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1등 성적표를 받아올 때? 나는 멋진 꿈을 꾸는 모습을 볼 때 내 아이들이 가장 멋져 보인다. 꿈을 꾸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이다.
성호는 꿈을 꾸고 있었다. 부모의 욕심에 맞지 않을지라도 프로게이머라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을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 주위에는 학교와 공부에 매몰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기계처럼 움직이기만 할 뿐, 자신만의 꿈을 꾸지 못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꿈은 꿈을 부른다! 아이의 꿈이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늘이 무너질 듯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이 까닭이다. 알다시피 아이들의 꿈은 변한다. 꿈의 행로 중에 더 멋진 꿈을 꾸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빌 게이츠 역시 처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마냥 컴퓨터가 좋아 이것저것 배우고 익히다 인터넷을 발명하게 되었던 것이다. 세계적인 기업 애플의 스티브 잡스 역시 흥미가 없는 수업에는 관심도 없는 학생이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해 유일하게 관심을 가진 수업은 서체 수업이었다. 이런저런 글꼴의 아름다움을 접하면서 그는 아름다운 컴퓨터를 꿈꾸었고, 그것이 디자인의 총아 애플 컴퓨터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렇듯 빌 게이츠도 스티브 잡스도 스스로 전혀 의도하지 않던, 자신만의 꿈을 위해 달려가다 성공이라는 부차적인 결과물을 받아 든 것이다.
아이의 도전이 무모해 보이면 어떤가? 깨지면 깨질수록 상처가 남을 테고, 상처에 좌절하지 않는 이상, 인생의 배움과 교훈으로 남을 테니 말이다.
학교 야간자율학습에서 해방된 성호는 일찍 집에 돌아와 게임 연습에 몰두했다. 저녁을 먹고 자기 전까지 5~6시간을 쉬지도 않고 게임을 하며 실력을 다진 뒤 처음으로 오프라인 대회(인터넷이 아닌 특정 장소에 직접 참가해 치르는 경기)에 참가를 했다. 중국에서 본선을 치러 1등에게 거액의 상금과 승용차를 부상으로 줄 정도로 큰 국제대회로 한국에서는 서울, 대전, 부산에서 예선을 통해 4명씩 뽑은 뒤 프로게이머 4명을 섞어 총 16명이 서울에서 본선을 치르는 방식이었다. 1위를 정하는 결승전은 생방송으로 나갈 예정이었다. 성호는 결승까지 올라 TV에 나가겠다는 굳은 각오를 다지며 3월 말 부산 예선에 참가했다.
예선 당일 남편과 나는 직접 차를 운전해 성호를 부산까지 태워다 주었다. 성호를 응원하는 가장 친한 친구들을 함께 태워서.
“잘할 거라고 믿지만, 혹시 지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어쨌든 경험이 남지 않니?”
부산의 한 PC방에 도착한 우리는 성호를 향해 응원을 외쳤다. 각 지역에서 날고 긴다는 64명의 선수들이 4개 조로 경기를 치러 각조 1위가 서울 본선에 참가하는 경기에서 성호는 조 결승까지 무난하게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3판 2선 승제에서 2 대 1로 이겨 본선행이 확정되었다.
성호가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고 돌아오자 학교도 한껏 들뜬 분위기였다. 선생님들도 ‘공부도 못하는 녀석이 게임만 한다.’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어쩌면 이 아이의 재능은 공부가 아니라 게임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성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놀라운 변화였다.
성호는 본선 경기를 위해 연습, 또 연습을 했다. 그리고 4월 말 당당히 혼자 서울로 향했다. 처음에는 남편이나 나 둘 중 한 명이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성호가 오고 가는 차비는 얼마나 들고 숙식은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등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는 정중히 거절을 했다. 성호는 혼자 서울로 떠나며 우리들을 향해 자신 있게 외쳤다.
“아빠, 저 1등 하면 차 바꿔 드릴게요!”
그때 남편 차는 연식이 무척 오래된 상태였다.
“기특한 녀석…….”
남편은 말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연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성호의 첫 16강 본선 상대는 지난 시즌 우승자인 프로게이머였다. 첫 판부터 최고의 상대와 붙게 된 것이다. 경기는 3판 2선 승제. 결국 성호는 한 판도 이기지 못하고 2대 0으로 지고 말았다.
프로게이머들에 비해 컨트롤, 운영, 판단 등 모든 면에서 확실히 부족함을 느낀 성호는 울산에 내려와 다시 연습에 몰두했다. 바로 1주일 뒤에 다른 큰 게임대회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성호는 다른 아마추어 게임 고수에서 또다시 아깝게 지고 말았다.
‘꿈’은 인생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꿈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변화시킨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지닌 사람은 말하는 것도 다르고 행동하는 것도 다르다. 만나는 사람 역시 다르다. 목표가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가 주먹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멋진 주먹이 되고 싶은 꿈을 꾼다면 그 아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일 뿐이다.
성호의 꿈은 나와 남편을 변화시켰다. 비록 부모로서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꿈은 아니었지만, 성호의 꿈은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키고 성호의 꿈을 향해 집중할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