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고 몇 번이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가 머뭇거리길 몇 차례, 그러다 해가 바뀌었다. 머릿속에서 순간순간 지나가던 문장들, 여기저기 흐트러진 조각난 일기장들을 한 곳에 모아둘 공간이 생겼다며 신났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흐트러진 갈 곳 없는 문장들이, 그것마저 나 같아 보였다. 몇 차례 연휴가 생길 때마다 정리의 시간을 보내리라 마음먹었지만 막상 그 날이 되면 하루의 BGM으로 무한도전 클립을 무한 재생시켜놓고 멍 때리곤 했다. 연말의 긴 연휴도 그렇게 보내다 스스로에게 알 수 없는 부채감이 생겨 해가 바뀌는 순간 노트북을 켰다.
몇 번이고 머뭇거렸던 순간에는 변명 같은 이유가 있었다. 정리되지 못한 사진과 글들을 다시 뒤적일 때면 그때의 시간 속에 파묻혔다. 나는 이 곳에 있는데, 주변의 공기들만 그때로. 그렇게 한참을 감상에 젖고 나면 여기저기 퍼질러진 순간들이 감당이 안돼서 다시 한 뭉태기로 모아 서랍 속에 처박아버렸다. 대청소하겠다고 마음먹고 서랍을 뒤집었다가 결국 그대로 다시 넣던 날처럼.
특히나 여행을 다녀올 때면 여행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취미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여행마다 많은 순간들에 셔터를 눌러 담아온 사진들은 여러 날이 지난 후에 다른 느낌으로 여행을 기억시켜줬고, 짧은 토막이라도 남겨진 글들은 그 날의 순간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해 줬다. 이 기분을 더 잘 느끼고 싶어 다음 여행을 계획할 때면 더 많은 사진들과, 더 많은 글들을 쓰겠노라 다짐하지만 돌아오면 남은 것들은 여전히 미미했다. 그 와중에 순서대로 정리하고픈 욕심은 또 가득해서 지난 여행부터, 그 이전 꺼부터, 이러다 정리되지 못한 서랍만 늘어갔다. 그 과정에는 항상 바빠서, 라는 핑계가 있었다. 지난 여행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떠나는 여행이 많아졌고 쌓여가는 서랍의 정리는 매번 다음으로 미뤘다. 그러다 그 핑계가 택도 없는 한 해를 보내고서야 나의 과오를 마주했다. 미뤄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콘텐츠를 소비한 후의 감상들의 연속으로 이 곳이 채워지는 것이 맞나에 대한 고민도 했다. 그저 짧은 글들을 쓰고 싶어 시작한 공간이었는데, 벌써부터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맞는지 스스로 답문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간에 채우고 싶었던 순간들이 이미 있었기에 다른 것들로만 채워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고 보니 그 아쉬움만으로 공간을 비워놓고 있었다. 이 멋진 공간을.
나의 부채는 여기서 왔나 보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사소한 일로 혼자서 부채감을 느끼고 그 부채감을 덜기 위해 수없이 곱씹어본 생각들을 써 내려가 본다.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변하지 않을 거다. 나는 또 서랍 가득 정리되지 않은 기억들을 쌓아놓을 거고, 그 서랍들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을 것이다. 긴 연휴가 되면 하루 종일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무한도전을 틀어놓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부채감은 덜고 지나간 시간들을 한껏 곱씹으며 그 시간들을 조금씩 돌아보고 싶다. 그 시간들의 가치를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했던 그 시간을 다시 가지지 못하면서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특별한 의미 부여가 없어도 되는 순간들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자유로웠고, 모든 것이 새로웠고, 즐거웠고, 행복했다. 특별하지 않아도 특별했고, 그래서 그리웠다. 어쩌면 그 마음이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더 크다는 걸, 당연해지지 않은 시점에서야 알았다. 느리더라도, 너무 많이 지났더라도 시간이 흘러 달라진 마음까지 채워놓으려고 한다.