을 쏘아대는 것과 다름이 없다. 


물론 현재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수학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은 아마 1%도 안 될 것이다. 아니 0.01% 정도일까.

수학을 정말 좋아하는 아이도 시험결과에 목을 매도록 하는 상황에서는

진정한 수학적 성취가 어려울 것이다. 이 성취는 진정으로 내적으로 충족되는 상태이기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측량된 결과도 아니다. 내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태도인데, 이것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이 단지 "수학이 좋아요." 또는 "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할게요."라는 말로

이 학생은 수학적 목표를 달성했구나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평가지표는 여러 가지 종합적인 기준이 적용되겠지만, 그렇다고 수학적 성취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수학선행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라고 말하고 싶다. 


만일 자녀가 하고자 하는 일에 전문적인 고등교육이 필요한 곳이라면, 수학은 도구로써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면(거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권하지만) 수학점수가 어느 정도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 그러면 수학은 시험점수 향상을 위한 목표가 설정된다. 이런 방법은 자녀가 어느 정도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생각을 밝힌다면 더 잘 이해하고 수긍하고 따라올 것이다. 특히 요즘은 IT계열에 관심이 있어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단순한 반복작업이라면 수학을 배울 필요가 없겠지만, 앱개발이나 소프트웨어 개발 쪽은 수학을 필수로 공부해야 한다. 과학에 관련된 것도 마찬가지다. 수학 위에 과학이 쌓아 올린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전문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적어도 중학수학까지는 공부해 두는 것이 좋다. 

그 시기에 두뇌를 계발할 도구로 쓰인다. 인지발달용(?)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논리력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필수 교양이다. 쉽게 말하면 충동구매, 사기당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생각회로를 심는 작업이라고 해야 할까.


결론은 

수학을 공부하는 목표에 따라 선행을 결정해야 된다고 말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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