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4. 16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 한복판에는 9.11 추모공원(9.11 Memorial)이 있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자리에는 두 개의 거대한 네모 분수가 흐르고, 가장자리에는 3천 명이 넘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세겨져 있다. 맨하탄 다운타운의 값비싼 땅에 미국은 희생당한 사람들 하나하나를 국가 전체가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공동체는 그렇게 간 이들의 이름을 항상 기억하겠다는 집단적 의사의 표시가 바로 추모공원이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선언한느 상징적인 장소인 것이다.
국가 권력의 처참한 실패를 보여준 세월호 침몰 사건이 일어난 지 6주년이 됐지만, 아직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기릴 수 있는 장소 하나 없다. 비단 정치권의 잘못이 아니다. 대통령은 왜 출근하지 않았는지, 책임 소재는 누구에게 있는지, 이후 은폐 시도 관련해 누가 벌을 받아야 하는지 밝히지 못했지만(https://bit.ly/34DeoVW), 많은 동료 시민들은 "그만하면 됐지 않냐," "보상금을 더 타내려한다"며 유가족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일부 안산 시민들은 왜 우리 화랑유원지에 혐오시설인 납골당을 짓느냐며 추모공원조차 반대하고 나섰다.
이것은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나 혐오시설 반대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희생자들을 기리는 태도의 문제다.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해 등교하던 학생들 수십 명이 죽고 난 이후에 성수대교 희생자 추모비는 강변북로 한복판에 차가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외딴 섬처럼 세워져 있다(https://bit.ly/2yfQvaW). 재벌 가문의 욕심으로 서울 강남 도심 한복판의 쇼핑몰이 무너져 500명이 죽은 삼풍 백화점 참사 자리는 깨끗히 치워져 서초 아크로비스타로 재개발되고 추모비는 인근 공원의 한자리의 애물단지처럼 방치되어 왔다(https://bit.ly/3eswBtV).
수학여행을 가다, 학교에 가다, 쇼핑을 하다 맥없이 스러져간 그들은 내가 될 수 있었다. 2020년 4월 16일에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게 그들이 아니라 나인 이유는 내가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단순 교통사고다, 보상금을 받았으니 됐지 않냐"라는 말에 분노를 넘어서 맥이 풀리는 이유는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지금 피눈물을 흘리는 유가족과 딱히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안산에 세월호 추모공원이 생기고, 안산 시민들과 아이들이 거기서 뛰놀고, 우리나라가 세월호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게, 그래서 구조만을 기다리다 선실에 갖혀 사라져버린 아이들의 목숨이 헛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세월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