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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국 Oct 30. 2021

반말은 사라질까?

돈과 계급, 그리고 반말

    돈은 본질적으로 수단일 뿐인데, 왜 그리 돈을 숭배하는 걸까. 요즘 한국에서 밥을 굶어서, 집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은 드물다. 돈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돈으로 구매하고자 하는 것은 위치재*일 것이다. 물질적 욕망도 충족시켜야겠지만, 그보다도 돈이 계급을 규정한다고 믿어서 자신의 계급을 드러내어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하려는 것이다.

* 위치재: 잠재적 소비자 중 극소수만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가치가 상승하는 재화.


    그러나 인간이 칭송하는 것은 어떤 사람의 인격과 능력이지 그 사람의 돈은 아니다. 돈이 많은 사람을 칭송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인격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돈이 많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사람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인정받기도 하면서 돈도 많은 것이다. 인과관계를 혼동하면 안 된다. 우리는 복권 당첨자를 숭배하지는 않는다.




    나는 운이 좋게도 존경받고 사랑받는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더 이상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군대에 들어가서 깨달았다. 병사로 군생활을 하면 지나가는 일면식도 없는 남도 아무나 나에게 반말을 한다. 어느 정도 알고 지내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에도 결국 우리말의 다채로운 반말의 층위들로 인해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마음이 나에게 드러나게 되고 그 전라의 마음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운이 나쁘게도 사람들의 멸시에 상처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멸시받은 사람들에게 누적되는 고통은 너무나 커서 사회적으로도 위험하다. 이런 위험을 관리하고자, 인간은 사회적 제도, 관습을 개발해왔다. 대부분의 현대 사회에서 어떤 좋지 않은 자질을 타고났다고 대놓고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은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는다.


    그러나 한국어에는 다양한 층위의 말이 있다. 문장 안에 상대방이 나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과도하게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상처 받을 사람들이 상처 받기가 다른 언어에 비해 쉽다. 그들은 인정받기 위해 노력을 해보겠지만, 타고난 자질까지 노력으로 개선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인격과 능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격과 능력의 결과물인 돈 혹은 위치재는 눈에 보인다. 하여 그들은 인정을 받기 위해 자산 축적을 인생 궁극의 목적으로 여기게 된다.


    돈으로 인정받고자 하지 말고, 인격으로, 실력으로 인정받아라. 돈은 가치가 아니다. 이런 말은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와닿지 않는다. 자신의 인격과 실력을 가지고 이미 무시를 당하며 살아왔고, 그걸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부자가 되는 것밖에 없어 보인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서은국 님의 책 《행복의 기원》에 따르면, 물질적 풍요가 삶의 궁극적 목표라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라 한다. 그리고 미국보다 한국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을 더 의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자신의 가치관대로 사는 게 아니라 타인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을 혼동하며 사는 사람의 비율이 높은 것 같다. 이 또한 반말이 원인의 일부를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에 따라, 상대방이 나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 상대방이 말하는 문장으로 피드백이 바로바로 오기 때문이다.


    결국 ‘돈은 수단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가치다.’와 같은 말들이 힘을 얻기 위해선, 반말은 사라지는 게 좋을 것이다.




    2000년대 중후반 〈미녀들의 수다〉라는 TV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다. 외국 여성들이 나와서 한국과 각국의 문화 차이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거기에서 한 외국인 출연자가 “한국어의 존댓말은 10년 뒤엔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분 생각에는 반말과 존댓말 중 하나가 사라진다면 존댓말이 사라질 거라 여겼나 보다. 한국인 출연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외국에는 존댓말이 없기도 하고, 아직 한국 문화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는 못하셔서 그렇게 생각하실 수는 있지만, 존댓말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나도 한국인의 주장에 공감했다. 10년이 지났고,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 말은 사실일지 모른다. 말 혹은 존댓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무리 지어 생활할 때 즉각적으로 서열이 정해져야 본능적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서열이 명확해야 질서가 있고, 질서가 있어야 집단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말은 서열을 확인하고 공고히 하기 좋은 도구다. DNA의 자기 복제라는 자연법칙을 극복할 수 없다면, 반말은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일부일처제, 노예제 폐지, 차별금지 정책 등 인간은 본능을 거스르는 제도를 많이 시행해왔다. 본능을 제거할 순 없지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본능을 통제하는 제도를 시행해왔다. 당장 반말 방지법을 발의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반말이 사라져야 한다는 당위는 점점 힘을 얻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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