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옷을 왜 살까? 정말 옷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작가 이소연은 '옷'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보면 답도 없고 의미도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왔던 '왜 옷을 살까?'라는 생각은 '옷'이라는 물건을 넘어서 패션산업과 소비, 환경까지 점점 그 범위가 넓어진다. 엄청나게 충격적이고 새로운 이야기는 없지만 흩어져 있었던 정보를 한 데 모아 지금의 옷 산업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무엇과 결탁해서 새로운 옷들을 말 그대로 "뿜어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많이 만들고, 가격을 낮추고, 싸게 파는 환상의 삼중주가 시작된다. 저렴한 가격 자체가 주요 전략이 되어버린 산업, 패스트패션 산업의 현주소이다.
소비가 있어 물건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물건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소비가 존재한다. 어마어마한 주문량 자체가 곧 경쟁력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봤던 유튜버 이연의 영상, 그 영상에서 이야기한 옷 무덤과 옷으로 가득 차 말라버린 강, 그 주변을 돌아다니며 섬유 조각을 먹는 동물들도 떠올랐다. (책에도 이 이야기가 나온다.) 그땐 정말 충격을 받아서 부들부들 떨면서 “이제 정말 옷 안 살 거야!다짐했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도, 인터넷 쇼핑을 하고, 옷을 샀다. 책을 읽고, 영상을 보는 것과 그 일을 결심하고 실천해나가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좌절과 기쁨과 성취감이 있을까.
나 역시 쇼핑을 좋아하는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 매년 유행하는 옷이 바뀌면, 유행 따라 옷을 사고 조금 입다가 후줄근해진 옷들은 버리거나 의류 수거함에 넣었다. '옷을 사는 습관'은 아이가 생기고, 외출이 자유로워지지 않게 되자 자연스럽게 인터넷 쇼핑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인터넷 쇼핑은 언제, 어디서든 검색할 수 있었고, 심지어 가격도 오프라인보다 더 쌌다. 하루 종일 방송되는 홈쇼핑에서는 계절에 맞는 옷을 여러 벌 살 수 있었고, 사는 것만큼 반품도 쉬웠다. 나에겐 충격이었다. 마음에 안 들면 반품하면 되니까 그냥 사라고? 아마도 입어볼 수 없다는 단점을 완화하기 위해 만든 정책이었겠지만, 나는 물건을 사는 행위에 대해 점점 더 책임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고민돼? 일단 사. 반품하면 되지. 이 과정을 몇 번 거치고 나면 고민이라는 걸 하지 않게 된다. 보고 있으면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고, 지금 안 사면 다시는 기회가 없는 것 같다.
패션 플랫폼에서 덤을 얹어주고 무료배송에 무료반품 혜택까지 제공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본격적으로 광고 구좌를 판매하기 위함이다. 패션 플랫폼은 더 이상은 옷을 판매하고 생기는 중개 수수료로 돈을 벌지 않는다. (중략) 플랫폼은 이미 방대한 소비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이때 자리 장사에 대한 비용과 대가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고민 없이 산 옷이 넘쳐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옷이 없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곤 했다. 모델이 입은 모습을 보면 나한테도 잘 어울릴 것 같지만, 막상 입어보면 생각과 달랐다. 그래서 또 입을 옷이 없고, 그래서 습관처럼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또 구입하고...
그렇게 셀 수 없이 만들어지는 옷들은 어디로 갈까. 그리고 몇 번 입거나, 입지도 않고 버려지는 옷들은 어디로 갈까. 우리는 감각적으로 편집된 옷의 이미지와 모델 핏, 그리고 후기만을 본다. 집으로 배송된 옷은 깔끔하게 접힌 채 비닐에 포장되어 있다. 원단을 끓여 염색하고, 옷 먼지가 날리는 곳에서 하루 종일 미싱을 돌리고, 워싱과 드라이를 해서 포장하는 건, 아마도 누군가 할 것이다. 아마도 어디엔가 그런 공장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옷이 필요하고, 예쁘고 저렴하기까지 한 옷은 어디에서든 구할 수 있으니까.
패스트패션 사업은 '지구 반대편'으로 일컬어지는 사회적 약자 또는 자연에 대한 착취를 토대로 성장했다. 그러므로 패스트패션을 구매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도움이 되리라 합리화하려고 한 적이 있다면 학교에 가야 할 어린아이들이 하루 열네 시간씩 옷을 만들기 위해 새장만큼 좁은 공간에 틀어박혀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 책의 미덕은 소비가 시작되는 방식을 정확하게 집어냈다는 데 있다. 우리는 '당연히' 수요가 있으니까 물건이 공급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옷을 만드는 이유는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싸게 만들어야 하니까 대량으로 물건을 제작하고) 물건이 생산되니까 소비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작가는 20대 때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했고, 이 결심은 주변의 '걱정'을 사기도 했다. 한창 꾸미고 예뻐 보일 나이인데... 옷을 사지 않는 건 너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아? 하지만 작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어떤 옷을 가지고 있는지 기억도 못 할 만큼 많은 옷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입을 옷이 없는 건 똑같지 않냐고. 오히려 '내가 가진 옷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에 맞춰 옷을 입는 것이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 기쁨이라고 말이다.
내가 옷을 사지 않아도 여전히 옷은 대량생산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모여 우리가 된다면... 구입 버튼을 누르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한다면, '새로' 사는 것 대신, 내 것과 다른 사람들 것을 '교환'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소비라는 연료를 먹고 질주하는 열차의 속도를 조금은 늦출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