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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Nov 04. 2023

길 없음 표지판을 만났을 때

- 우리에게는 우회도로가 있다.

해운대 블루라인파크 스카이 캡슐을 탔다. 우리가 탄 캡슐은 청사포에서 미포까지 가는 구간이었다. 스카이 캡슐은 작고 느렸고, 자주 덜컹거렸다. 하지만 열린 창문을 통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고, 바다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감탄했고 아이들은 깔깔대며 실컷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청사포에 주차를 했기 때문에 미포에서 내려서 다시 청사포로 돌아가야 했다. 해변 열차를 이용할 수도 있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해변가로 연결된 나무데크가 있어서 30분 정도면 걸어갈 수 있다는 블로그 후기를 봐서 그 정도면 딱 걷기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포에서 내려서 우리가 왔던 방향 쪽으로 걸어가는데, '길 없음'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공사를 하고 있어서 길이 없다는 안내문이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검색했을 때 공사 중이라는 내용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무데크를 공사 중이기 때문에 등산로로 우회할 수도 있다는 안내가 되어 있었다. 올해 1학년인 둘째 아이는 벌써부터 다리가 아프다고 징징거렸고, 나무 데크로만 가도 30분이 걸리는 거리인데 과연 등산로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가서 버스를 탈까, 아니면 택시를 탈까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가보지 뭐. 우회 도로가 있다는 건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다는 거잖아?





그렇게 가보기로 마음을 정하고 길을 따라가는데,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어, 혹시 길이 없어서 돌아오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곧, '반대편에서 온다는 건 거기도 길이 있다는 뜻일 거야.'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우리는 데크길을 따라 되돌아왔고, 중간에 임시로 세워놓은 판자를 밟고(후들후들) 사진을 (또) 찍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청사포역에 도착했다. 길을 걷다가 중간중간 '길 없음' 표지판을 두세 번 마주했고 공사 구간으로 보이는 장소도 있었다. 하지만 우회 도로가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계속 걷게 했다. 내 생각에는 나무데크 보완공사가 전혀 안 됐을 때는 우회 도로(등산로) 밖에 길이 없었던 것 같고, 지금은 나무 데크는 아니지만 임시로 연결해놓은 구간이 있어서 걸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물었다. 

"혹시, 이쪽으로 가면 미포로 가는 길이 있나요?"

 "네, 연결되어 있어요."라고 대답하고 나서 깨달았다. 

그래,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청했으면 불안해하지 않고 그 길을 올 수 있었을 텐데. 




                                                                                *



가끔 삶에서도 '길 없음'과 같은 표시를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내 삶이 그곳에서 그냥 멈춰 서버린 것 같은 순간들이. 빨래통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빨래 더미를 볼 때, 설거지통 속의 그릇을 볼 때, "오늘 저녁은 뭐 먹지?"라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나올 때, 내 이야기를 할 게 없어서 결국 아이들 근황으로 화제가 전환될 때...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회 도로가 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우리는 내가 느꼈던 절망을 마주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사실은 나에게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했다. 또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 





이 흑백사진은 언뜻 보면 특별할 게 없다. 그저 한 여성이 계단을 청소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장면에 너무도 익숙하다. 나는 거의 매일 아파트 계단을 청소하는 청소노동자와 마주친다. 내가 집에서 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비슷한 일들의 반복, 씻고 닦고 말리고 정리하고. 하지만 이 사진에 등장하는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의 엄마로 사는 데에는 엄청난 양의 반복 작업이 수반된다. 나는 유지 노동자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속한 문화권에서 완전히 버려졌다고 느꼈다. 우리 문화에는 유지 노동을 인정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1969년 유켈리스는 자신의 유지 노동을 예술로 간주하는 전시 계획인 '유지 예술 선언문'을 썼다. "나는 전시 기간 동안 미술관에 머물며 내가 집에서 남편과 아기를 위해 늘 하는 일을 할 것이다. (...) 나의 노동이 곧 작품이 될 것이다."



유켈리스가 유지 노동에 대해 자각하고 퍼포먼스를 한 게 1970년대이다. 2023년의 나는 이제서야 그들에게 길을 묻는다. 어쩌면 나와 전혀 다른 시대와 삶을 살았던 그들에게. 하지만 또 어쩌면, 그들의 삶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 내가 지금 필요한 무언가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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