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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더라, 글이 쓰고 싶었던 날이

by 안온

글이 너무 쓰고 싶었다.

불현듯 떠오르던 무수한 문장들이 머릿속에 가득해질 때쯤 빈 노트 앞에 앉으면 안개처럼 뿌옇게 사라지는 그런 날들이 있었다.

사라지는 순간을 잡으려 끄적거린 목적 없는 문장들의 단편들만 핸드폰 메모장에 하나씩 쌓여갔다.

단편들을 모아보리라, 다짐하고 떠날 때면 함께 챙겨간 책 속의 좋은 문장으로 나의 문장을 덮었다.

그렇게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 채, 쓰고 싶은 마음을 흘려보냈다.


어느 순간부터 글이 나의 시간에서 사라졌다.

쓰고 싶은 마음도, 떠오르는 문장도.

같은 영상을 수십 번 반복해서 틀어놓고 멍하게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퇴근 후 집에 오면 까무러치듯 잠드는 시간이 늘어갔다.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은 책을 사는 행위로 갈음했다.


글이 쓰고 싶던 어느 날이 문득 생각났다.

나는 왜 글이 그렇게 쓰고 싶었을까.

그리고 그 마음이 왜 한순간에 사라졌을까.


사람이 힘들었던 날들이었다.

원치 않는 위함은 서로를 힘들게 만들었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은 사람을 달리 보게, 때론 멀어지게 만들었다.

돌파구 없는 답답함을 분출할 곳이 필요했고, 나는 글을 찾았다.

그 글조차 한 줄도 내보내지 못했던 건 글이 돌파구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감정의 부산물을 시각화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언제나 그러하듯 시간은 만능 해결사다.

도망치지 못한 채 꾸역꾸역 버텨냈던 지난날들이 흐른 만큼, 그 시간만큼 감정도 덜어졌다.

무뎌졌다.

그리고 평온해졌다.

아니, 평온이라고 착각했다.

착각일지라도, 무뎌진 지금이 좋았다.


사라진 글을 다시 꺼내드는 게, 다시 나를 어지럽히는 일 같았나 보다.

오랜 시간 동안 글쓰기는 복잡한 나를 정리해 주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같은 행위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될 만큼 나이를 먹었나, 싶다.


글이 다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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