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태어난 김에 신으로 살기(14)

나에게 맞는 사회 만들기

2-7. 나에게 맞는 사회는 내가 만듭니다.



 우리 두뇌에는 경험적 관계로 연결된 사회를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작은 사회는 나만이 가진 고유한 것으로 인간으로 살도록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나만의 소중한 사회가 있어 함께 나누고 성장하면 삶의 강을 건너는데 배가 될 것입니다. 사적 영역은 나의 집과 가족과 친구란 개념과 연결된 작은 사회와 가치관을 말합니다. 여기서 나의 집은 사회와 대별 되는 개념으로 나만의 고유한 사적, 정신적 영역을 의미합니다. 

 순수함을 교류할 수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순수를 잊지 않게 돕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자본주의 정신에 물들지 않는 즉 거래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운 절대 사랑이나 이해 등과 같은 높은 수준의 교감은 영혼의 성장을 돕고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삶을 통해 가는 길에는 좋은 에너지의 지인들이나 취미활동이 가져오는 긍정 효과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즐거움을 꾸준히 발전시키는 것은 자기 사랑이며 자존감을 높여 줍니다. 


 다양한 집단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자신을 깨우치고 성장에도 도움이 됩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에너지들이 모이듯이 이런 마음가짐은 나를 돌아보고 지나친 이기심을 버릴 줄 알게 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자기 노력의 동력이 됩니다.

 경우에 따라 인간보다는 자연물과의 교감에서 더 좋은 에너지를 얻고 본래의 순수한 나와 만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좋은 관계란 서로 상생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힘이 빠지고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면 무언가 변화가 필요합니다. 상생이란 서로 이해하고 삶의 지평을 넓혀주는 신뢰의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필수 조건은 솔직함과 자유를 서로 존중하는 열린 자세로 그대로, 다름을 사랑하는 자세입니다. 

 사랑의 의식이 자라면 점차 홀로서면서도 중심을 잡게 되고 환경 또한 함께 성장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깨달음이란 본래의 내가 가진 사랑의 능력으로 회귀하는 것이기에 지나치게 물질화된 마음으로 진리가 밝게 드러나길 기대한다는 것 또한 불가능한 욕망의 하나입니다. 


 옛날의 선지자들의 의식의 성장 과정을 설명한 책들이 많습니다. ’보리도차제론‘ 이나 파탄잘리의 ’요가수두라‘ ’화엄경‘ 곽암의 십우도등 이 있습니다. 

 십우도에 의하면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소는 마구 날뛰는 마음을 상징하며, 그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소는 다양한 인간의 욕망 그리고 나라는 생각과 몸의 총체입니다. 그 소는 깨어있음과 지성, 사랑을 통해 결국 길들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그 소는 자주 도망가고 주인을 내동댕이치며 상처를 입히겠지만 결국은 그 소를 찾아 길들여서 집에 돌아와 함께 평화롭게 살게 됩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도 세상을 헤매다가도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길 열망하는 나그네와 같습니다. 막무가내인 야생소를 길들여 탈 수 있으려면 내 뜻을 이해하는 긍정적인 나와, 주변의 에너지가 형성될 때 가능합니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믿어주고 격려해 준다면 그것은 우주의 사랑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존감을 잃지 않게 도와줄 것입니다.

 어떤 여인이 제자가 진리는 무엇이냐고 묻자 등불을 들고 문밖으로 나가 바늘을 열심히 찾으며 어둠 속에 서 있으니 제자가 의아해하며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참됨은 집 안에 있는데 진리가 밖에 있다고 찾아 헤매는 제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집이란 본래의 나의 의식과 존재입니다. 그것의 표현인 내 집과 나의 사적 관계는 긍정의 에너지로 채워가는 태도는 중요합니다. 나에게 맞는 사회를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히키코모리처럼 은둔적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외부 영향 없이 홀로 지내는 것은 상처받은 마음을 돌보게 하며 세상으로 나아갈 마음과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회가 됩니다. 허전함을 채우고 인정욕구를 채우려고 밖으로만 떠도는 것보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사회생활과 내면생활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균형점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고 그것을 스스로 발견해내 힘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태어난 김에 신으로 살기(1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